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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Jan 27. 2017

스타카토 같은 인생의 얼룩을 잇다

Huckleberry P - [점] EP

https://www.youtube.com/watch?v=-1lIVobZFgA


한 남자가 짐을 짊어지고 산을 마주한다(Base Camp). 이것은 삶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것을 견뎌내는 자에 대한 소묘다(숨, Espresso). 시간의 무게는 시간 그 자체의 누적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무게를 무게로 인식하는 데서 오기도 한다(Everest). 그래서 허클베리피가 그려내는 인간상은 '무게를 짊어짐'의 고됨을 긍정하고 극복의 순간을 꿈꾸는 존재다(아름다워). 무게를 짊어짐으로써 그것을 무게로 인식하지 않게 된 그때, 그는 점이 아닌 하나의 선으로 완성된다(달마시안).

허클베리피의 디스코그래피를 놓고 보면 가장 이질적인 앨범이 바로 이번 [점] EP이다. 이번 작품에서 허클베리피는 랩에 화장을 진하게 입히지 않는다. 스킬의 틀 짜인 연쇄가 아닌, 가사의 메시지와 비트의 진행이 자연스럽게 곡을 끌어가도록 서포트한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 까지 이어지는 앨범의 유기적인 이어짐을 통해 굳이 인터뷰를 읽지 않았더라도 그와 프로듀서 험버트가 많은 대화를 나눴음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린 매 순간 흔적을 남겨. 젊은 날의 치기 또는 지저분한 기억쯤으로 여기던 순간들 모두 삶 속 작은 점. 그 점들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거야."
- 달마시안 中


우리는 매 순간 흔적을 남기고, 그것들은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몸에 새겨진 점을 흉터처럼 여기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써 삶의 방식을 취사선택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흔적들은 우리를 정반합의 굴레 위로 불러들이고 만다. 그래서 '아름다워'에서 허클베리피가 보여주는 '긍정된 삶'으로의 전환은 중요하다. 그 이전의 '점'이 우리 삶을 짓누르는 중력의 상징이었다면, 그것의 무게로부터 벗어난 뒤에 점은 서로 이어진 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는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개별적인 '달마시안'으로서의 모습을 상징한다.

얼핏 들뢰즈의 '주름'이 떠오른다. 점이 찍힌다는 것은 주름지는 것, 어쩌면 우리의 잠재된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우리는 살아가고, 살아가기 때문에 괴롭다. 그러나 그 괴로움이 쌓여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간다는 간단한 진리를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보여준 것이 아닐까. 문득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친구의 독립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가 생각난다. 허클베리피가 이겨내야 했을 고뇌의 밤들을 어림 해보며 작은 감사를 표한다. 2007년부터 허클베리피를 지켜봐 온 나로서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앨범이다. 조만간 발매될 [점]의 나머지 반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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