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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Jan 23. 2017

<쇼미더머니>와 사회적 면역체계의 함정

<쇼미더머니> 시즌 4에서 상당히 인상깊었던 장면

<쇼미더머니> 첫 번째 시즌의 힙합씬을 기억한다. 화나, 팔로알토, 허클베리피, 제리케이처럼 영향력이 큰 MC들이 줄줄이 보이콧을 선언했고, 평론가들도 펜대를 들고 분연히 일어나 그 대열에 참여했다. 장르 팬들에게 그들은 자본의 침공으로부터 순결한 언더그라운드를 지키는 숭고한 전사들이었으며 반-쇼미더머니 선언은 마땅히 그들의 몫이었다. 꽤나 최근까지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당시만 해도 MC가 TV쇼에 출연한다는 것은 힙합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댄 이미지를 재현하고 인지도를 벌어가는 광대짓에 지나지 않았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힙합을 소비하는 코드란 대부분 허세를 동반한 과장된 제스처와 추임새, 악동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나몰라패밀리로부터 용감한녀석들, 개가수를 둘러싼 이센스, 비프리와 정준하의 트윗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개그콘서트 힙합의 신에서 이세진이 보여준 언어유희는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

펀치라인 킹 MC민지...

하지만 그보다는 '배고파야 언더그라운드 힙합'이라는 일종의 정신적 족쇄에 의한 면역반응이 아니었을까. 이 면역반응의 역사는 2009년에 산이가 'Rap Genius'에서 "배고파야 힙합이라는 구시대 발상 Fuck that"이라고 외치기 한참 이전으로 돌아가 뿌리를 찾을 것도 없다. 하이라이트 레코즈에 대한 팬들의 열성적인 지지가 팔로알토의 <쇼미더머니> 출연 결정 이후 급격하게 사그라들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존재하기 때문에 배척당한 아이돌 랩퍼와, 발라드 랩 논쟁에서 공통적으로 핵심이었던 진짜-가짜 패러다임은 한병철이 <피로사회> 초반부에 언급한 '면역학적 타자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쇼미더머니>가 로꼬에서 비와이까지 이어지기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이제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간혹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랩퍼들이 나머지 랩퍼들의 자리를 독식한다"는 논리로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쇼미더머니에 의한 기회 쏠림현상'이라는 결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랩퍼들이 그렇게 혐오하던 TV쇼에 대한 태도 전환과 엑소더스에 가까운 행태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탱클랜의 'C.R.E.A.M'(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은 이런 욕망의 배경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어구다. 이처럼 랩퍼에게 돈은 언제나 애증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쇼미더머니>가 유일한 기회의 창구임을 탓하기 전에 지금껏 힙합씬을 위한 변변한 비즈니스 모델이 하나도 없었음을 문제 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더블트러블이 앨범의 유기성을 깨어가면서까지 수록한 'TV Star'는 이런 욕망을 날것으로 담아내고 있다. 베이식은 "언젠가 내가 TV에 나올 기회가 있다면, 그 한번으로도 족하겠어. 난 행복하다란 말 난 꼭 하겠어. what`s up. TV속 나를 보고 웃어"라고 말했고, <쇼미더머니>에서 우승하면서 그 꿈을 이뤘다.

https://www.youtube.com/watch?v=ETkU17xAyFU

인간의 면역체계는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균을 극복하면서 항체를 쌓아가며 스스로를 강화한다. 이제는 힙합 하면 붐뱁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트랩 스타일의 비트야 말로 힙합이라는 장르와 몸을 섞은 뒤 정착하게 된 '면역학적 타자'다. 이러한 관점에서 <쇼미더머니>는 '자본-언더그라운드'라는 견고한 대립쌍의 결합을 노골적으로 시도한 성공적인 사례고 어느덧 '사회적 면역작용'이 가라앉은 단계에 도달해있다.

긍정적으로 평가해보자면 랩퍼들은 미디어를 통해 이전보다 조금 더 발전된 선택지를 받아 든 셈이다. 사실 과거에 랩퍼로서 상업적인 성공으로 향하는 길이란 '에픽하이'나 '슈프림팀'처럼 독보적인 음악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예능 활동으로 주목 받든가, 빈지노가 '할렐루야'에서 고백했듯 "그와 함께 하면 어떤 일을 해도 모두 다 된"다고 유혹하며 "날더러 턱 좀 깎고 하면 되겠"다는 기획사 프로듀서에 의해 음악성을 거세당하고 아이돌-발라드 랩 스타일을 이식받는 길 뿐이었다. 오히려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직접 자신의 랩을 보여주는 쪽이 훨씬 안전한 선택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2k4hnRH7R8I


다시 말하자면 <쇼미더머니>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종착역이 아니다. 물론 허클베리 피처럼 꾸준히 자기만의 가치관을 관철하는 랩퍼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비꼬기였지만 '무언가'에서처럼 굳이 스스로를 "꽉 막힌 꼰대"라고 비하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쇼미더머니>라는 수익모델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다. 정말 솔직한 얘기로 '배고픈 힙합'의 도그마를 강요하는 일부 팬들이야 말로 문화에 대한 존중이 없는 부류다. 그 도그마의 결과는 슬프게도 JJK의 '내 이름 어디갔어'로 나타났고, 오히려 냉담한 반응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어쨌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힙합씬은 성숙단계에 접어들고 있고, 이제는 어떤 사업방식을 강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단계에 도달했다.

그 과정에서 댄스-랩의 포맷을 성공방정식으로 삼고 우후죽순 쏟아졌던 아이돌 혹은 힙합 그룹들은 그들의 형편없는 실력에 대한 대가로 실패를 면치 못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남은 그룹 랩퍼들의 수준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으며 블락비와 같은 성공사례를 내놓기도 했다. 몇몇 힙합 레이블은 M&A를 통해 사업 확장과 해외 진출 루트를 모색하고 있다. 한편 일리네어 레코즈 같은 경우 외부 자본의 힘 없이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으며, 모두가 희석되어 사라질까 봐 겁냈던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The Anecdote'같은 정수를 낳았다. 냉정하게 바라보자.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해왔고, 이제는 더 높은 발전을 논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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