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녹색이념> : 1번 트랙 "섬광" (1부 시작)
무대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강렬하게 떨어지지만 무대는 텅 비어 있습니다. 오직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만이 존재합니다. '섬광'은 디모데전서 6장 7절부터 12절까지의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진 Intro입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 교회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의 삶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종교 경전을 인용한 것, 특히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의 말을 빌려 인트로로 삼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는데요. 선지자의 말(예언, 앞선 말씀)을 통해 이후의 전개를 어느 정도 예고하는 장치로서 의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용된 디모데전서의 구절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며, "부(富)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질 것이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유혹에 빠진 이들은 결국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기에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라면 예수의 말씀에 따라 선하게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이러한 내용의 나레이션의 끝에 알람이 울렸다가 버튼이 눌려 꺼지는 연출로 트랙은 끝을 맺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 편지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쓰였습니다. 열정적이지만 경험은 적은, 초기 개척교회의 젊은 책임자(목회자)들이 신자들의 믿음을 격려하며 교회를 잘 이끌어가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이 목적과 김태균이 어릴 적 미션스쿨을 다니며 기독교 세계관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참고해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을 이어받아 봅시다. 이 나레이션은 김태균이 힙합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자신의 신념과 '돈'이라는 현실이 부딪히게 되었을 때 겪게 될 고난을 돌파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끊임없이 암묵적인 판단기준이자 지침으로서 기능합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섬광’은 어둠이 드리웠을 때 방향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주는 등대의 빛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녹색이념의 서사는 "돈(욕망)을 피하고 주를 믿으라" 하는 성경의 목소리를 자신의 맥락에 대입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 될 것 입니다. 그러나 힙합 앨범의 주요 메시지가 "주님을 믿으라"일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피하고 그 대신 무엇을 믿을 것인가, 만약 그 대상을 찾지 못한다면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인 "돈"을 거부한 주인공의 믿음은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한편 '섬광'은 문자적으로는 "순간적으로 강렬히 번쩍이는 빛"입니다. 섬광이 종교적으로는 신의 임재, 창조의 순간("빛이 있으라"), 시작의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단지 커튼 사이를 뚫고 나오는 아침 햇살, '의식을 깨우는' 이미지, 밝은 빛으로 인해 시야가 가려져 분간이 되지 않는 상태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빛’에 ‘알람소리’를 엮어 또 하나 가능한 해석은 알람소리가 '아침' 혹은 '때가 됐음'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람을 경계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나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를 행하게 되는 시발점이 마련됩니다. 이는 4번 트랙 '이제는 떳떳하다'의 "이제는 제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됐어 / 두 발을 내밀어 두꺼운 이불 안에서"의 라인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나 눈부신 아침의 햇빛으로 인해 잠은 깨겠지만 당장 눈을 떴을 때는 물체를 명료하게 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다시 종교적으로 옮겨보죠. 계시의 강렬한 체험은 그 대상의 영을 깨우지만 동시에 그 절대적인 존재감은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보통 그 간극을 채우는 것은 ‘신에 대한 강한 믿음’입니다. 객관적으로는 명령과 명령이 지시하는 방향만이 남습니다. 이 ‘명령’은 이후 6번 트랙 ‘돈’에서 나타나듯 ‘쇼미더머니’라는 작은 연극의 ‘명령’과 충돌합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연극이라면 배우는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의식할 수 없습니다. 배우로서 참여하고 있을 때만 연극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 ‘작은 연극’과 갈등하고, ‘큰 연극’에만 호응하겠지만 여전히 ‘믿음’의 문제가 남게 됩니다.
힙합을 사랑하는 우리는 사전 지식을 통해 김태균이 'BABO' 혹은 'TakeOne(테이크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믹스테잎 [TakeOne For The Team]부터 쇼미더머니1 출연, 그 이후의 'Recontrol', 'Come Back Home'까지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제 김태균은 신의 계시를 받아 숱한 갈등과 의심과 고난을 만나 '자기를 찌르게 되는' 길의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이 길은 8번 트랙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지겠죠. 이 외에도 '섬광'에서 뻗어나온 다양한 이미지가 나레이션과 어떤 연관을 갖는지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겠습니다.
P.S) 바울의 서한에 대한 나레이션이 ‘섬광’이라는 제목을 얻은 것은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을 한 경험이 빛으로 이미지화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사도행전 22:6) (Impossum님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