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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Jan 26. 2017

소울컴퍼니가 랩으로 들려준 '이야기'

'스토리텔링'으로 다시 보는 한국적 힙합의 역사

서태지와 아이들

어떤 문화의 도입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힙합 역시 다소 분할된 형태로 한국에 전파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스트릿'과 '게토'에 정신적, 물적 기반을 둔 본토 힙합과는 달리, 한국 힙합은 PC통신 커뮤니티 베이스의 음악적 기반이, 온전히 개성과 저항을 내포하고 있는 패션 코드로서의 기반이 각자 분리되어 있었다. 전자는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새로운 음악 장르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후자는 기성 문화에 대한 반항심과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동력이 되었고, 이는 '힙합정신'이라는 모호한 워딩으로 함축되어 본래 미국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함의를 갖게 되었다.


두 가지 흐름이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며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초기 10여년의 시간 동안 '진짜 힙합'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본토 힙합'이라는 원형이 가지고 있는 멋과 분위기를 온전히 한국에서 살리고자 하는 '재현적 힙합'과, 그것의 메인 아이디어를 유지시킨 채로 한국적 특색에 맞게 차용하고자 했던 '한국 힙합'이라는 각자의 흐름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양상이었다. 적어도 스윙스 등장 이전까지는. 아니, 일리네어 이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2000년대 중반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당시의 힙합은 빅딜, 소울컴퍼니, 오버클래스로 삼파전 양상을 보였고 하드코어 힙합을 주창한 빅딜을 제외한 소울컴퍼니와 오버클래스 행보는 두 가지 흐름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MC메타의 하자센터 랩 레슨에서 출발한 소울컴퍼니는 그들이 듣고 자란 미국 힙합의 일방적인 수용 대신 그들만의 것을 새롭게 더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발매된 소울컴퍼니의 첫 앨범 'The Bangerz'는 그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화나는 피타입과 다르게 라임을 빽빽하게 배치해 '+α'의 운율을 발생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고, 라임어택은 붐뱁을 기반으로 골든에라에 대한 일관된 방향성을, 제리케이의 사회비판적인 가사를 보여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EZ4j5Rw2cA

https://www.youtube.com/watch?v=LrGzM7DFTNA

그러나 그 중에서도 소울컴퍼니의 음악적 색채를 대표했던 건 역시 키비와 더 콰이엇이었다. 키비의 이루펀트 활동이나 정규 앨범 수록곡들, 더콰이엇 역시 정규 앨범 수록곡과 P&Q 활동에서 보여준 '상자 속 젊음' 등의 가사에서 느낄 수 있듯이 상당히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요소들이 많이 가미되어 있었다. 에픽하이(라고 쓰고 타블로라 읽는다) 역시 가사의 문학적 측면에 있어서 많은 시도를 했지만 이들이 가사자체의 시적인 측면과 은유에 집중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소울컴퍼니는 가사의 표현자체 보다는 조금 더 큰 단위에서 서사구조로서의 '힙합'이 차지하던 자리를 비워놓고, 그 빈 자리를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새로 채워넣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굳이 문학 장르로 치자면, 시 보다는 소설 쪽에 가까운 형태다.

사실 더콰이엇이 종종 보여주던 모습이나 라임어택이 일관되게 밀어온 이미지를 굳이 떠올려보지 않는다면, 소울컴퍼니가 '힙합'에 대해서 직접 얘기한 곡이 몇 곡이나 될런지 모르겠다. 소울컴퍼니는 힙합 그 자체보다는 힙합이라는 음악을 베이스로 그 위에 자신들만의 이야기나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조합하기를 즐겼다. 대표적으로 '아에이오우 어'나 '의뢰인'을 꼽아볼 수 있다. 그들이 '아에이오우 어'에서 시도한 각자의 벌스 전체를 하나의 모음으로 통일한 라이밍이라든가, '의뢰인'에서 보여준 스토리텔링 단체곡 같은 경우에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k3YjLWUF_Ys

https://www.youtube.com/watch?v=PNaZZIynHwI

사실 스토리텔링은 소울컴퍼니 이전에도 많이 시도되어 온 형식이다. 스토리텔링은 아이디어만 조금 받쳐준다면 곡에 문학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데프콘의 '소멸'이나, 인피닛 플로우의 '어느 토요일' 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텔링 자체를 정체성 차원까지 끌어올려 발전시켜온 집단은 소울컴퍼니가 처음일 것이고, 키비의 거의 모든 곡이 그렇고, 화나의 '시간의 돛단배' 같은 몇몇 곡들, 라임어택의 'Story At Night' 등이 그 증거다.

지금 돌아보면 스토리텔링이란 형식 자체가 '잘 쓴 가사'는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힙합이란 무엇인가' 혹은 '힙합은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없었기에 시도되었던 하나의 방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MC성천의 한자어로 채워져 마치 불경같은 느낌마저 주는 극단적인 것이 등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작사의 방법론적 차원에서 미숙했던 시기였기에 그런 현학적인 가사의 시도가 용인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힙합이라는 문화를 들여오는 과정에 있어서 'Bitch(여자), Weed(대마초), Money(돈)'라는 코드가 한국에서 직접적으로 통용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지금이야 이런 것들이 하나의 클리셰적인 텍스트로서 받아들여지는 수준이지만 이런 것조차 터부시되었을만한 사회 분위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한국 힙합의 역사가 소울컴퍼니 전후로 다시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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