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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go Aug 13. 2020

독서토론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 이름은 '오이고'

친구들과 독서 토론 모임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시작은 나를 포함한 우리 셋.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충만하나 현실의 삶을 산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 해왔던 우리가 우연히 얘기를 나누다 마음이 맞았다. 그중에 한 친구는 내가 인문학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자주 마음을 털어놓곤 했던 친구이다. 다른 한 명은 이제 막 길고 긴 시험공부를 끝냈다.



내가 마음을 자주 털어놓곤 하던 A가 '설민석'이 진행하는 '책 읽어드립니다' TV 프로그램에서 '걸리버 여행기'에 대해 다루는 걸 보았다고 했다. A는 평소에 영화나 책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심사를 가진 그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늘 즐거웠다. 나는 흥분하며 좋아한다 말할 만한 관심사가 별로 없었기에 나에게 그녀는 신기한 존재였다. 고전 인문학 읽기를 시작하고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한 재미를 알아버린 후로 그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세상에 흥미롭고 신기한 것이 차고 넘쳤다. 그리고 책 읽기를 통해 내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요새 나에게 제일 재밌는 일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 독서 토론을 하면 재밌겠다는 말을 A와 종종 나누었다. '소모임' 어플을 통해 같이 가입할 독서 토론 모임도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마음에 드는 독서 모임이 A가 일하는 시간과 겹쳤다. 그럼 우리 둘이 시작하는 건 어때?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모르게 우리는 그러기로 약속을 하였다. 첫 번째 책은 A가 얘기했던 '걸리버 여행기'로 정하였다. 풍자에 대한 내용이 많고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생각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둘이서라도 시작해보자 했던 독서 토론 모임에 B가 들어왔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 무리를 만났다가 B도 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녀를 영업해오겠단 A가 정말로 B를 카톡방에 초대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얘기라도 나눠보자 했던 독서 토론에 B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모임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이 그 독서 토론 모임 첫날이었다.

 


B가 카톡방에 초대된 날 우리는 톡 게시판을 이용해서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만들었다. 댓글을 활용하여 누구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언제든 자유롭게 추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임 이름도 정했다.



오.이.고.



그렇다. 내 브런치 아이디이기도 하다. 그만큼 애정이 많다. 우리 모두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 이름을 만들었으니 규칙을 만들 차례였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규칙을 만들었다.



[규칙]

1.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다.

2. 타인의 의견을 비웃지 않는다.

3. 반대되는 의견을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4.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용기를 갖는다.

5. 틀렸음을 깨달았다면 기뻐한다.

6. 오늘 한 걸음 더 성장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규칙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건강한 사회의 기본은 발언의 자유가 허락되며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으며 이를 인정하는 것은 줏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있는 것'이다. 나는 틀려도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은 내가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이 독서 토론을 통해 우리가 '잘 거절당하는 법'을 배웠으면 했다.



'거절당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안하지 않고, 내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거절당하는 권리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요새 주변에서 사소한 것조차 원하는 바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일어날지 않을지도 모를 분쟁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의 사소한 발언권마저 없애버렸다. 말로 꺼내지 않은 마음은 실체가 없기에 쉽게 사라진다. 그렇게 우리는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도 알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그렇게 책 목록을 만들고, 이름을 정하고, 규칙을 세우고, 오늘 우리가 만났다. 책에 대해서 4시간 동안 토론을 하였다. 아무도 독서 토론 모임에 나가본 적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몰랐기에. 시작은 어색하게 쭈뼛대었다. 이내 불이 붙었다. 우리 세 사람이 독서를 하는 방법과 세상을 보는 관점은 놀랍도록 달랐다.



A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독서의 재미로 여겼다.

B는 우리나라 과거 역사적 관점에서 책을 해석하였다.

나는 어떻게 이를 나와 현대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책은 작가가 아닌 독자에 의해서 해석되고 정의 내려진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배움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작가는 철학적 사고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정의, 이성, 자비, 도덕, 관용, 악덕, 본성, 야만, 이기심 등 인간의 본성과 이성에 대해서 다뤘다. 나는 소크라테스 철학을 좋아하기에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이 공감이 갔다. 특히 이성적 존재의 후이늠의 이야기는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어 심장이 두근대었다.



혼자서는 하지 못했던 생각이 세 명의 다른 관점이 만나 또 다른 통찰로 이어지는 경험도 했다. 그중 하나는 작가가 이성뿐 아니라 '자유'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1) 걸리버가 처음 도착한 소인국은 복지국가의 형태를 띤다. 자유가 속박되고 황제의 칙령에 의해 사람들은 칩거하기도 음식을 바치기도 한다. 하물며 거지도 없고 노인이 되면 나라가 이들을 시설에서 보살핀다.

2) 거인국에서는 자유로운 상행위와 유희를 인정하며 거지가 존재한다. 작가는 책의 뒤 부분에서 네 번째 여행지, 후이늠국 다음으로 거인국의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얘기했다.

 3) 세 번째 여행지 라퓨타에서는 사람들의 발언권이 제한된다. 학자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물건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화하며, 더 많은 하인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에 유리하다. 가난한 자는 많은 물건을 가지고 다닐 수 없기에 발언이 제한된다.

4) 후이늠국에서는 훨씬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된다. 걸리버는 처음으로 후이늠국에서 떠나라는 권유를 받는다. 처음으로 강요나 명령, 우연이 아닌, 자발적인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이늠은 야후의 본성적인 악함 까지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도덕적이고 이성적 통치자 아래 개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국가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만의 답을 찾고. 또 이를 남들과 공유하고. 거절당하고. 다시 새로운 답을 찾는 것.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독서 모임 참 잘 시작했어.

고마워 A, B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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