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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넷: 고기는 얇게

머리카락처럼 얇게 잘라주신다고 했잖아요~~

우리나라 대표 소고기 요리! 불고기!

우리나라 대표 돼지고기 요리! 제육볶음!


이 두 음식이 이토록 어려운 음식이라는 것을 이곳 헝가리에 와서 알았다.

농담 삼아 외국생활 3년 차면 요리사 수준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코로나 시대에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눈물 닦고)

그만큼 집밥이 아닌 다음에야 입맛에 맞는 일상의 식사를 맛보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혹시라도 외식을 하더라도 가격이 만만치 않으며

무엇보다 한국음식에 아주 딱 맞는 식재료 및 조미료를 구하는 건 초기 정착인에게는  꽤나 고난도 미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시피 헝가리 음식의 기본 조미료나 채소들이 한국의 그것들과 겹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헝가리 특산품으로 생각하는 고추. 옆 나라의 특산품인 마늘 등이 있겠다. 감자나 양파, 당근, 오이  등의 채소는 쉽게 구할 수 있고 오히려 한국보다 저렴하다. 배추나 한국식 대파는 사실 이곳 음식에 많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동네 슈퍼에서도 쉽게 살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 부추나 깻잎, 콩나물 등 특별한? 채소는 정말 구하기가 어려워서 한인마트에서 가끔(유통될 때) 먹거나 그것도 어렵다 싶을 때는 집에서 자급자족 모드를 선택한다.(나도 다 해봤다 ㅎㅎ)

바다가 없는 나라이기에 바다와 관련된 식재료들은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만 이것도 샅샅이 찾다 보면 도미, 고등어, 홍합. 연어 등은 생물로 구입할 수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의 정착 후에는 한국음식에 필요한 일반적인 식재료는 구입할 수 있는 행운의 나라. 게다가

오늘의 주제인 육류의 경우는 자랑하고 싶을 정도이다.(어디까지나 한국에 비해서 말이다. 호주. 미국. 이런 낙농산업 발달 국은 제외^^;)

처음에 아는 현지인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헝가리도 좋은 등급의 헝가리산 육류는 비싼 가격으로 수출이 된다고 해서 질 좋은 고기를 구하는 건 혹시 어려운가 그랬는데... 한해 한해 시간이 갈수록 확실한 건 한국 대비 육류 flex가 가능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된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토끼고기까지 다양하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매우 저렴하다.

뼈가 포함되어 있는 육제품의 경우는 정말 언빌리버블 수준이어서 소꼬리 곰탕, 우족탕, 갈비탕은 고깃값보다 고기를 끓이는 전기세가 더 염려될 정도이며, 돼지등뼈나 돼지갈비는 만원 한 장만 있으면 아주 실컷 살 수 있다. 이러한 가격대로 형성되어 있는 고기를 어찌 매일 먹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여기에 정말이지 큰 어려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기의 두께다.

여기 와서 처음에 돼지고기가 정말 너무 저렴하고 맛있어서 어학원에서 '돼지고기'라는 단어와 '목살'이라는 부위에 대한 명칭도 공부하고 '삼겹살'에 해당하는 부위도 익혀서 야심 차게 정육점 아저씨에게 가서

"돼지고기 목살 1킬로그램 뼈 없이 주세요" 크~~ 아

내가 얘기해놓고도 감동 감동.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아저씨가 뭐라고 그러길래 순서상, 느낌상 '잘라줄까?'라는 뜻일 것 같아 이 손짓으로 잘라달라는 시늉을 했는데 아저씨 1킬로짜리 목살 덩어리를 두 동강 내서 방수지에 예쁘게 싸주셨다.

음..ㅜㅜ그래. 오늘은 보쌈을 해 먹자.

다다음날 어학원에서 선생님께 다시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얇게 썰어주세요."라는 말을 되뇌었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어서 나보다 어학원 반년 선배이신 아는 한국 오빠를 대동하기에 이르렀다. 이 키 큰 오빠를 앞세우고 마트의 정육코너에 자신 있게 선 두 한국인. 내가 두 손을 모으고 오빠를 바라보고 있어서였던가. 이 오빠님은 자신 있고 멋진 목소리로 내가 연습한 그 문장을 얘기했다." 돼지고기 목살 1 킬로그램 주세요. 아주아주 얇게 썰어주세요" (최대한 얇게 라는 말은 배우기 전이었다. 쩝).

오! 말을 '제대로' 알아들으신 아주머님은 꼭 우리 마음을 읽으신 듯 방긋 웃으시면서 대답하셨다.

"내가 머리카락처럼 얇게 썰어줄게요"

와~~~~ 그냥 그 대답을 들은 우리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눈을 반짝이며 아주머니 오른손에 들린 칼과 고기를 바라보았다.

10초 단위로 우리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아주머님은 정확히 1cm 두께의 고기를 곱고 가지런히 썰어서 어제의 그 방수 종이에 예쁘게 싸주셨다.

"정말 머리카락처럼 얇죠? 휴~" 엄청 대단한 일을 해내셨다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러고는 알게 되었다.

헝가리는 냉동고기를 유통하지 않는다.

때문에 고기를 얇게 썰 수 없다. 아주머님은 정말 고기를 최선을 다해 얇게 썰어 주신 것이었다.

결국 나는 제육볶음과 불고기를 그냥 늘 1센티미터의 두께의 고기로 하게 되었고 그게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중국 마트에 샤부샤부용으로 얇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인마트에서도 얇게 썰어진 돼지고기와 불고기용 소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 또는 한식당에 키 로단 위로 사전에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두꺼운 제육볶음과 불고기로 2년을 만족하다가 자급자족의 마음으로 고기 작두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고기를 70프로 얼려서 종이를 자르듯 삭둑삭둑. 손목이 후들거려도 얇은 고기를 꼭 먹이고 싶어 팔과 어깨를 희생하는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러다 보니 이웃집은 독일 직구로 고기 절삭기를 구입한다. 오. 고기를 얼려 빌려 사용해보니 이 또한 괜찮다.


그러나

나는 이마저도 귀찮다. 결국 열 번 중 아홉 번은 1센티미터의 불고기와 제육볶음으로 감사하기로 하고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때는 저기 싱크대 구석에 모셔둔 작두를 꺼낸다.

그래도 마트에서 햄을 잘라주는 절삭기를 보면... 딱 저기에 내 고기 좀 돌려주면 좋겠다는 아쉬운 마음을 버리지는 못하겠다.


다시 한번. 그날 '머리카락' 만큼 얇게 고기를 썰어주신 아주머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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