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나는 그림자다

입양, 결혼,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한국 여성

by 외노자 H


한국에서 왔어요.

그런데 왜, K-pop 얘기는 아무도 안 꺼낼까?


내가 한국에서 왔단 말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반응은 늘 낯설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스웨덴 사람이랑 결혼했어요?

나 일본/태국 가봤어요.


그리고 아주 가끔, 정말 드물게 이런 말도 듣는다.

“내 친구 엄마가 한국계 입양아예요.”


다른 나라에서 살 때와 비교하면 이 반응은 꽤 낯설다. 캐나다나 일본에서 지낼 땐 보통 이런 반응이었다.

나 BTS 좋아해요 – 가끔 새로운 아이돌 그룹 이름도 배우게 된다.

요즘 이 한국 드라마 너무 재밌어요!

한국 화장품 추천해줘요.


스웨덴에서는 그 흔한 “K-pop” 얘기도 듣기 어렵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차이일까 싶어, 구글 트렌드에서 “Korea”를 스웨덴 기준으로 검색해 봤다.



Google Trends - 지난 5년간 스웨덴에서 ‘Korea’에 대한 검색 관심도 추이


지난 5년간의 관심도는 아주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문화적 존재감’이라고 부르기엔 미약하다.


검색량이 급증한 시점은 2022년 월드컵(한국이 포르투갈을 꺾은 경기), 그리고 2024년 말엔 “계엄령”이 연관어로 나오는, 모두가 아는 그 사건 때문인 듯하다.


흥미롭게도, 일본이 연관검색어 5위에 오르고 중국도 상위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K-pop, K-drama, 삼성, 현대 등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각각 일본과 스웨덴에서 ‘Korea/韓国’와 함께 자주 검색된 키워드


같은 방식으로 일본에서 “韓国"을 검색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한국 드라마, 음식, 아이돌이 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정리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문화적 위상은 스웨덴에선 존재감이 없다.



스웨덴에서 '한국인'이란 누구인가?


스웨덴에는 약 9,000명 이상의 한국계 입양인이 살고 있다고 한다.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입양이 70~80년대에 정점을 찍었고, 이제는 그들이 중년이 되어 주변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내 친구 엄마가 한국계 입양아야.


이 말을 내가 두어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들은 것도 이 때문일 듯하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입양 국가'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 실제로 스웨덴 주요 언론에서도, 한국이 해외 입양을 복지의 ‘값싼 해결책’으로 여겨왔다고 비판한 바 있다.


경제 규모 13위, 한류의 나라로서의 이미지는 공유되지 않는다. 한국이 호주와 비슷한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다고 하면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1991년 다큐멘터리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포스터와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 여성의 정체성 혼란과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은?


스웨덴에서 한국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존재감이 없다기보다, 존재 자체가 특정 프레임 안에서 해석된다.


보통 이 그룹은 그들이 보기에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동남아 출신 여성들과 묶인다. 그리고 그 배경엔 스웨덴 내 결혼 이민의 뚜렷한 통계가 있다.


2022년 기준, 동남아+동북아 출신 여성은 약 89,000명.


그중 태국 여성은 35,000명에 이르고, 이들의 최소 70%, 최대 90%는 결혼 이민으로 추정된다. 특이한 점은 스웨덴 남성과 태국 여성 간의 결혼 패턴이 상당히 일관된다는 것. 출신지, 나이, 학력 격차가 뚜렷한, 흔히 말하는 "거래성 결혼 (transactional marriage)"로 분류되는 사례다.


이 수치를 일상감각으로 환산하자면, 스웨덴에선 남성 150명 중 한 명이 태국 여성과 결혼한 셈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아파트 단지마다 한두 명은 있다는 뜻이다.


한국도 매한가지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한국은 약 400명당 한명이 동남아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스웨덴은 태국여성만으로도 이미 이 숫자를 압도한다.


덴마크에서 태국 여성 결혼 이민을 다룬 다큐멘터리 《Heartbound》 .스웨덴과 유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사랑’과 ‘생존’ 사이의 결혼을 보여준다.



반면 관련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여성은 고학력 비율이 높고, 대부분 유학이나 취업으로 스웨덴에 온다. 하지만 문제는, 겉으로 봐선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태국 여성이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여성들을 뭉뚱그려 보고, 정체성과 맥락을 지우는 시선에 있다.


나이도, 외모도, 국적도 모르는 상태라면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사 온 여자.”
학력이든 경력이든, 설명하지 않는 이상 전달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설명해야만 존중받을 수 있는가?

존재만으로도 존중받을 수는 없는가?



나는 그림자다


거짓말같겠지만 사실이다. 나는 매일 삶에서 이를 느낀다.

장대비처럼 내리면 우산이라도 쓰지, 이슬비처럼 천천히 스며들며 나를 적신다.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는 순간들.

식당에서 웨이터가 남편에게만 눈을 맞출 때

낯선 사람이 내게 말을 걸지 않고, 남편에게만 질문할 때

영어로 대답하자 당황한 표정을 지을 때


나를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전제하는 말들.

“복지 혜택 받고 사니까 좋죠?”라는 말에 묘한 거리감이 느껴질 때

“대중교통이 편하죠? 오토바이타는 것보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을 때

한국에도 터닝토르소* 같은 큰 빌딩이 있는지 묻는 질문을 받을 때


이유 모를 ‘칭찬’들.

“스프를 예의 있게 먹는다”고 칭찬받을 때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한다고 기특하다는 듯 말할 때.


이건 내 남편, 미국 출신 백인 남성은 한 번도 겪지 않은 일들이다. 그런데 나는 매일 경험한다.


정말 우연일까? 내가 예민한걸까? 혹시 내가 착각한 건 아닐까?


나는 내가 어떤 주체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배경이, 나의 목소리가, 나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나는 재생산되는 존재이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영어 좀 하는 여자일 뿐이다.


나는 그림자가 된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설명 없이 스며들 수 없는 존재.

어쩌면 이 나라에서, 나는 늘 그렇게 존재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이야기: 스웨덴의 자랑, 의료복지?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다. 다만, 기다릴 수 있다면.


*터닝토르소(Turning Torso): 2005년에 완공된 말뫼의 190m짜리 주거용 고층 타워로, 한때 스웨덴과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지금은 2024년 고텐버그에 완공된 246m짜리 칼라토른(Karlatornet)에 밀려 둘째 자리를 차지한다. 한국인에게는 그냥 “여의도 근처에 흔한 빌딩” 정도. 칼라토른도 1980년대에 지어진 63빌딩(249m)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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