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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잉송 Mar 20. 2023

작은 깨달음

작게 깨닫고 쉽게 행복해지기

저는 어느 종교든 교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유명한 영성가들이 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깨달음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적당히 작게라도 깨닫고, 생활 속의 갈등이나 어려움을 수행 삼아 작은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제 삶에서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다 아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알아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지만, 

아주 낮은 단계의 작은 깨달음에 대해서는 제 경험에 비추어서 조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낮은 단계의 깨달음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극히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개념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졌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살게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란 '내가 가진 이름 직업 나이 재산 등의 껍데기는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자동적 사고,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틀(해석)과 신념, 그리고 그에 따른 감정과 행동은 그저 내 뇌가 만들어낸 이야기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껍데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그에 따라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질 수 있음을 알고, 그로 인해 나의 생각과 행동과 몸의 상태 또한 나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알아차림’과 ‘내려놓음’을 통해, 매 순간의 삶을 즐기는 마음으로 ‘순간의 삶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깨달음은 꾸준히 수행해야 하고 완벽히 깨닫는다는 것은 어쩌면 엄청나게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 나는 껍데기가 아니구나’라고 알아차리고 내 껍데기에 집착하지 않는 연습(명상이나 감정일기, 자기 확언등)을 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180도 까진 아니더라도 150도 까지는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내가 겪고 있던 갈등의 70~80%가 사라진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더 이상 직장상사와의 갈등에 집착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나의 발전에 온전히 쓸 수 있게 된다면? 

사랑하는 아이나 배우자와 더 이상 큰 갈등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물론 쇼핑 중독이나 게임 중독이나 가끔 일어나는 분노나 우울감 같은 삶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꾸준히 수행한다면 더 좋아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예를 들면 나의 부모님)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배가 불렀구먼, 내려놓고 산다고 세상 잘 살아지냐?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저도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부모로부터 직업이 훌륭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람취급도 못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아마 저의 부모님도 조부모에게서,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신념을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면, 삶이 행복해지기가 너무 힘듧니다.

마음속에 세상은 살기 힘들다는 신념은 실제 삶을 더 살기 힘들게 만들 뿐 나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대단한 껍데기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모자란 것이 있으면 있는 대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이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타인과 자신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껍데기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 때, 사람들을 본질 그 자체로 만날 수 있게 되고, 협력과 소통이 가능해지며,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분야에서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결핍을 메우려는 데 노력을 쏟는 사람은 자신이 어딘지 모르게 좀 부족하다는 것을 무의식에 안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끊임없이 나의 결핍을 들키지는 않을까 하며 항상 노심초사하며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삶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길 원하면서 남에게 자신의 행복을 내맡기는 삶입니다.

 결국 큰 성취를 이루기보다는 잘해야 남들만큼의 삶을 사는 ‘보통의 삶’-보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런 삶은 참 괴롭죠...- 을 살게 됩니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저 껍데기일 뿐입니다. 

누구나 태어났을 땐,  이런 스토리(직업, 나이, 재산, 가족, 습관적인 생각, 습관적인 감정상태, 신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채 태어났고, 죽을 때 역시 이 중 어느 하나의 껍데기라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을 때  10원 한 장이라도 가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의 욕구불만을 죽음 너머서 까지 가져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확실히 있습니다. 

 ‘나’라는 스토리와 껍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날 내 앞에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차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를 냈죠. 

 “이런 XXX 죽을라고 환장했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뒤에 따라오는 엠뷸런스를 보면서 제 생각과 감정은 달라졌습니다. 

“아 정말 급한 일이 그 뒤에 있었네~ 저기 엠뷸런스에 있는 환자는 괜찮을까?”


내 앞에 깜빡이도 안 키고 갑자기 끼어든 차가 있었다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

그 상황에 대한 저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달라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가 처한 상황과 나의 반응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상황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 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날 때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행동과 같은 '자동적 반응'이 내 현실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 빅터프랭클  -


 나의 현실은 내가 내린 모든 결정의 총합입니다. 

 결정이란 어떤 사건에 대한 나의 반응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자신의 처한 현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극과 반응 사이의 어떤 것 즉 ‘자동적 생각’의 아웃풋 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내 삶은 사실 ‘나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생각과 감정의 습관’에 따라 내린 결론과 선택의 총합인 것입니다. 

 나의 일생에 내가 하는 모든 감정과 나의 말과 행동과 나의 몸은 나의 ‘생각의 틀’에 달려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의 틀을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감정과 그에 따른 긍정적인 말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 그리고 그에 따른 긍정적인 몸의 변화를 갖게 되지만,

 부정적인 생각의 틀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과 그에 따른 부정적인 말 그리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행동 그리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몸의 변화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내가 바라는 대로 현실에 끌어당긴다.)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이고 업보입니다.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나의 마음에 긍정의 콩을 심으면 긍정의 콩이 나고
 나의 마음에 부정의 콩을 심으면 부정의 콩이 난다. 

 이것을 심리학적인 용어로 스키마라 하고 불교나 힌두교에서는 카르마 (업)이라 합니다.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나는 사실 이 스키마 덩어리이자 카르마 덩어리인 껍데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껍데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이 곧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은(특히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필요한 깨달음은) 그렇게 신비롭고 대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같은 일반인에게 필요한 깨달음은 오히려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이해가 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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