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녹색이념> : 2번 트랙 "붉은 융단"
배우와 무대 사이에 깔린 레드카펫이 조명을 받아 눈부신 붉은 빛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 붉은색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 응원단의 일렁임으로 이어집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홍명보 선수가 4강행을 결정짓는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킬 당시의 캐스팅이 바로 뒤에 삽입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어둠이 내린 밤에 내가 가는 길 밝혀 주시네”라는 가사, 교회 성가대의 웅장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경건하고 절제된 노랫소리가 이어집니다. 배우는 무대에 들어서기 전 신께 자신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 자신의 운명을 의탁하는 한편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내면의 음성이 가스펠 보컬의 입을 빌려 울려 퍼집니다. (이 앨범 내에서 나레이션과 가스펠 보컬은 ‘계시’ 혹은 ‘내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보겠습니다. 이 점을 기억해주세요.)
인트로에 삽입된 한일 월드컵 이야기로 그의 첫 대사는 시작됩니다. 그 당시에는 전국민 “누구든지 꿈이 이뤄지길” 바랬습니다. 한국 축구팀의 선전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김태균은 그것이 어쩌면 높은 곳에 오르는 것만이 ‘성공’이고, ‘꿈’이라고 강요당하고 있는 사회적 강요의 무의식적 반영은 아닌가 자문합니다. 그래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는 ‘붉은 악마’의 “빨간색 티”와 “붉은 뿔”의 이미지로 이어지고, 그런 이미지들은 성공에 대한 편협한 사회적 정의가 강요되는 상황을 폭로하기 위해 중의적으로 차용됩니다.
김태균이 보기에 붉은 악마는 모두가 똑같이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 아래 모여 같은 색, 같은 옷, 같은 머리띠를 하고 모인 맹목적인 군중입니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머리 위에 뿔을 달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영혼의 빛을 잃고 외눈박이가 되어 세상을 더 이상 똑바로 볼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왜 아무도 이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는 걸까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비춰 자신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빛을 잃은 외눈은 단지 왜곡된 상만을 반사할 뿐입니다. 이들에게는 애초에 똑바로 보려는 의지가 없기도 했지만, 그 전에 이미 똑바로 볼 수 없는 눈부터가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에게 혼을 판 그들의 꿈이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악마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아무 목적 없이 계속 따라”가는 것에 익숙해있을 뿐인 그들이 “특별해지길” 빌어 왔을 뿐 처음부터 그 구체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꿈을 제시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속이 비어있는 구호만을 외치는 건 없는 꿈을 만들어내는데 딱히 도움이 안되죠. 그나마 주어진 길이라는 것의 실체도, 그 실체는 직장인이 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4번째 손가락에” “다이아 반지를 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아가며 모두가 ‘성공’을 쫓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느라 결국 모두가 자신의 ‘아빠’처럼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미래”로 수렴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아빠’의 소시민성을 부각시키며 목적의식에 투철한 역할모델의 부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 제쳐놓고서라도 애초에 경제적 ‘성공’이라는 척도 아래 ‘누구든지 특별해지’기란 불가능합니다. 김태균이 보기에 사람들은 모두 악마와의 부당거래를 인식하지 못한 채 환상에 빠져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벌스 1, 2, 3의 첫 마디를 모아 놓고 생각해볼까요? “누구든지 꿈이 이뤄지길 비네”, “누구든지 특별해지길 비네”, “난 좀 더 진실한 인간이 되길 원해”까지 세 문장입니다. 김태균은 결정된 삶으로부터 차이를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날 가둔 ‘우리(we)’라는 ‘우리(cage)’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입시용 그림”을 그리며 적응할게 아니라 “각자의 미술”을 하며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체계는 배경, 학위, 외모, 명성, 돈을 추구하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합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사랑’으로 포장된 ‘매’를 들어 강제로 무릎 꿇리고 사회로 편입시킵니다. 그러나 이미 ‘섬광’에서 경고되었듯 이것들은 소유와 탐욕에 관한 것으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와는 사실 관계가 없는 외부에서 끌어온 껍데기, 즉 가짜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모두가 성공을 약속하는 악마에 눈멀어 자기가 아닌 외부의 것들을 덕지덕지 갖다 붙이며 자신을 속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태균은 이에 “가장 가치 있는 보석은 내 안에”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온전한 자신으로서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명령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특질에 충실한 “진실한 인간”이 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는 이제 악마와 싸우기 위해 자신의 삶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힘이 없는 소시민 ‘아빠’의 말 대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말씀을 자신의 몸에 두릅니다. “내가 돈을 만질 때면 꼭 손을 씻으라 하시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요. (이미 김태균은 ‘아빠’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앞으로 음악의 길을 걸으려는 그와 ‘아빠’의 갈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특히 “무화과 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으며 /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하박국 3:17)”의 찬송가는 구약에서 신바빌로니아에게 유대왕국이 멸망당할 것을 계시 받고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내용입니다. 삶의 밑바닥까지 떨어진다고 해도 신이 지켜줄 것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죠. 김태균은 이처럼 신께서 자신의 앞길에 “붉은 융단”이 깔릴 것을 믿으며 앞으로 다가올 악마와의 싸움에 앞서 용기를 냅니다. 이러한 다짐이 가스펠 보컬의 목소리로 대변됩니다.
P.S) 벌스 3의 첫 마디 “난 좀 더 진실한 인간이 되길 원해”는 [TakeOne For The Team] 믹스테잎의 ‘Badnews Cypher’에서 어글리덕의 가사, “보다 좀 더 진실한 인간이 되길 원해”를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