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잉송 Jun 11. 2023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방법

분노와 단절이 쌓여 수치심으로 변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분노'를 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꼭 어린 시절이 아니더라도 사회나 동료나 친구로부터 받은 '분노'를 쌓아놓고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하게 된다. 

쌓인 분노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방향을 바꿀 뿐...

해소되지 않은 분노는 고스란히 쌓여서 '수치심'으로 바뀐다.


분노는 밖을 향한 화살이고

수치심은 나를 향한 화살이라서

내 마음속 쌓아놓은 화살은 밖으로 향하지 못할 때, (분노하지 못할 때)

다시 나를 향하는 화살로 방향을 바꾼다. (수치심으로 나타난다)


수치심은 이렇게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학습하는 것이다. 

상대와 적극적으로 연결하려고 다가갔다가 거부당하거나

누군가가 나를 원초적으로 거부하거나

어릴 적 나의 감정을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은 채 자랐을 때,

아이는 자신을 탓하고 자신이 못났기 때문에 거부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수치심이 일어나 아이는 내면으로 숨어든다. 


아이는 그 수치심으로 나를 통제하고 나를 위축시키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화가 나더라도 화가 난다는 표현을 건강한 방식으로 하지 못한다.

화를 속으로 삭이는 버릇을 더 키우면서 살아간다. 

화를 내지 않더라도 얼굴과 분위기에는 '화가 났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은 스스로가 화가 났다는 것을 모르는데 상대는 내 얼굴 표정과 분위기를 보고 알아차린다.


쌓인 분노의 화살은 나의 내면세계를 파괴하고,

기어이 몸이 아프고 현실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등 내면의 화살이 밖으로 삐져나온다.

잘 버티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삶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똑같은 스트레스가 찾아와도 이제 더 이상 그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어진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타인을 형오하게 되거나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삶을 살아낼 에너지가 떨어져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내 마음에 빈 공간이 없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감동하고, 감사해하고, 미소 짓고, 부드럽게 대할 여유가 사라진다.


수치심이 가득한 마음에서 벗어나는 방법


1. 내가 수치심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 감정일기를 써본다.
2.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 명상을 한다.
3. 수치심이 일었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 일어난 감정을 공감해 준다. - 받지 못한 편지를 쓴다.


수치심이 들 때 어떤 생각이 날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나는 뭔가 부족한 사람이야.
나는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없어
이런 날 누가 사랑할 수 있겠어?
나는 낙오자야
나는 실패자야
나는  쓰레기야
나는 나쁜 놈이야.
쉽게 말해 수치심은 움츠러드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사회와 제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우리의 문화와 종교, 교육제도, 공동체에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관한 온갖 규칙이 있다. 스스로 이 규칙들을 따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히 수치심이 생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