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ómista - Carrión De Los Condes
프로미스타 - 까리온 데 로스 꼰테스
우리는 모두 폐를 끼치며 살아간다
늦잠을 잤다. 시계를 보니 6:30 am. 보통은 출발하는 시간이다.
2층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메그의 침대가 말끔히 비워진 것을 확인한다. 35km 이상을 걸어야 하는 그녀는 서둘러 출발했을 것이다.
끙하는 소리를 내며 2층 침대에서 내려온다. 발바닥은 늘 찌릿찌릿 아프다. 무릎은 나아졌지만, 발이 아픈 것은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차라리 걷기 시작하면 좀 덜 아프다. 쉬면 오히려 아파오고 누워도 아프다. 특히 잘 때 발에 통증 때문에 깨곤 한다. 이런 것들이 일상다반사라고 하면 너무 고돼 보일까? 그래도 참을만하고 견딜만하니 너무 겁먹지 말아요.
늦잠을 잤더니 친구들이 먼저 떠났다. 30분 만에 채비하고 나왔는데 아직 거리가 어둡다. 조금 걸으니, 앞뒤로 순례자들이 보여서 무섭진 않았다.
걷다 보니 앞에서 걷는 사람이 빛도 없이 가고 있었다. 차가 다니는 길이라 좀 위험해 보였다. 빛은 내가 잘 보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차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껴갈 수 있도록 알리는 수단이기도 한 것일 텐데.
나의 빛이 조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적당히 뒤에서 길을 비춰주며 걸었다. 그렇게 조금 걷는데 그녀가 멈춰 서더니 휙 뒤돌아보며 말했다.
"나 빛 안 좋아해. 미안."
머쓱해진 나는 서둘러 그녀를 지나쳐 갔다. 선의로 한 행동인데 단호한 그녀의 말투가 매몰차게 느껴져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선의라고 무조건 받아달라 떼를 쓸 수는 없다. 요청하지 않은 도움은 때로는 실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은 흔하다. 까미노가 아니었다면 나도 선뜻 아무에게나 도움을 주는 편은 아니다. 의심도 많고 낯도 가리는 겁쟁이 쫄보니까. 한데 이런 사람들도 까미노에서는 선의를 베푸는 오지라퍼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까미노에서 고난은 모두에게 공평했다. 나만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모두 혼자인 채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유대감과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이 선의를 덜 의심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비교하고 경쟁하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잘 방어하며 선빵을 날릴까, 뭐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하게 만드는 세상. 나에게 조금만 피해가 가도 화가 나고 억울해 참지 못하는 사람들.
까미노가 친절과 선의 때문에 마냥 유토피아 같은 곳이라는 건 아니다. 분명 지나친 관심과 도움에 난처할 상황들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오지라퍼를 자처하게 된다. 무관심한 채 요청할 때만 도와주는 것은 왠지 여기서 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음.. 그냥 걷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이 길은 도움이 없이는 걸을 수가 없는 길이란 것을. 우리는 모두 폐를 끼치면 살아간다는 것을.
빛을 내주었을 때 고마워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나는 빛을 비춰줄 것이다. 그러니 내 맘 같지 않은 너에게 조금 서운하고 상처받을지라도 너무 각성하지 않기로 해.
까미노 너란 길. 참 어렵고 고마운 길이다.
17년.. 아 아니 17일 차 순례자의 걷기 전략
나의 요즘 걷기 전략은 초반 어두울 때 한 시간 반 정도 속도를 내며 걷는 것이다. 어차피 주변이 잘 안 보이고 춥기도 해서 빨리 걷는 게 낫다. 부르고스 이후 매일 만나고 있는 메세타 구간을 조금 수월한 시간에 걸을 수도 있다. 그늘 없는 메세타를 뜨거울 때 걷는 것은 몹시 힘이 드니까.
하루 6~7시간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회사에서 8시간 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디고 길게만 느껴진다. 거리도 마찬가지다. 서울 여의도에서 분당까지 약 26km인데 걷는다고 하면 무모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까미노 초반에는 시간과 거리를 통으로 생각하니 막막한 무한대의 길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지금은 시간을 쪼개서 걷는다.
06:30~08:00 어두운 새벽 1시간 30분(가장 빨리 걷기)
08:00~09:00 해 뜨고 마을까지 1시간(20분 휴식 포함)
09:00~11:00 점심까지 2시간(20분 휴식 포함)
자 이제 다 왔다. 왜냐면,
12:00~13:00 1시간만 걸으면
13:00~14:00 이제 마지막 1시간만 걸으면 되니까.
진짜다. 마지막에 4~5km 남았을 땐 진짜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들 정도다.
메그는 어디쯤 갔을까? 유난히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메그의 부재 때문이겠지. 이 길을 메그도 걸었을까? 그녀의 발자국 위로 나의 발자욱이 겹쳐지는 상상을 해본다.
오늘 지나간 마을에는 모두 큰 규모의 성당이 있었다. 이렇게 큰 성당이 있으니 좀 큰 마을이 있으려나 싶었는데 예상 밖의 작고 아담한 마을이 나온다. 쉬기 위해 멈춘 마을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Villalcazar de Sirga)에도 매우 큰 성당이 있었다. 성당 바로 옆에 있는 바에서 소은과 이반을 만나 함께 쉬어 갔다.
누구나 스스로에게 혁명을 일으키고 있을 테니까
막판 1시간을 남겨두고 개와 함께 순례 중인 아저씨를 만났다. 프랑스 길만 걷는 것이 아니라 벌써 여러 달 순례길을 걷는 중이라고 한다. 함께 걷는 순례견이 꽤 우직하고 믿음직해 보였다. 사람들이 귀여워해 줘도 안기거나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친구와 묵묵히 제 갈 길 가는 개라니. 말없이 걷다가 갑자기 사람처럼 한마디 툭 던질 것만 같았다.
길에서 이런저런 풍경과 사람들을 만난다. 세상에는 사람들만큼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했다. 삶이 평범함이나 특별함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냥 나답게 사는 건데 사실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모두 나답게 살기 위해 작고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티가 나게 새롭거나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혁명을 일으키고 있을 테니까. 나는 티가 안 나는 혁명가 당신을 매일 만나고 있다.
나에게도 혁명은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최근의 것은 아무래도 걷기를 시작한 일이다. 걷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될지 아직은 모른다. 단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걷기'가 지키고 싶은 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걷게 된 것이 아니라, 내가 걸을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되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노력하고 지켜내고 싶은 나의 방식이라는 것.
나아가 글을 쓴다면 걷는 것처럼 쓰고 싶다. 나중에 창작 작업을 하게 된다면 걸어가듯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다. 이 말의 맥락과 의미는 아직도 곰곰하지만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싶진 않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처음이다. 한국인들이 침대와 청결도에 호평을 했던 곳이다. 할머니(아마도 수녀님) 두 분이 아주 느리지만 능숙하게 체크인을 진행해 주셨다. 수녀원에서 운영해서 그런지 몇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남녀 도미토리 방이 따로 있었고 모두 1층 침대만 있다. 샤워실, 화장실도 남녀 구분되어 있다. 정갈하고 소박한 인테리어에 먼지 한 톨 없어 보이는 것이 깐깐하게 관리하는 것이 분명했다. 시설에 주류 반입이 안된다는 규칙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니 괜히 오늘따라 청량한 맥주가 더 땡긴다.
점심 겸 맥주를 마시러 간 식당에서 나는 어제 못 먹었던 깔리마리(오징어튀김)를 드디어 먹었다. 물론 향긋한 라들러와 함께. 한 잔도 아니도 두 잔을 마시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순례길 초반에는 콜라밖에 안 먹히더니 이제는 식사도 술도 아주 잘 먹고 마시게 되었다. 장시간 걷기 위한 체력과 요령도 어느 정도 생겼다. 남녀 혼용 다인실에서 놀랄 일은 이제 없으며 옷을 갈아입기 위해 더 이상 화장실을 가지도 않는다. 제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졌던 지난날은 가고 오늘은 늦잠까지 자는 것을 봐라. 적응하느라 애쓰던 그때를 지나고 어느새 익숙한 손으로 짐을 꾸리고 빨래를 하며 매일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다.
뚜렷했던 일상생활과 여행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이제는 여행이 일상이 되었고 일상이 여행처럼 그리워지기도 한다.
누구는 매일 먹어 지겹던 라면이 그립고, 누구는 얼죽아여서 아아가 그립고. 때론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던 집이 그립고 당연했던 나만의 침대가 매일 밤 그리울 테다. 취향에 꼭 맞는 넷플릭스를 하루 종일 본다든지, 멍 때리며 과자 한 봉지 다 먹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꿈이었나 싶도록 그립기도 하다.
오늘 17일째 까미노.
산티아고까지 절반쯤 걸어온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벌써 섭섭해지려고 한다.
Bonus!
- 알베르게 : Albergue Espiritu Sa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