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생활

_끄적끄적 소설 창작놀이

by 슬슬킴

#1


연필이었다.

내 목덜미에 박힌 날카로운 물건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집에 가려고 지하철 역사를 막 빠져나오던 중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다가 사람이 많아서 텅 비어있는 계단을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막 더워지기 시작했던 작년 초여름, 해가 바뀌었지만 나는 그 시간에 갇혀 빙빙 돌고 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통증이다. 뭐지? 하는 찰나, 내 입에서 악-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사람들의 공포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나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귓가를 맴도는 웅성거리는 소리, 볼에 닿은 차가운 바닥의 온도, 휘청거리던 들것에 실리고 난 후 기억이 없다.


흐린 눈이 초점을 맞출 때까지 깜빡깜빡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괜찮냐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 남편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내 목덜미를 연필로 찍었고,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필? 목덜미? 범인? 이게 다 무슨 말이지? 순간 먹먹해진다. 상처 주변으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고 눈이 뜨거워졌다. 울지 마-남편이 손을 꼭 잡는다.


#2


일주일 사이 경찰이 두 번 다녀갔다. 범인의 얼굴을 봤냐고 물었지만 뒷모습도 기억나지 않았다. cctv를 돌려봤지만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범인은 어떻게 알았는지 cctv를 피해 골목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했다. 역추적하여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며 혹시 최근에 원한을 살 일이 있었다거나 사이가 틀어진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더듬더듬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특별할 것 없던 내 삶을 되짚어 보았다. 나는 작은 출판사에서 책 표지와 지면을 디자인하는 일을 한다. 출판사 인원은 나를 포함해 8명이 전부이다. 평일에는 퇴근 후 남편과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저녁시간을 보낸다. 남편과의 사이는 좋은 편이고, 그는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는 일을 한다. 우리에게 아직 아이는 없다. 주말에 혼자 지내야 하는 나는 토요일에는 이른 점심을 먹고 화실에 간다. 일요일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나의 삶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최근 들어 갑자기 연락이 닿았다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형사의 질문이 떠올랐다. 나에게 새로운 사람이라면 화실에서 만나는 사람들뿐이다. 출판사에 누군가 와도 나와는 무관하다. 방문하는 사람은 대부분 편집자가 상대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프다. 생각하기를 잠시 멈추고 창밖을 바라본다. 2인실을 혼자 쓰고 있어서 조용하게 지낼 수 있다. 컨디션은 괜찮지만 간호사가 노크를 하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게 된다. 불안한 마음이 줄어들었다 싶으면 어느새 손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심해졌다. 간호사를 불러 통증 때문에 잘 수 없다고 말하니 조금 후 링거에 주사기를 꽂으며 진통제라고 말해 준다.


이런 사건이 터지고 나니 내 사생활을 모두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득 섬뜩해진다. 별다른 사건이 없이 지내는 나에게도 사생활은 존재한다. 몇 해 전 코로나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을 때에 감염경로를 알리기 위해 뉴스에 낱낱이 까발려졌던 어느 남녀의 사생활이 떠올랐다. 그저 평범하거나 조금 틀어진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사생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편이 모르는 일 혹은 남편에게도 감춰야 하는 일이 나에게 있었던가? 진통제 덕분에 통증이 사라지자 눈이 감긴다. 일단 눈을 붙이기로 마음먹고 생각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