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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킴 Feb 12. 2021

꼰대 한문 선생

__ 중 3 때 담임



내가 살던 동네는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가고 싶은 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험 점수와 내신성적을 합쳐 당락이 결정되었다. 원서를 쓰기 시작하는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꼰대 담임이랑 별 트러블이 없었다. 어차피 담임 얼굴 보는 시간보다 과목별 선생님들을 더 자주 만났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학교에 갈지 원서를 쓰는 시기부터 담임은 비상식적인 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의 부모님 도장을 갖고 오라고 시킨 후에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시켰다. 갈팡질팡 하는 학생들 다지기를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빠가 정해놓은 학교에 가야만 했다.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 시골 동네의 명문여고에 가기를 바라셨다. 그냥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도장을 찍던 날에 담임은 왜 넌 도장을 갖고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 고등학교에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자 담임은 눈을 부라리며 교무실에 가 있으라고 했다. 나를 먼저 교무실로 보내고 아이들 부모님의 도장을 다 찍은 후에 내려와서는 교무실 문 앞에 서있는 나에게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선생님들이 다 계신 교무실 한쪽에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으라길래 그렇게 했다. 근데 이 미친개가 수업에 들어가며 챙긴 출석부로 내 머리를 내려치는 것이다. 힘을 주어 퍽퍽 소리가 나게 꽤 여러 번 내리쳤다. 내 몸이 휘청거렸고 머리는 멍했다. 하필 그때 -내가 따르고 좋아하던- 2학년 때 담임을 해주신 여자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눈물이 나왔다. 담임은 본인이 다시 올 때까지 무릎 꿇고 손들고 기다리라고 했고 그가 자리를 뜬 후 나는 교무실을 나왔다.


나는 학교를 나와 교문 앞 문구점에 들어가서 전화를 좀 써도 되겠냐고 아주머니께 여쭤봤고 그러라 해주셔서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엄마는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우리 엄마는 치마 바람은커녕 내가 학교를 다니는 내내 한 번도 학교에 찾아오지 않으셨다. 학교에서 혼나고 집에 가면 뭔가 너의 잘못도 있지 않았겠냐고 말씀하시던 분이시다. 나도 엄마를 학교에 부른 건 12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엄마도 운동회, 졸업식 빼고는 처음으로 오신 거였다.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구점 문이 열리고 담임이 들어왔다. 나는 조금 놀랐다.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나에게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눈치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오셨고 담임은 엄마에게 거듭 사과를 했다. 그 후 엄마를 따라 집에 왔는지 다시 학교로 들어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담임이 왜 나에게 사과를 했는지 집에 가서 엄마에게 듣게 되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몇몇 분들이 부부동반 계를 하시고 친하게 지내시던 때였다. 그중에 402호에 사시는 분이라서 '402호 아저씨'라고 부르던 분이 그 당시 교육감이었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셔서 이렇게 저렇게 친하게 지내시던 때였다.


엄마도 내 전화를 받고 당황스러워서 402호 아줌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402호 아줌마가 402호 아저씨께 전화를 드려서, 402호 아저씨가 우리 중학교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했고, 교장 선생님이 담임을 불렀고 뭐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나에게 급 사과를 하던 담임이 불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무탈한 시간을 보냈다. 가려던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고 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고 중학교 졸업을 했다. 잊힐 만도 한데 가끔 생각이

난다.





(덧)

참고서를 그대로 보고 판서를 하던 고1 때 수학선생(못 가르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자 애들인데 발로 밟으며 애들을 팼던 인간)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은 조숙한 여자아이들을 성추행했었는데 너무 옛날이라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끔찍했던 몇몇 선생들을 생각해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좋으신 분들이 더 많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좋아야 하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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