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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go Aug 13. 2020

자유로부터의 도피

채워 넣어야 할 흰 바탕을 바라보며

나는 블로그를 하고 있다. 하나는 블로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블로그로 돈을 벌 수 있다기에 무작정 뛰어들어 본 워드프레스 블로그. 하나는 얼마 전에 시작한 티스토리 블로그이다. 이 블로그들의 수익은 대부분 구글 애드센스로 얻어진다. 이 애드센스를 받기 위해선 애드 고시라고도 불리는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그중에 한 가지 조건은 1일 1포스팅과 충분한 양질이 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블로그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한번 뭐라도 해볼까? 수익이 나면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티스토리 블로그는 내가 배우는 것을 공유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두 번째 블로그를 시작한 지는 겨우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찾아오는 1일 1포스팅의 부담은 재미로 시작한 두 블로그 둘 다 어느 순간 꼭 해야만 하는 일로 만들어 버렸다.



자유롭게 내 생각을 말할 공간이 필요해서 만든 내 블로그가 다시 내 자유를 속박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글을 하나씩 써가고 그 글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모여 내 정체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아마 이 브런치에 계속 글을 쓰고 사람들이 읽기 시작한다면 이 곳에서의 나의 정체성도 타인에 의해 정의되고 평가될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나는 또다시 평가받기가 두려운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미숙함을 보이고 '이런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두려운 이유는 '내가 나일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독하게 회피 주의적 성향으로 살아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싫어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남들이 원하는 대답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그 대답을 해주는 사람으로서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낮은 자존감을 자랑이라는 듯이 떠벌리고 다니곤 했다. 난 자존감이 너무 낮아. 너처럼 되고 싶다. 그럼 사람들은 말했다. 괜찮다고. 나는 그것을 위로로 삼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했어.



그렇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내 의견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나 괜찮니?라고 묻지 않고 남에게 내가 괜찮은지에 대해서 물었다. 나에게 인정받기보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먼저였던 삶. 그것은 늘 불안했고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와 절망으로 가득했다.



자연스럽게 내면이 약한 나는 그룹에 속하는 것을 선호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꿈꿨으며 작은 돈에 집착했다. 아끼는 삶은 당연했고 투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길 원했고 누구보다 빠르게 성과를 이뤄내는 것에 집착했다. 그 일을 이뤄내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무언가를 재미로 시작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것이 내가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을 원망했다. 누구보다 남들을 위해 일하는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토로했다.



그러던 내가 소속감보다 자유를 원하기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변화는 작년 말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이지성 작가의 '생각하는 인문학' 책을 읽었다. 처음으로 다른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말하는 대로 인문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집에 있던 중학생 필독서인 얇고 가벼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꺼내 들었다. 읽었다. 하루에 10분씩,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5번을 완독 했다.



고전 인문학. 듣기만 해도 어렵다. 심오하고 학식이 높은 학자들이 나와 어려운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나는 알 수 없는 철학을 마구 뽐내겠지.라는 처음 나의 생각은 사실이 아니었다. 죽음에 관해 논했고,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지. 사후 세계에 대해서 논했다. 읽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와.. 이거 어린애들이 엄마한테 물어봤다가 쓸데없는 질문 한다고 등짝을 후 드려 맞을 질문인데..? 였다. 죽음은 죽음이지. 죽으면 다 끝나는 거지. 없어지는 거지. 다 알고 있는 정답 아니야? 왜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거야. 이럴 시간에 실용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나?



이렇게 시작했던 인문학을 5번 완독 할 무렵, 나는 고전 인문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왜'인지 생각하고 그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찰하고 사유하는 것. 그것이 자아를 확립하는 시작이자 자존감의 확립이었다. 내가 내 의견에 대해서 묻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



책 읽기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것이 바로 일기 쓰기였다. 글쓰기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확실히 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풋과 아웃풋이 만나 큰 시너지를 창출했다.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왜 이유도 깨닫게 되었다. 자기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회피보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던 불안감은 도망갔다. 실제로 나는 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더 불안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행복했다. 불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더니 불안이 마침에 나에게서 멀어졌다. 시험공부를 다 끝마치지 못한 채 수능 시험을 치는 악몽을 자주 꿨었는데, 이로부터도 해방되었다. 사유하는 행복과 기쁨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나는 강해졌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만, 과거의 내가 고개를 드는 날이면 여전히 무너지고 아프고 괴롭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어제도 즐겁고 강한 마음으로 불안정성을 마주하며 살았지만 오늘의 나는 또 무너진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 버튼을 클릭했지만. 오늘은 빈 화면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이유를 생각했다. 또 도망치고자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냥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실패자라는 것도 모를 거야.



블로그는 나에게 내가 얼마나 미숙한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얼마나 잘 틀리는지. 그런 나도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말해주는 공간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용기'가 사라지는 오늘의 나에게 과거의 나는 또 무섭게 찾아온다. 그리고 묻는다. 이제 내가 필요하니?



아니, 나는 그냥 지금이 미숙한 내가 좋아. 미숙하고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우고 책임을 지는 내가 좋아.



내가 나를 포기하면 세상은 누구보다 빠르게 나에게서 등을 돌린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나를 결코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내가 진짜 진짜 되고 싶은 것. 진짜 원하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그에 따라오는 책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발언하기를 두려워한다. 그에 따라오는 비난이 무섭기 때문이다. 남들의 시선이 두렵고 평가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에 나를 놓아두어선 안된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다. 오늘의 나는 무너졌지만 또다시 일어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들어주려고 한다.



가자. 글 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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