피지컬 아시아 감상문
서바이벌 장르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경쟁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참가자들 간의 기싸움에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즐겁게 시청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피지컬: 100>이었다. ‘최강의 피지컬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무대를 넓혀 <피지컬: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은 과연 최강의 피지컬에 대한 해답에 한 걸음 더 다가갔을까.
전작 <피지컬: 100>을 즐겼던 시청자로서 <피지컬: 아시아>에 대해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한국인 시청자인 나에게, 다양한 국가의 참가자들로 구성된 서바이벌에서 과연 충분히 이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미 여러 차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제작진은, 낯선 참가자들에게도 짧은 시간 안에 서사를 부여하고 시청자가 그들을 응원하게 만드는 데 능숙했다. 오히려 국적이 다양해지면서 각자의 문화적 배경과 개성이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이는 전작보다 더 풍부한 재미를 만들어냈다.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하거나 한일전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본 팀,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정체성에 강한 자부심을 보이는 몽골 팀의 모습은 우리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국가별 이미지와 맞물리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한일전을 일본에서는 ‘일한전’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번 시즌이 전작과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은 국가 대항전이라는 설정이다. 그만큼 대부분의 미션이 팀전으로 구성되었고, 이는 경기의 양상을 더욱 다층적으로 만들었다. 파워, 스피드, 지구력, 유연성 등 각기 다른 강점을 지닌 참가자들이 팀을 이루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고, 덕분에 경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커졌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션의 상당수가 근력이나 근지구력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종목과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이 모였음에도 결국 ‘버티기 싸움’으로 귀결되는 구조는 특정 유형의 선수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듯 보였다.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종목이 좀 더 반영되었다면, 피지컬의 정의 역시 한층 넓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피지컬: 아시아>는 글로벌 시청자를 의식한 연출에서도 인상적인 지점을 남겼다. 옛 조선식 난파선, 한국의 고성을 모티프로 한 성채, 돌장승 등 한국의 전통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세트들은 넷플릭스 자본의 힘을 실감하게 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경기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외형적인 장치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편파성의 우려는 크지 않았고, 오히려 미장센과 스케일 면에서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글로벌 프로그램으로 확장되었음에도, 이 시리즈의 출발점이 대한민국임을 은근히 각인시키는 연출이라는 점에서 묘한 자긍심마저 느껴졌다.
더 나아가 이 프로그램은 K-콘텐츠의 현재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K-pop과 드라마, 영화의 세계적 인기는 익숙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피지컬: 아시아>에서 여러 국가의 참가자들이 전작을 언급하며 한국 선수들에게 존중을 표하는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출연자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겠지만, 넷플릭스의 시청 데이터나 파퀴아오 같은 세계적 선수의 섭외를 떠올리면 이러한 해석이 과도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결국 <피지컬: 아시아>는 단순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넘어,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콘텐츠가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호흡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처럼 느껴졌다.
<피지컬: 100> 시리즈에는 참가자들의 몸을 본뜬 토르소가 등장하고, 탈락할 때마다 이를 부수는 전통이 있다. 서양미술에서 인류가 가장 심미적이라 여겨온 비율을 담아낸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이 상징은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잘 어울린다. 이번 시즌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로 무대를 넓힌 만큼, 다양한 체형과 신체 조건을 반영한 토르소들이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이 상징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단순한 서바이벌을 넘어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이 세계관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다음 행보가 자연스럽게 기대된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 바람처럼, 언젠가 ‘피지컬 올림픽’으로 이어지기를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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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토르소 너머로 확장되는 세계_ 피지컬 : 아시아 감상문_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