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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포동굴 Jun 07. 2022

첫 번째 도면을 받다

계속해서 두 집 사이의 벽을 쌓는 나.  과연 함께 살 준비가 되어있는가

첫 번째 도면


2022년 6월 4일, 떨리는 마음으로 4개월 된 아들과 함께 온 가족이 총출동하여 건축사무소를 찾아갔다. 오늘은 사무소에서 첫 도면을 제안하는 날.


도면은 크게  가지 옵션을 주셨다. 건축주분들이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였던 #프라이버시를 중심으로  가구가 사는 . 그래서인지 기본적으로  옵션  세로로  동이 올라가 있었다. 하나는 중간에 구름다리가 있고, 다른 하나는 없다의 차이? 그냥 좁은 택지 위해 ' ' 올라간 모양새였다.


대략 이런 느낌의 제안. 물론 실제 구조는 이보다 복잡한데 받아들이는 고객 입장에서는 요런 느낌이었다.



흠... 뭐지? 최종 목표로는 '하나의 집'을 지향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았을 때부터 하나의 큰 덩어리 집을 원했고, 이를 위해 우리 부부&자녀만 쓸 수 있는 공간을 포기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는데? 첫 번째로 제안한 집들은 옵션에 관계없이 하나같이 완전히 분리된 집의 모습이었다. 내가 요구했던 #며느리 입장에서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완전히 구현된 집이긴 했다. 근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물론 원한다면 마당을 통해 연결이 되는 구조였지만 뭐랄까, 아파트 옆 집 사는 느낌? 그러나 건축사분들 앞에서 가족 구성원 들 중에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나만 불만인 것인가?


딱히 불만사항을 바로 표현하지 못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건축사무소와의 미팅을 끝냈다. 일단 최대 10일 정도 시간을 드릴 테니 천천히 고민해보고 다시 피드백을 드리기로 했다.




눈으로 보기 전에는 참 받아들이기 어렵네


미팅을 마치고 건축주 4명 (+ 우리 4개월 난 아들)만 모인 시간. 너무 웃으면서 이야기들이 진행되어서 다들 만족하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모두 다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 그래 집의 전체적인 구조와 콘셉트를 정하는 게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데 이렇게 한 번에 끝날 리가 없지.


공통된 의견은 집이 너무 쪼개져있어서 하나의 집처럼 느껴지지 않고 땅콩주택처럼 내부 공간도 넓지 않아 모양 빠진다는 것. 그런데 모두 그 자리에서 할 말은 또 없는 터였다. 왜냐하면 처음 우리 가족이 요청한 내용들이 다 반영된 집인 것 또한 맞기 때문이다. 특히 나... 할 말이 없었다. 아가를 돌보느라 건축사무소에 자주 가지 못해 별도 줌 미팅을 요청하여 따로 건축사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름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좀 더 열린 옵션을 드렸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사생활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터였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나의 집처럼 만들려면 두 가구가 함께하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필요성을 공간화된 도면을 받아보고 나서야 다시 절실하게 느끼다니. 이게 머리로 이해를 하는 것과 별개로 마음으로 제대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참 오래 걸리는 것 같다. 그래도 눈으로 그 결과물을 보니 마음을 바꾸어야겠다는 결심이 크게 선다.


어느 공간을 공용공간으로 만들 것인가? 이 부분의 키는 며느리인 나에게 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이지만 다시 똑같은 고민을 시작한다. 내가 어디까지 잠옷바람으로 맘 편하게 이 집 안을 활보하고 다닐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시부모님과 함께 오픈해서 살 수 있을까...? 중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 집에서 시부모님 없이 나,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할 예정이기 때문에 (정확한 시점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그래도 10년 이내로 보고 있으며 이는 시부모님과 다 합의된 전제조건이다) 분명 한 가구가 살아도 단절되지 않고 다 연결된 집을 짓는 게 나에게도 중요하다. 그러나 당장 처음에 살 때 어느 정도 시부모님 댁과 부대끼며 살 수 있는지 바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는 정말 '함께' 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에 주말 내내 고민하였다. 나는 과연 가족이 될 준비가 된 것일까? 너무 #며느리라는 틀 안에 #시월드에 벽을 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시부모님께서는 이미 거실과 주방은 같이 사용해도 좋겠다, 나중에 너희들끼리 살 때를 고려해서 설계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많이 양보를 해주신 상황. 이 외에도 하나의 집을 만들기 위해 각자 가지고 계셨던 로망(다락방 사용, 초록색 식물이 가득 찬 정원 등)을 많이 포기해주셨다.


나름 시부모님과 함께 살 준비를 하는 과정으로 주 3회 정도 시부모님과 만나 시간을 보낸 지 세 달 정도가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손자의 탄생이지만. 아가를 데리고 어디를 나갈 수 없기에 주로 내가 살고 있는 신혼집으로 오셨는데, 처음엔 그렇게 불편했던 시부모님의 방문이 이제 많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모유수유 중에 방문하시면 문을 열어드릴 도리가 없어 집 비밀번호도 알려드렸는데, 시부모님도 내가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절대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오시지 않고 미리미리 몇 시에 도착할 것을 꼭 알려주신다. 이런 상호 신뢰관계가 쌓이다 보니 이전보다는 남편 없이 시부모님 하고만도 잘 돌아다니긴 한다.(물론 이게 가능한 이유에는 손자의 존재가 크다. 나는 공동육아를 달성할 수 있고 시부모님은 귀여운 손자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건축사무소에서 처음 제안한 집 모양으로 간다는 것은 사실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사촌 정도 되는 모양새이다. 나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함께 살 집을 짓기로 답을 정해두었음에도 아직 그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럼 어찌하겠는가, 나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한 집'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야지. 결국 '한 집'으로 은 몇 년 후 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

마당: 대신 2층이나 3층에 테라스가 있어 프라이빗(이 단어는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네)한 야외 공간이 있으면 된다.

거실: 사실 소파/TV가 들어가는 큰 거실은 필요가 없다. TV를 많이 보지도 않거니와 남편과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식탁이다.

큰 주방: 사실 나의 부족한 살림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무서워 시부모님과 주방을 함께 쓰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미 나의 요리실력이라던지 살림 센스는 익히 알고 계시고 ㅋㅋㅋ 아무리 봐도 이 택지에 큰 주방을 두 개 들이는 건 비효율적이다. 물론 나만 쓸 수 있는 간이 주방은 필요하겠는데 그건 나중에 아이들 간식 챙겨주거나 간단히 밤에 야식 먹기, 맥주 한 잔 하는 정도의 용도겠다.


이에 1층에 나의 공간이 필요가 없고 거실/주방은 어머님 아버님이 주로 사용하시는 쪽에 크게 만들어 두고 함께 사용할 수 있겠다는 결론이 선다.




이렇게 집을 짓고 살다 보니 너무 불편하다? 3년 이상 함께 살아보고 너무 힘들다 싶으면 다시 독립해서 나오는 거지 뭐. 남편 역시 충분히 경험해본 후에도 아니다 싶으면 다시 분가하는 것에 찬성하기로 했다.


자 이제 다시 건축사무소에 이야기하러 갈 차례이다. 앞으로도 참 여러 번 콘셉트 도면이 왔다 갔다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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