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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go Aug 17. 2020

우울증의 고백

불완전한 나를 마주하기

살다 보면 무기력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그때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가슴에 응어리진 무언가에 시원한 바람이 닿는 게 느껴질 때까지 깊이 한숨을 쉬곤 했다. 불평등한 세상을 원망하고 그 속에 이렇다 할 재능 없이 태어난 나 자신을 저주했다. 나에게는 이런 무기력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곤 했다. 특히 타인이 봐주었으면 하는 나를 연기하지 않는 집에서는 이것이 훨씬 심했다.




몇 시간씩 드러누워 핸드폰으로 남들이 만들어 놓은 영상을 홀린 듯이 소비하는 것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그것은 대개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그저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이것이 세상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 안주했다. 때로는 지체 높으신 그들이 얘기하는 자존감 강의를 홀린 듯이 들으며, 마음을 다잡곤, 돌아서는 순간 잊어버리곤 했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눈을 떴다. 모든 일들이 하기가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밤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나는 순간도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내 몸뚱이 하나 다루기가 이렇게 피곤해서야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아름다운 곳에 가도. 사람들이 즐기는 경험을 함께 해도. 나는 그 속에서 순간순간 도태되었고 때때로 죽고 싶었다.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던 것 같다. 나의 모든 흔적이 수치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내 한마디 한마디가 부끄러워 이를 곱씹는 밤을 보내곤 했다. 꿈을 꾸기 일쑤였다. 쫓기는 꿈. 그것이 공룡이든, 사람이든, 시간이든. 하늘을 아슬아슬 떨어질 듯 말 듯 걷는 꿈도 자주 꾸었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잠꼬대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나에게는 몇 가지 말 습관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무섭다는 말이었다. 대학교 입학이 확정되고 개강 전 학과 설명회 날이었다. 2학년 과대 선배가 돌아다니며 뒤풀이 참석 여부를 조사하러 다녔다. 저 멀리서부터 그가 다녀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온 신경을 다해 모르는 척을 하고 있던 나에게 그가 물었다.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유를 물었다. 무섭다고 대답했다. 그 선배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득했다. 나는 그날 그곳에 가지 않았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나는 내게 그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느낄 두려움의 크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시작하려 하는 그 일이,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런 성향은 더 두드러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적잖이 당황했다.



2016년 겨울, 나는 교환학생으로 핀란드에 있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북쪽 지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간에 배를 채우기 위해 맥도널드에서 요기를 하던 중 핀란드인 친구가 말을 걸었다.


너는 어떤 음식을 좋아해?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유일한 한국인 친구가 나를 대신해 대답을 했다. 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해. 매일 먹어. 나는 그렇게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보는 친구보다도 나 스스로에 대해서 몰랐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궁금하지가 않았다. 나는 대답을 대신했던 한국인 친구보다도 나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남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나는 모든 질문에 정답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던 이유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는 것에는 정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얘기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답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거나, 타인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말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남들에게 자신 있게 드러낼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깔끔하고 새하얀 빛이 잘 들어오는 공간에 머무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곳은 못생기고 냄새나는 내가 있을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다 기분이 괜찮은 날에는 보통 사람들도 가끔씩 이런 생각이 하는지 궁금했다. 밝음으로 밝게 빛나는 사람들을 부러웠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세상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세상은 불완전하다.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나는 불완전한 세상에 태어난 불완전한 인간이다.

따라서 나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  



그 뒤로 나는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 나를 그대로 인정하기로. 지금까지의 삶이 내가 이런 사람인 이유를 남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삶이었다면, 이제는 그냥 내가 나를 인정하는 삶이다. 나는 나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미숙하다. 나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그것은 이 불완전한 세상에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 나로서 권리이다.



내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얼마나 자주 틀리는지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삶에 멋진 변화들이 생긴다. 도전이 쉬워진다. 어차피 나는 또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지속해서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면 된다.



내가 했던 가장 위대하고 어이없던 도전 중에 하나는 영어 회화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영어회화 과외로 4개월 동안 5명의 학생을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이 도전의 시작은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아니, 내가 이렇게 영어 잘하기를 원하는 만큼, 한국어를 배우고 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은 없을까? 나 한국어 선생님 잘할 수 있는데.'


네이버에 이를 검색했다. '한국어 선생님 등록.' 스크롤을 내리다 숨고 어플에서 특정 분야의 고수에 나를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국어 선생님으로 나를 등록하고 싶었으나, 이에 대한 수요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영어 회화 선생님으로 등록했다.



등록하자마자 반경 10km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영어 과외 요청서가 도착했다. 나에게 날아온 요청서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한 번도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생각으로 사람들이 과외를 요청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어쩌면 내가 이들을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영어를 대단히 잘하지 않는다. 다만 핀란드인 남자 친구와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애를 지속했고, 외국인들과 일상 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그런 내 영어를 항상 더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받기만 하는 존재로 남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눌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상 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딱 그 정도만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 얼마나 떨렸는지 기억한다. 프로필을 만들고 견적서를 처음 발송할 때 차오른 땀방울이 핸드폰 화면에 지문을 남겼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짓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나는 견적서를 발송했고, 답장이 왔고, 그렇게 첫 번째 성인 영어 회화 과외를 시작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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