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크리에이터, 대체 선정 기준이 뭘까?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지루한 평일 낮 시간을 보내던 도중, 브런치 알림이 떴습니다. 종종 오는 전체 공지겠거니 하고 스윽 훑었는데 이게 웬걸, 제가 스토리 크리에이터가 되었다니요?
처음 든 생각이 '응? 내가 왜?'일 정도로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프로필에서 멋지게 반짝이는 크리에이터 배지를 볼 때면 '저건 어떻게 받는 거지? 부럽다···!'라고 몇 번 생각해 본 게 다일 뿐, 제가 그 배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더군다나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기대는 추호도 해본 적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쓰고 있는 글들이 브런치에서는 썩 환영받지 못하는 류의 컨텐츠라는 사실을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차가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쭉 살펴본 결과 브런치 메인을 장식하는, 소위 ‘선택 받는’ 이야기는 대부분 해외 살이, 인간 관계, 여행, 투병기 등 본인만의 특별한 경험을 녹여낸 글이더군요. 저 역시 많은 글들을 눈을 반짝이며 읽었습니다.
그에 반해 제가 쓰는 글은 (최대한 재미있게 써보려고 노력하지만) 참 무겁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마치 모두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심오한 주제를 꺼내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눈치 없는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이었죠^^;
이런 생각 끝에 플랫폼을 옮겨야 할지 고민하며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둘러보았지만 블로그는 오히려 더 가벼운 주제가 주를 이루는 듯 하여 선택지에서 제외했고, 티스토리는 전문성 있는 글을 쓰기에 좋아보였지만 스토리텔링 형식의 글을 쓰고싶은 제겐 브런치가 조금 더 적합할 것 같아 결국은 잔류를 결정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브런치의 감각적인 웹, 앱 디자인 역시 한 몫 했고요. 조잡한 광고가 없고(수익 창출은 물건너갔지만) 세련된 브런치의 앱 디자인은 글을 읽을 때 기분을 참 좋게 만듭니다.
여하튼 이러한 생각의 흐름에 따라 브런치에서 계속 글을 쓰기로 결정한 찰나, 눈치라도 챈 것인지 타이밍 좋게 알림이 울린 것이었죠.
스토리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한 정량적인 조건은 다른 글들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저는 제 케이스에 비추어 크리에이터 선정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보려고 합니다. 저의 의견일 뿐 당연히 정답이 아니며, 크리에이터 선정을 목표로 하시는 작가님들이 계시다면 참고 목적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브런치 측에서 글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글의 질을 판단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브런치 내 작가와 글의 수를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죠.
저는 올해 7월 9일에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은 이후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해 한 달 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대략 20개 정도의 글을 작성했는데, 정보성 글이므로 내용을 구성 및 재검토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글이 수십 개에서 수백 개를 넘어가는 분들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턱없이 작은 수의 글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선정 기준에 있어 활동 기간이나 글 개수에 대한 최소 조건은 없거나 그 영향이 아주 미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작성한 글 페이지에 들어가 봤을 때 누가 봐도 '이러한 특정 분야의 글을 쓰는구나'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딱 한 개의 주제를 정해 해당 주제에 대한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이 크리에이터 선정에 아주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글의 수 자체는 적지만, 세 개의 글을 빼고는 모두 경제, 금융, 회계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작가 신청을 할 때도 느꼈지만, 브런치는 작가의 정체성을 참 중요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 블로그나 저술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글을 즐겨쓰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경제를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글을 쓰겠다는 막연한, 원대한 목표만이 있었을 뿐이죠.
그래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작가 신청을 할 때도 써놓은 글이 없어 대학교 수업에 과제로 제출한 내용을 조금 다듬어서 심사를 요청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한없이 창피해집니다. 심사를 하며 온갖 멋진 작품을 보시다가, 형편없는 제 글을 보며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지···
어쩐지, 작가에 합격하면 보통 하루만에 메일이 온다던데 저는 3일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혹시 이놈을 붙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오래 하신 걸까요···^^
그럼에도 제가 작가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글의 방향성만큼은 누구보다 뚜렷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가 신청을 할 때 <앞으로 쓸 글의 주제에 대한 계획> 부분에 쓴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요.
저는 회계, 재무, 경제, 금융 분야에 주된 관심사를 두고 있습니다. 회계처리의 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부외부채효과와 금융리스 회계처리 등), 현재가치 할인과 채권 이해하기,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의 가격결정 원리(이토스렘마 수식이 아닌 개념으로 이해하기), 미시/거시경제학 기초, 각종 경제 시사 상식(금리와 환율, 승수효과 등)과 이슈(미 대선 결과가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등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실제로 제가 발행한 글을 보시면, 계획했던 내용의 글을 거의 모두 작성했습니다. 필력이나 경력은 다른 분들에 훨씬 못미치지만, 이러한 명확한 글감의 선정이 크리에이터나 작가 승인을 받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은 조금 꼼수처럼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억지로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글을 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앞서 말씀드린 나만의 카테고리를 결정하기 위해 글의 주제를 좁혀나갈 때, 에세이나 여행 분야처럼 많은 작가님들이 다루는 주제보다는 적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지만, 브런치를 둘러보면 플랫폼 특성상 경제 분야의 글을 쓰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낮은 경쟁률 덕에 크리에이터로 선정되기 한결 수월했던 것 같고요. 브런치를 둘러보면 워낙 글솜씨가 훌륭하신 분들이 많아서, 아마 제가 다른 주제로 글을 썼다면 크리에이터는 커녕 작가조차 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경제 크리에이터라니,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제 글에 과분한 수식이 붙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항상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는 작가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크리에이터가 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네요. 아니, 전혀 없네요. 그저 프로필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 게 전부인 듯합니다.^^ 심지어 열심히 활동하지 않으면 배지를 다시 빼앗는다고 하니, 앞으로도 양질의 글을 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숏폼이 주류인 세상에서, 여전히 사유와 고찰이 담긴 긴 호흡의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언젠가 롱폼이 다시 시대의 중심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