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이라는 모습의 촌평

by 박찬현

[격]이라는 모습의 촌평

-박찬현-


사회 속에는 자기의 평판이라던가 자신의 우월감을

은근한 화력처럼 드러내려는 불꽃들이 있다.

그것은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이라고 본다면 좋게 생각

하는 것이지만 그런 사고를 가진 이들이 가까운 무리에

포진해 있다면 상당히 위험한 존재이다.

우리는 "격"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대체적으로 그것은

인간이 훌륭한 자존감을 지니고 있을 때 비로소

명분이 서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가족이라는 틀을 본다면, 수직으로 통용되는

언어의 뜻은 분명 격세지간이 생겨나기에 소통이 될 수 없다.

또, 평행으로 놓고 보았을 때 역시 형제 자매간인 2촌 사이에 따옴(,)표가 개입이 되면 문제는 즉각 야기된다.

그 따옴표가 접착제 역활을 한다면 매우 훌륭한 가족 집단이라는 직계존속 가계도가 그려지지만,

그 따옴표가 분해하는 이물질이 된다면 심히 고약한 난장판이 조성된다.


분명 가족이라는 상호 이해적인 울타리가 자신의 우월감을

펼치는 장이 되어버리면 타산적인 일개 사회 울타리 속 로비보다 더 추하고 비열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이어서 그것은 울타리를 짓부수며 네편 내편으로 갈라져

서로를 할퀴는 생채기만 만들 뿐 치유약도 없는

자존감의 뿌리를 썪히고 말 뿐이다.


학자가 쓴 글이 생각이 난다.

동물처럼 인간도 같은 어미의 탯줄을 달고 나왔기에

숨어 있는 생존의 본질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아동기에는 상호 의존하는 성질을 보이지만

성인이 되어 가면서 비열하게도 경쟁을 하게 되고

밟고 일어서려는 나쁜 DNA가 형성 되어 있기도 하다.


부모가 자신의 본연의 의무를 다한 연후 늙고 병이들면

그것을 몹시도 애닲고 안타까움에 괴로워 하는 자식이

있는 반면, 부모의 위중한 병보다 자신의 일신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자식은 그저 생색일색이 된다.

부모의 건강과 생명이 우선인 자식은 어떠한 방법을

동원 해서라도 생명을 구하고 찾으려 한다.

그러나 생색 위주의 자식은 액면상으로는 누가 보아도

부모를 위해 땀을 휘날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물밑에는

생명을 향한 애끓는 점이 손톱의 때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격을 나누는 형평성 논리이다.


지금의 우리는 어느 격을 택하고 있는 것일까요,


2016. 10. 24.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