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ide Jul 18. 2018

학부모도 이름이 있다

예술교육/예술치유 현장이야기

모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출석부에는 해당 학생의 학년-반-학생 이름-학부모 이름 순으로 기재되어있고, 일련번호 역시 학생의 학년-반 순서로 정렬되어있다.


비록 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부모이기 때문에 이 학교에서 열린 학부모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들 본인을 위한 수업이기 때문에, 단 2시간만이라도 좀 더 본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꿋꿋이 "□□(의) 어머님" 이라고 부르지 않고 학부모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출석을 부를 때에는 "OOO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에는 "OOO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들 처음에 많이 어색해하셨다. 그들끼리도 "□□엄마"라고 서로를 부르고 있었기에 서로의 이름을 잘 모르고 있었다가, 내 수업을 통해 서로의 이름이 알려져서 처음에는 조금 쑥쓰럽다고 하셨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는 "□□의 엄마"일 뿐, 그들 자체의 이름이 불려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불리는지에 따라 사소하지만 큰 차이가 나타난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주체가 되었고, 진짜 학생이 되었다.  적어도 그 수업 시간 만큼은 나-(학생)-학부모 가 아닌, 좀 더 밀접한 강사-학생 관계가 되었다.


난 내가 □□의 엄마가 되는 것이 편치 않다. 20대의 나, 30대의 나.가 가지는 분명한 특징이 있는 걸 느끼면서, 이러다가 나도 어느 순간 40대의 나는 없고 □□의 엄마로 한 시절을 보내다가 어느덧 할머니가 되는 것이 두렵다. 이런 나와 다르게, 이미 □□의 엄마로 사는 것이 익숙해진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친구관계까지도 이미 아이를 중심으로 맺고 있는 □□엄마들... 그들의 삶은 이미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그 것을 부정하라고 하고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나의 방식으로 그들의 이름과 존재감을 끌어내주고 싶다.


한 학기동안 이끌어오고 무척 가까워진 이 관계도 벌써 방학을 앞두고 있다. 아이들의 방학은 학부모들의 야근 시작이다. 방학 내내 치열하게 □□의 엄마로 살 그들을 응원하며, 새학기에는 다시 "OOO님"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 내 정치적 소수자 생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