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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Jan 17. 2024

고작 세번 달렸을 뿐인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조금 무식한 것도 인생의 도전을 하기에 꽤 괜찮은 것 같다. 딸이 육상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같이 달려보면 좋을 것 같아서 지난가을에 5km 마라톤을 신청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훌쩍 지나 신청하려고 보니 마감이 되어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가족모임에서 만난 친척오빠와 이야기하다 보니 오빠가 3월에 마라톤을 신청해 보라고 했다.(오빠는 풀코스 마라톤을 여러 번 뛰었고, 얼마 전 베를린 마라톤을 뛰고 왔다.) 서울마라톤. 마라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난 그게 그렇게 큰 대회인지 몰랐다.(오빠는 풀코스  집에 와서 시간 지나면 또 못하게 될까 봐 집에 오자마자 신청을 했다. 들어가 보니 5km가 없고 10km 밖에 없어서 그냥 10km를 신청했다. 온 가족 모두. 


남편은 몇 번이나 물었다. 


"이거 회사 누가 양도해 달라는데 양도할까?"


달리기를 한번 해보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 연말이 지났다. 언제나 지르는 걸 잘하는 난 마라톤 신청을 지르긴 했는데 실행은 안된다. 나의 무기력함 따위는 그 순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 9월엔가 10월에 신청해 두고 한 번도 안 뛰었으니.. 참.. 진짜 무슨 생각으로 마라톤을 뛰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1월이 되면서 남편이 말했다.


"이제 진짜 뛰어야 해!"


운동화를 사고 뛰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보니 1분 뛰고 3분 걷기를 시작하라고 했다. 뛴다고 하는데 뛰는 게 걷는 것보다 느리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과 딸은 벌써 저 앞에 있다. 기다리다 지쳐 나에게 돌아왔다가 다시 뛴다. 아이들에게 달리기는 즐겁다. 내가 책도 별로 못 읽어주고, 영어 조기교육도 못 시켜줬지만 밖에 나가자고 하면 언제든 같이 뛰쳐나가 놀아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남편도 생각보다 잘 뛰었다. 그렇게 집에 왔고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 야식을 신나게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은 떴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아니 나 얼마 뛰지 않았는데? 뛴 시간은 합쳐봐야 10분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은데 정말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나를 뺀 온 가족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다. 큰 아이는 학교에 갔고, 둘째는 육상훈련에 갔고, 남편은 회사에 갔다. 나만 오전 내 잠을 자고서야 겨우 일어났다. 충격적이었다. 걷는 거나 조금 달리는 거나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역시나 무지한 덕분이었다. 10km 마라톤을 신청한 것이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고 내지른 일인지 조금 느껴졌다. 


유튜브에서 말한 대로 하루 걸러 뛰기로 했다. 물론 매번 이틀에 한 번을 뛴 건 아니었고,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일주일에 3번은 뛰었다. 거의 걷다시피 뛰었다. 그 3일째 되는 날, 딸이 옆에서 뛰어주었다. 내 속도에 맞춰 아주 천천히. 그런데 문득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뛴다기보단 바닥을 구르는 느낌이었다. 몸이 위로 뜨기보단 바닥을 더 세게 누르면서 쿵쾅거리듯 뛰는 느낌이었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옆에서 아주 가볍게 뛰는 딸은 나보다 키가 많이 작은데도 보폭이 훨씬 넓었다. 아주 가볍게 톡톡 뛰었다. 따라 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옆에서 뛰다 보니 얘와 발맞춰 뛰기 시작하게 되었다. 뭐랄까, 조금 더 위로 뛴달까? 세 번째 뛰는 건데도 이전과 다르다. 갑자기 신이 나서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물론 그렇게 뛴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난 아직도 1분을 뛰기도 힘들다. 거리로 치면 100미터도 한 번에 못 뛰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르다. 


놀라웠다. 난 사실 10km를 다 뛸 생각도 크게 없다. 무리를 했다가 오히려 한동안 운동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니 신기했다. 걷는 것과 달리기는 정말 다른 거구나. 숨이 찰 정도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여전히 난 몇 번 달리지 않았고, 자꾸만 미루고, 가족들이 없으면 혼자 뛰지도 않는다. 그래도 지금보단 나아질 거란 믿음이 생겼다. 단 3번 만에 달라졌으니까. 앞으로 살면서 뛸 날은 셀 수 없이 많을 테니까. 

모든 사람이 나처럼 무식해서 용감하게 달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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