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장염에 걸렸다. 음식을 다 같이 먹었기에 상한 음식은 없었을 텐데. 아마도 놀러 가서 맵고 짠 음식을 연속해서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틀은 열이 지속해서 많이 나서 코로나 검사도 두 번이나 했는데 음성이 나오고, 결국 장염 진단을 받았다. 계속되는 설사와 복통으로 힘들어했고 무엇보다 먹지 못해 괴로웠다. 아이가 꽤나 커서 약도 알약으로 받았더니 알약 먹는 게 힘들어서 또 난리다. 아이가 먹지를 못 하니 온 가족이 호박죽에 곰탕, 삼계탕, 닭죽으로 식사를 한다. 그 며칠을 못 참고 짜증이 나는 난 나쁜 엄마일까.
조금 나아진 그저께 저녁, 아이들과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미니언즈 2를 보고 나와서 팬케이크가 먹고 싶었다. 친구들과 가보던 곳인데 가족과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죽과 국물만 먹느라 지겹기도 했다. 촉촉한 팬케이크라 장염이 거의 나아가는 아이도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고, 둘째는 너무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 팬케이크 먹고 갈까?”
“아직은 얘는 밥 먹어야 할 것 같아. 밥 먹으러 가자.”
무더운 여름 걸으면서 난 점점 짜증이 났다. 남편 말이 틀린 게 없어서 더 짜증이 났는지도 모른다. 딸 손을 잡고 바삐 걸어가고 아들과 남편은 뒤따라오면서 자꾸 뭘 묻길래 짜증 섞인 말로 대꾸를 했다. 식당에 다 왔을 즈음, 남편이 뒤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자기 화났어?”
“그냥 좀 짜증이 났어!”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서 싸해진 분위기에 입을 열었다.
“장염에 걸린 게 애 잘못도 아니고 밥 먹는 게 나은 것 같기는 한데 오늘은 영화 보고 팬케이크 먹으면서 기분 내고 싶었어.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냥 짜증이 났어. 나 때문에 불편했다면 미안해.”
“알았어. 밥 먹고 나면 다시 기분 좋아질 거야.”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예전 같으면 이유도 모르고 말할 줄도 모르면서 남 탓을 하며 있는 대로 짜증을 부렸을 텐데, 나 많이 컸구나. 밥을 다 먹고 우린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별 것 아닌 일이니 괜찮은 척했으면 내 마음속에 감정이 남아 계속 짜증을 부렸을 거다. 괜히 다른 거에 트집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울 정도로 별 일 아니었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나니 나도, 우리 가족도 앙금 없이 마음을 털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다.
엄마가 요즘 식사를 잘 못 하신다. 최근엔 밥도 꽤나 잘 먹고 종종 대답도 잘해주고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웃기도 했다. 그래 봐야 큰 반응은 아니고 응, 아니 정도의 대답이나 눈을 마주치고 살짝 웃어주는 정도의 반응. 치매환자의 작은 반응은 가족들에게 큰 기쁨이다. 한때 매 순간 진정이 안 되어 1분마다 소리를 지르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때 식사를 잘 못 했다. 당연한 일이다. 1분마다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음식물을 넘길 수가 없었다. 지금은 죽을 떠먹여 주는데 입을 움직이지 않는다. 씹어야 넘기는데 음식물이 들어온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씹어야 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입에 음식을 물고 있다.
문득 지난 몇 달간 소리 지르는 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정제를 먹은 것이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뇌의 모든 연결이 거의 끊긴 듯 모든 생활이 원활하지 않다. 이 진정제는 양날의 검처럼, 흥분되는 상황을 진정시키는 고마운 약이지만 반대로 환자를 너무 가라앉히기도 한다. 그래서 상태가 안 좋을 땐 진정제를 늘리다가 너무 가라앉으면 다시 줄여본다. 약으로밖에 조절할 수 없는 말기 환자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플 뿐이다. 아마도 요양병원에 들어갔다면 진즉 콧줄을 끼웠을 거다. 집에서 모실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할 뿐이다.
아이의 아픔과 엄마의 아픔을 지켜보던 어제저녁, 마음이 몹시도 아프고 무거웠다. 인생이 뭔가 싶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 길은 이토록 아프고 지난한 길일 텐데. 젊은 날 즐기고 돈을 벌며 멋지게 사는 것이 뭐 그리 중헌가 싶다. 인생이 참 허무하고 허무하다.
한동안, 아니 지난 몇 년간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나 보려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운동을 해보기도 했고 일도 시작했다. 동물도 키운다. 친구도 만나보고 여행도 다녔다. 나도 친구들처럼 밝게 즐기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나아지지가 않는다. 나도 이 상황이 답답하고, 친구들도 답답해하는 것 같다.
어제 문득 깨달았다. 내 마음과 몸이 이렇게나 슬프고 무거운데 즐거우려고 하면 그게 되나. 슬픈 마음이 몸속에 가득한데 얼굴만 삐에로처럼 웃어보려고 했나 보다. 마음이 밝아져서 얼굴이 피어야 하는데, 마음이 쉽사리 밝아지지가 않는다. 슬픈 마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못해 마음에 병이 생긴다. 충분히 슬퍼하려니 자라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미안하다.
조용히 글을 쓴다. 글에서라도 충분히 슬픈 마음을 쓰다 보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기쁘려고 노력하지 말고 슬퍼보자.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