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못미 Jan 28. 2017

불지옥 하늘 위에서 즐기는 팝콘

화지 - 정규 2집 [Zissou]

https://www.youtube.com/watch?v=IIh0ePeVIVU


이전에 불편함에 관해 썼던 글이 있다.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불편함은 창작의 계기이자 원동력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불편함은 인식되는 순간에야 우리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불편함인지 모르면 불편하지 않은 것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우리는 흔하게 겪는다. 화지는 은연중에 자신의 삶의 결을 강제하는 여러가지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진정한 자유와 '모든 가능성이 실현된 삶'을 모색한다. 그는 그곳이 '이르바나(열반)'이라 말한다.


헬조선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이미 그 단어가 불려나온 순간 그 발제는 헬조선 담론의 영향력 안에 들어와있다. 달갑지는 않지만 이미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좋든 싫든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기본적인 틀로 자리잡았다. 본인들이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센스와 버벌진트의 최근 앨범도 간접적으로는 이러한 사회 토양 아래서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계급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윗쪽 동네에 속해 있는 버벌진트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변해가는 동네를 건물주의 입장에서 감상적으로 조망한다. 이센스는 불합리한 현실의 개별적인 측면들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으로 후벼파기는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답을 찾지 못한채 떠도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화지는 아예 틀 밖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다 보고 죽을 것이다. 이 앨범 전체를 걸쳐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메시지이자 화지의 가치관이다. 우리 삶은 과연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을 실현하고서 끝 마치게 될까? "졸렸지. 사는게 이게 다야? 숨이 조였지. 가자 바다 이쁜 나라 거기 어디였지. 요샌 말 안통해도 돈이 번역기. 너는 번아웃이 아닌 21세기 히피." 그렇다고 절대 안일한 쾌락주의로 일관하지는 않는다. 이 앨범은 기본적으로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냉소적인 시선 위에서 탄생했다. 화지가 본 앨범에서 그려내는 사회란 대체로 개인의 잠재력을 구속하는 힘으로서 등장하고 화지는 그 틀에서 벗어나 삶의 영역을 최대한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는 모든 제약들을 마음껏 불편해 하면서 외친다. "넌 나를 뒤흔들 수 없네, 넌 나를 뒤흔들 수 없네"

앨범의 구성은 딱히 돌출되는 트랙이 없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백화점식 구성 대신 하나의 완성된 서사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다. 각각의 사건은 다양한 방향으로 드러나지만 그 중심 축에 진정한 자유를 탐닉하고자 하는 화지의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떠한 삶을 누릴 것인가에 대한 화지의 고뇌가 톱니처럼 맞아들어간 결과이자 전 트랙에 걸친 프로듀서 영소울과의 협업이 낳은 결실이다. 작가 배즈본과 함께한 앨범 커버도 앨범의 주제의식과 한 몸처럼 녹아들면서 감상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순환되는 이미지의 연쇄가 인상적이다. 9컷의 그림을 순서대로 감상해보자.

배즈본의 작품

전작처럼 이번 앨범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7번 트랙 '서울을 떠야돼'를 기점으로 '문제-해결'식의 구조를 갖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트랙은 '히피카예', '바하마에서 봐 2'다. '히피카예'에서 화지는 불바다가 된 세상 위를 날며 팝콘을 먹는다. 이 곡은 청자에게 세상이 '요만해' 보이는 높이에서 아래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그걸 붙잡으라고 촉구하고 있다. 큰 그림을 보게 되면 언제 망할지 모를 지상의 시시한 다툼들 옆 한편에 죽기 전에 꼭 보고 죽어야할 낙원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 비행기에 올라탈 용기가 없는 사람을 억지로 태우지는 않는다. 이 비행기는 21세기 히피를 위한 전용기이기 때문이다. 화지는 이렇게 불구덩이 같은 세상에서 탈출한 뒤 바하마로 떠난다.


'바하마에서 봐 2'에서 그는 야자수 아래 걸쳐진 해먹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며 아직 불구덩이 속을 헤메고 있는 청자에게 얘기를 건넨다. "돈, 돈, 돈이 너의 가치를 정하고. 뉴스는 전하네, 불행은 당연한거라고. 종교는 속삭여, 여기가 다가 아니라고. 넌 안보여? 너도 보여? 삼박자 사기라고." 그러나 그는 역시 바하마로 떠날 용기를 갖지 못한 사람이 오든 못오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툭 던지듯 얘기한다. 누구나 나르시시시즘의 노예라고. 어느 정도는 자아도취 속에 살 필요가 있다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허상 속에서 살다간 내 삶을 잃고 말거라고. 전부 미쳐버린 세상에서 기왕 미칠거라면 스스로에게 미치는 용기를 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앨범을 듣고 있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화지는 정말로 이 곳에서의 일이 전부 끝나면 바하마로 가서 살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그의 랩은 거친듯 눅눅하고, 때로는 바싹 말라서 휘둘리다가도 아픈 곳을 베어낸다. 그리곤 곧장 제자리로 돌아가 스스로의 리듬 안에서 즐긴다. 앨범의 어조는 강렬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과하지 않다. 어려운 것을 쉬워보이게 만드는 것이 정말로 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지는 정말로 잘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카토 같은 인생의 얼룩을 잇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