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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포동굴 May 11. 2022

프라이버시에 대해

공용공간을 어디까지 오픈할 수 있는가

두 가구가 함께 사는 집을 짓다 보니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부분이 '프라이버시'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며느리 된 입장에서 그렇다.



전 가족 간의 프라이버시, 하물며 가족 내에서도 프라이빗한 공간이 필요해요


시부모님과 집 짓기를 논의한 처음 순간부터 '프라이버시'는 늘 집 짓기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런데 건축사무소와 이야기하면서 그 프라이버시를 정의하는 것이 사뭇 달라 놀랐다. 


시부모님의 경우, #프라이버시 라 하면 ① 2대가 모여 사는 우리 가족 - 외부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택지 길 건너편에 위치한 5층짜리 상가 건물에서 우리 집 내부가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을 가장 많이 언급하셨다. 원래는 너른 마당에 집을 짓고 지나가는 이웃들과도 인사하는 모습을 그리셨기 때문에 일정 부분 오픈된 야외 공간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외부에서 집 안이 보이지 않는 집을 짓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도심에서의 주택, 필지 100평(그나마 여긴 파주라 넓은 편, 서울로 가까워질수록 필지는 더 작아진다)에 주택단지로 조성된 마을에서 살기로 한 이상 '넓게 오픈된 마당'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셨다. 현실적으로 주어진 택지 규모 안에서 두 가구가 사용할 공간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부터가 숙제이기도 하거니와, 마을에 있는 집들이 하나같이 다 폐쇄적인데 우리 집만 '모두에게 열려있어'보았자 무슨 의미인가?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프라이버시란  ① 2대가 모여 사는 우리 가족 - 외부인뿐만 아니라 ② 이 택지 안의 두 가구 간, 그리고 ③ 한 가구 안에서도 나 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였다. 특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프라이버시는 바로 ②이다. 어찌 됐건 며느리로서 나는 내가 사는 공간, 내가 지나다니는 동선이 시부모님 눈에 띄는 것이 영 부담스럽다. 가능하다면 입구 출입하는 것에서부터 시부모님의 시야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이 니즈는 4명의 건축주 중 나 만이 유일하게 & 가장 강력하게 요청하는 사항이었다. 




두 가구 간의 독립성, 그런데 또 '따로 또 같이'여야 하긴 해.


②번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흔히 말하는 #듀플렉스 하우스를 짓는 것이다(좌우 분리). 택지를 두 개로 나눠서 건물을 두 개 올리는 것이다. 출입구에서부터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으니 두 가구 간의 사생활 보장에는 최적화되어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집이 재미있지가 않다. 보통 듀플렉스 주택을 보면 두 집이 똑같이 복붙 되어있다. 이건 타운하우스에 입주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가뜩이나 부족한 택지를 또 나누어서 땅콩집 두 채가 건축되는 것도 별로다. 내가 아무리 '시월드 대비' 프라이버시를 운운하지만, 그럼에도 '따로 또 같이' 지내고자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듀플렉스 하우스는 그에 대한 고민이 너무 적은 형태의 집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이 집에서 나, 남편, 그리고 나의 자녀들끼리만 살 시점이 온다고 치면 완벽하게 분리된 집은 결코 좋지 않다. 


▲ 출처: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의 집처럼 보이지만 층 간 분리를 통해 두 가구를 분리할 수도 있다(상하분리). 근데 이렇게 되면 같은 아파트에 상하층 입주해서 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거니 싶다. 물론 (아파트와 달리) 중간에 중정이나 마당 같은 공간에서 모여 놀 수도 있긴 하겠지만? 더욱이 어머님이나 나나 1,2층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단순히 상하분리를 할 경우 한쪽이 그 로망을 포기해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을 물고 가다 보면 나의 희망사항은 조금 복잡해진다. 시부모님의 시야에서 자유롭고 싶기는 해, 그런데 또 하나로 이어지는 집이면 좋겠다. 그렇다면 결국 두 가구가 함께하는 실내 공용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공용 공간을 어디까지 오픈할 수 있는가.


이에 건축가 분과 이야기하면서 두 가구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실내 공간들을 고민해보게 되는데...


(1) 두 가구가 모여서 먹고 놀 수 있는 공용 주방


가족이 함께 모이면 보통 식사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모두의 접근성이 높은 1층에 공용 주방을 크게 내는 것이 좋다. 주방에서 마당 혹은 대문 등으로 열리게끔 하면 야외 공간까지 연결해서 바비큐 파티 등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된다면 몇 가지 고려사항이 생기는데


� 1층부를 주로 사용하게 되는 가구(아마 시부모님 댁)는 프라이빗한 주방을 포기해야 한다.
→ 시어머님 입장에서는 며느리가 이 주방을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님의 주방을 과연 맘 편히 쓸 수 있을까?
→ 당장 친정 엄마의 냉장고마저도 '엄마의 룰'에 맞춰 사용해야 해서 내 살림이 따로 있는 지금 친정집에 가서 부엌 사용이 그다지 편하지 않는데...? 내 입장에서는 공용 주방으로 설계된다 하더라도 다 함께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곤 아마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함께 살게 되면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긴 하겠지만.


� 나중에 한 가구가 사는 집이 되었을 때, 똑같은 사이즈의 부엌이 두 개 있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애초에 처음 설계할 때부터 1층부는 메인이자 큰 주방으로, 2층부는 서브 주방 개념으로 설계하는 것이 좋다.
→ 솔직히 말해 주방 인테리어 비용이 제일 비싸다. 1층, 2층 다 큼직한 주방 & 식탁을 놓게 되면 비용도 그만큼 비싸진다. 그렇다면 2층을 주로 사용하게 되는 가구(아마 우리)는 평상시에 사용하는 주방 사이즈를 포기해야 한다. 사실 (베이킹에 대한 욕심이 조금 있긴 하지만) 요리에 대해 엄청난 취미가 없는 나인지라 지금 아파트 기준에서 누리고 있는 4-5평 정도의 주방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지긴 한다.

(2) 공용 서재


아버님과 남편 모두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데, 모든 책은 구매해서 본다. 이렇다 보니 집 안에 책을 보관할 넓은 장소가 필요하다고 하니 제안된 공용공간.

� 사실 두 분 다 책을 '읽을' 공간은 필요하지는 않다. 책을 가지고 햇살 좋은 거실에 나와 각자가 좋아하는 의자/소파에 앉아/누워서 책을 보기 때문이다. 그저 책을 '저장'할 공간이 필요한 뿐. 

→ 가장 현실적인 공용공간 옵션일 듯하다. 서재로 꾸미게 된다면 아마 아기 놀이기구들도 이리저리 배치되지 않을까? 토털 수납공간...? 


(3) 공용 미디어룸


TV를 좋아하는 아버님과 TV를 싫어하는 어머님&아들, 신혼집에 들어올 때 산 2년도 채 넘지 않은 TV가 아까운 며느리, 아마 먼 훗날에는 플스/닌텐도/VR/아직 태어나지 않은 무언가 게임을 하고 싶을 손자를 생각했을 때 또 하나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은 미디어룸이다. 


� 나는 엄청난 TV, OTT의 팬은 아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로 이런저런 영상을 보긴 하지만 원체 긴 시리즈물을 정주행 하는데 취약한 편. (오히려 TV를 극혐 하는 남편이 영상물에는 더 친화적이다. 매일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섭렵 중...)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큰 화면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다. 

→ 이런 내가 이 공용 미디어룸에서 과연 얼마큼 자유롭게 영상을 시청할까...? 흠 왠지 미디어룸에 가지 않고 아이패드로 돌려볼 듯하다. 뭐, 아이와 함께 플스를 한다면 같이 가서 놀겠지만?





두 가구가 함께 산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내가 특히나 #며느리 라는 역할에 나를 고정시키고 집을 바라봐서 그런 것 같기도. 실제로 시부모님은 매우 합리적이시고 나를 많이 배려해주시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생각하자'라고 다짐해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어렵다.

일단 솔직하게 '어려운 건 어려워요'라고 말해보기로 했다. '따로 또 같이'에도 레벨이 있다. 얼마큼 따로 살고자 하고 얼마큼 같이 있을 수 있는지. 


#프라이버시 #두가구한지붕 #공용공간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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