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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포동굴 Dec 01. 2021

첫 번째 건축 사무소 방문

결국 그 집에서 넌 무엇을 할 것인가

2021년 9월 8일 수요일. 날씨 참 좋은 초가을의 평일 오전. 나와 남편은 연차를 쓰고 시부모님 두 분과 함께 첫 번째 건축 사무소를 방문하러 먼 길을 떠났다.

(건축 사무소들은 왜 하나같이 내가 살고있는 일산에서 저 멀리 있는지...)



건축 사무소에 방문하기 까지만 6개월이 걸렸다.


사실 가족끼리 모여 어떤 집을 원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수 개월째 진행 중이었는데, 정작 실제 사무소를 방문하러 가는 데까지의 진입장벽에 꽤 높았다. 어떤 건축 사무소를 가야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을 짓겠다는 것은 일반 아파트/오피스텔 분양을 통해 다 완성되어 있는 옵션을 선택 (아니지, 요즘은 간택되는 것일 수도)하는 것과 다르다. (나야 결혼할 때부터 이미 택지가 정해져있긴 했지만) 집을 어디에 지을지 땅 부터 알아보러 다녀야하고, 땅이 선정된 이후에는 우리의 이상을 구현해줄 설계소를 찾아야 한다. 쉽게 생각하자면 쇼핑의 연속인데, 이 쇼핑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경험하는 일반적인 구매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액수 ㅋㅋㅋ...  부터 단위가 다르기도 하지만 소요기간 및 구매 종료 이후 내 인생에 끼치는 영향도를 고려했을 때 어느때보다 신중하고 조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무지'에 있다. 세상에는 참 많은 건축사무소가 있다. 그러나 어느 건축사무소가 좋은지 파악하는게 무척 막막했다. 옷, 음식 같은 경우야 내가 태어난 이후 부터 지금까지 30여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구매 경험을 통해 선호하는 브랜드나 종류가 무엇인지 정립되어 왔다. 그러나 건축 경험은? 일생의 처음이다. 멋진 건물을 찾아가서 구경하고 좋아하는 경험이야 많겠지만 그 공간을 누가 어떻게 설계하고 시공했는지는 알게 뭐람? 응, 지금까지는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었겠지만 이젠 알아야 돼.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 이후 나만의 안정된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고, 수도권 집값 상승으로 인해 근교로 이주하여 전원단독주택을 지으려는 시도가 많아져서 인지 관련한 유투브,방송 및 도서 컨텐츠가 근 1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아울러 잡지 및 뉴스레터 역시 기존의 상업적이거나 공공 건축 수준의 큰 스케일을 주로 다루던 컨텐츠 일색에서 벗어나 주택, 방 단위의 논의를 전개하는 매체가 많아진 것도 우리에겐 호재였다. 그 중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매체는 '브리끄'(brique) 였는데, 주택의 상세 프로파일(대지면적 등) 뿐 아니라 건축사무소도 함께 소개하는 잡지여서 (여전히 아는 바가 적지만 그나마) 현실감 있는 상상을 함과 동시에 일정 부분 큐레이션 된 사무소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매거진에서 소개된 주택/사무소 중 우리가 짓고자 하는 스케일의 집을 다수 건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이 사뭇 마음에 들었던 A 사무소를 우선 방문하였다. 



초면은 아닙니다만 여전히 새롭다.


사실 나와 남편은 A 사무소 방문이 처음이 아니었다. 


앞서 소개했던 건축잡지에서는 멤버십 고객들을 대상으로 '건축가와의 하루'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다. 이번 해 여름 이후에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더이상 오프라인 이벤트를 운영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21년 3월 정도부터인가, 시부모님과 만날 때마다 함께 살 집에 대해 조심스레 논의를 시작하였고 그 시점부터 '건축주 되기'와 관련한 좋은 학습 기회가 없을지 요리저리 물색하던 남편의 눈에 이 이벤트가 들어왔다. (아, 집짓기 관련 가장 열의가 넘치는 것은 바로 남편이다. 역시 구하는 자에게 기회가 찾아오는 것인가!) 매 주차별로 다른 건축가분들의 만남이 잡혀있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더욱 건축사무소에 문외할 때여서 어느 곳을 방문해야할 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것이다. 이에 일단 한번 경험이나 쌓아보자는 생각으로 순전히 우리 부부의 스케쥴 상 딱 비는 날에 맞춰 세미나를 신청하였고, 그 때 방문하게 된 곳이 바로 이 사무소였다. 


21년 4월 세미나 당시에도 코로나는 지속 중이었기 때문에 소수 정예 4명만 모집하여 이벤트가 진행되었는데, 그 4명 중에 업계 관계자 분 2명을 빼면 건축에 문외한 우리 부부 뿐이었다!!! (이렇게 운이 좋을수가!) 그래서 어찌저찌 세미나가 우리 부부의 Q&A를 중심으로 흘러갔는데, 그 가운데서 건축가 분의 지향점이 오롯이 건축주에게 향해있고 설계 및 시공에 그 만큼 오랜 시간을 들이시는 분임을 알게되어 괜찮은 건축 사무소로 내 마음 속 리스트에 적어두었었다. 특히 건축가 본인이 3대가 함께 사는 집을 직접 설계하여 거주하고 계시다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나와 유사한 상황을 직접 겪으셨으니 그 이해도가 더 높으시리라 기대하며.


그로부터 5개월 뒤 똑같은 건축사무소를 두 번째 방문하였다. 이번에는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건축주인 시부모님과 함께. 처음이 아니지만 여전히 이 곳은 새로웠다. 2층~4층까지 건축사무실로 사용되는데 2,3층은 실무자 분들이 맥북 앞에서 열심히 캐드작업 진행 중이셨고, 그 옆으로는 대학시절 건축학과 친구들의 졸업작품전시회에서 보았던 건축 모형들이 쭉 쌓여있었다. 상담이 주로 진행되는 4층 다락부는 높은 층고에 테라스까지 겸하고 있어 방문을 더욱 설레게 했다. (아 여담으로 들었지만 테라스 설치는 건축사무소의 낭만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옆 집의 일조권 확보를 위한 법적인 규제사항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고객들과 상담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산뜻해졌으니 양쪽 건물 다 이득이지 않을까)


건축주가 모두 모인 첫 번째 미팅


건축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 4명의 고객과 건축가가 만났다. 분위기는 캐쥬얼하고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이리저리 매체를 통해 좋은 집들을 많이 봐서 눈이 한 껏 높아진 4명의 고객은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집에 대한 이상과 걱정거리를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걱정거리의 대다수는 물론 공간의 제약과 '비용'이었다. 아직 계약을 정식적으로 진행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새로 알게된 부분이 많았다.


이번 미팅을 통해 새로 깨닫게 된 점


1. 단독주택의 층 고: 3.5m 선이 최대치이다. 4m 선은 상업건물이 아닌 이상 과한 경향이 있고, 현실적으로 층고가 높아질수록 공사비는 비싸진다.

2. 평당가격: 흔히 말하는 평당가격은 인테리어 마감을 포함한다 (창문, 변기 등도) 평당 가격에서 제외되는 부분으로는 가구/가전, 설계감리비 및 기타 세금. 2021년에 확실히 집 짓는 수요가 많아지고 원자재 가격도 급등하였다. 이에 시공사 등의 업체들의 스케쥴도 많은 편이고, 이번해 착공한 프로젝트들의 공사비는 최소 600에서 최대 1,500만원 수준이다. (아 물론 회장님들은 이보다 더 비싼 집을 지으실 수 있지만 ㅎㅎㅎ) 그래서 대략의 비용을 산출할때 800-1,000만원/평당 계산해볼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설계/시공을 진행해나가다보면 초기 예산을 초과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3. 무엇이 비싼 자재인가: 콘크리트 > 중목 > 경량목 수준으로 비용이 비싸다. 

4. 평수에 대한 감: 아파트 평수 = 단독주택 평수로 보면 된다. 아파트가 보통 공용면적이 포함되어 있어서 동일 평수의 단독주택이 더 넓게 느껴진다고들 하나, 단독주택 역시 계단 및 주차공간 등을 고려 시 빠지는 공간이 은근 많다.

5. 지하 공간: 건축주 4명이 모두 자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차 공간 확보는 필수 불가결이다. 지상 공간을 줄이고 싶지 않으니 막연히 지하 주차장을 만들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1) 차가 진입하는 경사로 및 차간 간격을 확보해야하고

2) (지하구조가 없는) 옆 집으로부터 흙의 하중이 넘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추가 보수공사 등을 감안하면 우리가 지으려는 대지면적 100평에서의 지하공사란 비용 대비 너무 비효율적인 구조이다.

6. 시공하기 좋은 타이밍: 3월 혹은 8월말/9월 초 시작하여 완공까지 6~7개월 정도를 본다.

7. 집 건축에서 가장 높은 비용을 차지하는 요소: 창문. 아파트에서 나름 고급이라고 판단되는 L모 대기업의 창문은 단독주택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저렴/하급 옵션이다. 시스템&알루미늄 마감 창문으로 진행할 경우 얇으면서도 단열에 문제가 없는 집을 지을 수 있는데 문제는 가격...

8. 설계사무소 비용: 설계 시작 시점부터 준공 까지 4번에 나누어서 비용을 지불한다. (이건 사무소마다 조금씩 다를수도)

9. A/S: A/S의 주체는 시공사이며 주요부는 10년, 창문은 3-5년, 마감재는 1년 선이 업계 일반.

10. 집 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이 집에서 건축주 분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생각하고 이를 건축가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또한 잠깐 머물고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집에서의 5년, 10년 후의 예측을 해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 그에 따라 집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큰 숙제를 받고 다음 건축소를 물색한다


건축소 상담 이전에 나름 4명의 건축주 간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건축가 앞에서 각자의 생각을 풀어가다보니 여전히 불명확한 (혹은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놀랐다. 각자 집에 대한 로망 및 기대사항이 다르기도 했지만, 제약이 있는 토지면적/예산 하에서 어느부분을 서로 양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지 못했던 듯 하다. (물론 이 집에서 며느리의 입장에 있는 내 위치상 그게 어렵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이 서로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건축사무소 방문은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옷 하나를 살 때도 수십여개 브랜드를 검색해보는데 하물며 건축사무소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건축주 4명의 시간을 맞추어서 건축 사무소들이 많이 모여있는 성수동 혹은 양재 쪽으로 한 번 미팅하러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소 두,세군 데 건축사무소를 더 방문해 볼 생각이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계속 남아있겠지.


나는 이 집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집에서 5년 후, 1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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