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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쁜 일. 그리고 분명히 좋은 일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긴 스스로에게 또는 다른 이에게

위로를 전할 때 자주 하는 말.

"이 또한 지나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조금만 참고 버텨보자. 웃으면서 회상할 날 금방 온다."


예상치 못한 일을 자주 겪는 아주 안정적인 요소가 희박한 나의 요즘이 상황에서는

이 말을 정말 자주 하게 되는데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종종 하는 걸 보면

다들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근래 몇 가지 일들이 생각한 대로 진행되고 오히려 뜻밖의 성과를 거둔 일이 있었다.

근데 막 좋다가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갑자기 이렇게 일이 잘되는 걸 보니 내일은 또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무릎을 치며 생각했다.


'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간과했던 것 하나. 나쁜 일만 지나가는 게 아니라 좋은 일도 반드시 지나가기 마련인 것이다.


지난주에 유 퀴즈에 천체사진을 찍는 작가분이 나왔다. 별의 궤적을 담은 사진 한 장을 보며 아들이 물었다.

"왜 저렇게 선이 생기지? 저게 뭐지?"

" 별이 지나간 자리야" 

"별이 지나간 자리를 하룻밤 통으로 찍어서 한 장에 담으면 저렇게 동그란 선이 생긴단다. 둥근 지구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증거지."

 별이 늘 그 자리에 있다한들 내가 돌면 별은 지나가는 것이고

내가 이 자리에 있다한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시간을 따라 흘러가면 지나가는 것이다.


결국... 어찌하던 내 앞에 머물러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외국생활 4년을 해보니 여러 인연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한 달을 만났는데도 솔메이트처럼 볼 때마다 좋고 반갑다.

뭐 이렇게 딱딱 잘도 맞는지 그 사람만 있으면 이 외로운 이방인 생활도 괜찮겠다 싶은 사람도 만나게 되는데 어느 날 전화가 온다.

"민찬 엄마. 우리 남편이 느닷없이 중국으로 발령이 났네. 아쉬워서 어째."

"어쩔 수 없죠... 정말 아쉬워서 어쩌나요."

잡고 싶은 인연이었는데 그냥 나를 스쳐 지나간다.

어떤 사람은 보자마자 별로다. 이유 없이 별로인데 이런 분들 대부분 결국 이유까지 만들어주면서 별로인 사람이 있다. 근데 이렇게 저렇게 계속 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뿐인가. 

전자처럼 세상 둘도 없을 친구처럼 지내다가 사소하거나 큰 갈등으로 세상 원수 같은 사이로 변하는 관계도 종종 있다. 

이 모든 종류의 사람이 어느 날 보니 내 곁에 없다.

다른 나라로 가거나 한국으로 돌아갔다.


' 이 모든 관계마저 지나가버렸다.'

이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이민자가 적은 외국에서 살다 보면 그 어른들의 자녀들도 이러한 관계의 지나감을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를 통틀어 경험하게 되는데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은'걸끄러운 관계의 정리'보다는  ' 좋은 관계들의 상실감'으로 이 변화를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부터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우리 아이들이 상황에 따라 반복되는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는 것이 싫었다.

"어차피 다 떠날 거잖아!"라는 말을 아이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아 일종의 보호막을 쳐봤지만

이제 4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두어 번 경험한 후에는 아이들이 알아서 조심하는 것도 있고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적절한 거리두기를 실천하기도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붙잡을 수 없다는 것

지나갈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참 많은 것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오늘 내 앞에 있는 건 천천히 지나갈 좋은 일인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을 나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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