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생일

마흔세번째 생일이 지나갔다. 이상하게 재작년쯤부터 아마 마흔이 된 후는 마흔하나였다가 마흔셋이었다가 마흔둘이었다가 마흔하나인 것 같다가 매해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인데 올해는 43이라고 써있는 초를 선물받아 이제는 안 헷갈릴 것 같다. 나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난 의도적으로 생일을 유난하게 보내지 않는 편이다. 사춘기시절부터 생일에 대해 기대를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더 울적한 기분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그 언제 부터였던 것 같고 어릴 때 사춘기를 보내는 언니가 생일이면 더 슬퍼했던걸 간접적으로 느끼던 시절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그리하다보니 그냥 평소처럼. 오히려 더 조용히 보내는게 익숙해졌다. 대신 스스로를 위해 잊지 않고 하는 일 중 하나는 스스로를 위해 작더라도 선물하기, 아이들에게 꼭 편지 써달라고 부탁하기, 그리고 당일 아침에 내가 먹을 미역국을 맛있게 준비하기다(또는 나를 위해 식당을 예약하기). 올해는 나를 위한 선물로 처음으로 다시 사는 톰포드 립스틱을 제네바면세점에서 샀다. 그것도 에르메스 매장 옆 톰포드에서!!! 내가 쓰던 색깔이 없어져서 가장 비슷한 색을 찾아내 손에 쥐고 내 생일 선물이라고 직원에게 말하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에르메스의 예~쁜 방도에 현혹되지 않고 매일의 나를 생기있게 해줄 립스틱을 골라 호주머니에 넣은 내가 제법 멋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1박2일 남편과 짧은 러닝출장길을 떠나며 아이들에게 편지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작년처럼 큰 아이(나이 비밀로 한다.지못미아들)는 감동멘트가 아닌 엉망맞춤법으로 눈물버튼누르는 긴~~시를 적어주었고 다행인지 한두군데 심쿵멘트로 나를 감동시키고 딸은 일년간의 자신을 반성하는 편지로 나를 희망차게(알고 있다니 다행이다.쩝) 해주었다. 올해의 특별포인트로는 매해 스스로 끓이던 소고기(무쇠솥으로) 넣은 미역국을 생일 전날 밤 선물로 받아 아침에 기똥차게 맛있게 조식만찬을 즐겼다는 점과 그리고 타지생활중에 한두번 만난분이 생일(정말 고마워서 밥한끼 차려주고 싶다시던 그말씀이 너무 진심같아서)이라고 집밥해주신다는 말에 망설임없이 달려간 빠름을 장착한 덕분에 남이 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감사뿌듯기쁜 마음으로 바쁜 일상을 마치고 온후 남편이 끓여준 김치찌개저녁과 선물받은 샴페인, 그리고 백년빵집 티라미슈로 하루를 충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일을 보낸 후 일기를 쓰려고 그날 밤부터 생각은 했지만 미루다미루다 오늘 아침 헝가리어 과외를 받는 중 기념일에 대한 스피킹 연습을 하다가 두 가지의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일단 그 중 하나는 올해 나의 생일을 기뻐해주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이들 중 헝가리 사람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내가 한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어 정말 내 생일을 기뻐해주던 이들의 기억에서 내 이름이 지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며 여기서도 사실 나의 생일을 정말 기뻐해줄 만한 친구는 많이 만들지 못 했다는 걸 알게 된 아쉬운 포인트. 잊혀졌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반면 가까운 곳에 또 새로운 헝가리 친구들이 있다는 마음에 포근해지도 하고 복잡 미묘 이상한 느낌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건 좀 대단한 발견인 것 같기도 한데) 한국만 ! 진짜 한국만 생일을 축!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칠라의 축하를 받다가! 유레카!!!


정말 우리만 생일을 축하할까? 찾아보니 헝가리말도 Boldog születésnapot. 영어도, 독일어도, 중국어도, 일본어도, 스페인어도 너의 생일에 기쁨과 행복을 기원한다!!라는 뜻으로 인사한다. 정말 한국만 !!! 생일을 축!하!한다. 졸업도 아니고 어떤 목표를 이룬 성과도 아닌 그저 매해 돌아오는 생일을 기뻐한다고 노래하지 않고 우리는 축하한다고 노래한다. 1년을 살아낸 인생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때문인가, 아니면 그만큼 인생살이가 고단하다는 말의 반증인걸까.(태어날때부터 1살 먹게 해주는 예전?한국의 문화상 태어나는 아이나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엄마는 축하받아 마땅한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매해 돌아오는 생일에 우리는 살아있는 것 자체로 축하를 받는다는 말이다. 갑자기 나의 생일이 , 우리의 생일이 축하할 만큼 가치있고 멋진일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좀 느닷없는 결론이긴 하지만 또 한해의 기회를 얻었고 나는 363일 후에 다시 멋진 축하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잘 살아내야할 가벼운 이유를 하나더 찾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은혜/Grace/Kegyele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