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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에 로또를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04. 재무보고를 위한 개념체계

by 이진




회계원리로 회계의 걸음마를 떼고 중급회계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회계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내용이 바로 재무보고를 위한 개념체계입니다. 이 개념체계는 회계의 헌법과 같은 존재로, 개별 회계 기준서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되거나 기준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특이한 점은, 헌법이 모든 법에 우선하는 것과 달리 개념체계는 회계기준의 기초가 되는 개념일 뿐 회계기준은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특정 기준서에 우선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개념체계와 기준서 간 충돌이 있을 때, 개념체계를 우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서를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개념체계의 전체 내용은 아주 방대하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 자산의 정의와 인식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회계에서 말하는 '자산'이란 무엇인지, 또 어떠한 자산을 재무제표에 인식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회사가 구입한 로또를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라는 재미있는 호기심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심각한 수준의 경영난을 겪으며 파산하기 직전에 다다른 회사 A의 CEO 철수씨는 회사의 마지막 운명을 로또 한 장에 걸기로 다짐합니다. 철수씨는 직원들에게 선언합니다. “여러분, 로또 한 장 삽시다. 그거 당첨되면, 우리 회사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반쯤 농담에 가까운 터무니 없는 사례지만, 실제로 FedEx의 CEO 프레드 스미스가 파산 위기에 놓인 회사를 두고 라스베가스에 달려갔고, 도박을 해 불린 자금으로 다시 사업을 일으켜 세웠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어찌되었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옵시다. 회사A가 구매한 이 로또, 과연 회사 A의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자산의 정의


우선, 회계에서 말하는 '자산'이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개념체계에서는 자산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산이란, 과거 사건의 결과로 기업이 ③통제하는 현재의 경제적 자원이다.
이 때, 경제적 자원이란 ②경제적 효익을 창출할 잠재력을 지닌 ①권리를 뜻한다.


즉, 회계에서 '자산'으로 정의될 수 있으려면

권리여야하고,

② 미래에 경제적 효익을 창출할 잠재력을 가지며,

③기업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 조건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뜯어보며, 로또가 과연 이 조건들을 모두 만족할지 함께 확인해봅시다.


① 권리

계약, 법률과 유사한 수단에 의해 성립되나, 그 밖의 방법으로도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ex. 노하우 획득).
주로 현금을 수취할 권리인 매출채권, 받을 어음 등을 뜻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현금을 받으므로, 현금을 수취할 권리에 해당하여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경제적 효익을 창출할 잠재력

잠재력이 있기 위해 권리가 경제적 효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확신하거나 그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것은 아니다.


'높다'의 정확한 수치는 따로 정해진 바가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50% 정도의 확률을 의미합니다. 로또에 실제로 당첨될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개념체계에서 어떠한 권리가 경제적 효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므로 당첨될 확률이 높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두번째 조건 역시 만족하네요.


③ 통제

통제는 사용을 지시하고 그로부터 유입될 수 있는 경제적 효익을 얻을 수 있는 현재의 능력을 뜻한다.


통제는 경제적 자원을 기업에 결부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간단히 표현하면 '내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떠한 기업이 경제적 자원을 대리하여 보관해주는 등의 중간자 역할만 하고있다면, 그 기업은 해당 자원을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회사가 로또를 보관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로또를 구매했다면, 세번째 조건 역시 만족합니다.


결론적으로, 로또는 개념체계에서 말하는 자산으로 정의되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므로 회계상 자산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로또가 회사의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산의 정의를 충족한다고 해서, 재무제표에 항상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이란, 자산, 부채, 자본, 수익, 비용 등 재무제표 요소 중 하나의 정의를 충족하는 항목을 재무제표에 포함하기 위해 포착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재무제표 요소의 정의를 충족하더라도, 인식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재무제표에 표시하지 않습니다.



재무제표 요소의 인식 기준


그렇다면, 회계상 자산을 재무제표에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준을 만족해야 할까요? 다음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면 회계상 자산을 재무제표의 자산 항목에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목적적합한 정보

정보가 목적적합하지 않은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a 자산이나 부채가 존재하는지 불확실하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가 구매한 재고자산이 선박을 통해 들어오고 있을 때 실제 선박에 재고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동중인 재고자산은 실제 존재하는지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①-b 자산이나 부채가 존재하지만, 경제적 효익의 유입이나 유출 가능성이 낮다.(즉, 발생가능성의 요건)


충실한 표현

측정 불확실성이 자산이나 부채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높다면 인식하지 않는다.


로또의 경우 자산이 존재하는지 불확실하지는 않지만, 경제적 효익의 유입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재무제표 요소의 인식 기준 중 ① 목적적합성, 특히 ①-b의 발생가능성의 요건을 만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로또는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회사 A가 구매한 로또는 개념체계의 자산의 정의에 따라 회계상 자산으로 볼 수는 있지만, 재무제표 요소의 인식 기준 중 목적적합성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재무제표에 인식할 수는 없게 됩니다.



재무제표의 목적은 채권자, 주주, 임직원, 거래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로또 당첨은 경영자 철수 씨의 희망일 뿐, 자산 항목에 로또를 인식한다고 해서 그것이 채권자나 주주의 투자 결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겁니다. 투자자가 재무상태표 자산의 로또를 보고 ‘이 기업 로또에 당첨되면 자산이 크게 증가하겠네. 투자해야지.’라고 생각 할 리 없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재무제표가 기업의 모든 상황을 담아내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로또 한 장은 기업가치와 큰 관련이 없지만, 때로는 기업가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실이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기업의 밀접한 관계 같은 정보가 그 사례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투자 결정을 할 때 재무제표의 숫자만으로는 해당 기업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으며 비재무적 정보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회계의 개념체계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개념체계에서 말하는 자산의 정의와 재무제표에 자산이 인식되기 위한 조건, 재무제표의 목적까지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로또’라는 친숙한 소재와 함께,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회계학을 한 걸음 더 가까이 느끼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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