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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이념/해석] 6. 돈

김태균, <녹색이념> : 6번 트랙 "돈"

by 생못미

김태균은 칸트적 도덕률을 수행하는 캐릭터입니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2번 트랙 ‘붉은 융단’에서 김태균의 문제의식이 이와 맞닿아있음을 이미 확인했습니다. 4번 트랙 ‘이제는 떳떳하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규칙(“음악이 가르쳐준 나만의 삶의 법칙”)을 세우고자 했던 시도로서 연결 지어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듯 규칙에 유독 집착합니다. 그 이유라면 그의 청소년기가 ‘자유의 결핍’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결정한 규칙에 따라 사는 사람은 기준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그 규칙이 옳다면, 규칙에 따라 사는 것은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테니까요. 거리낄게 없었던 그에게는 ‘쇼미더머니’ 역시 그저 에미넴의 ‘Lose Yourself’의 구절(“If you had one shot or one opportunity to seize everything you ever wanted in one moment, would you capture it or just let it slip?”)에 대답하는 것과 딱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그가 방송에 나갔던 것은 돈과 명예를 원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돈을 벌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있어 ‘쇼미더머니’란 도전하지 않는 ‘겁쟁이’들에 대한 심판이자, 무엇을 상대하든 떳떳할 내 자신에 대한 첫 번째 검증 기회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37f837172dbe62155c86ab302c74d995.jpg <쇼미더머니1> 출연 당시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눈을 감았지 / 파도에 휩쓸린 채 눈 뜨고 보니 이곳에 서 있네”라는 인트로의 가사는 이미 그가 겪을 ‘쇼미더머니’가 세계관을 뒤흔드는 커다란 시련이 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가 세운 규칙의 톱니바퀴가 ‘돈’에서 벌써 어긋나는데, ‘대마초’에 이르러서는 붕괴되며, 이윽고 ‘막다른 길’에서 폐기되는 수순을 밟죠. 방송에 임하는 자기 자신과, 방송에서 방영되는 테이크원이 다르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숨기지 않았어 내 마음속의 진심 /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머리 속엔 진실 / 촬영장에 내 모습은 떳떳했어 분명히 / 막상 방송된 모습을 직접 보기 전까진”이라는 대목을 보면 당황한 그의 모습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제작진의 이미지 왜곡과 그 이미지만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대중에게 상처 입은 그는 결국 그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택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계시라는 ‘큰 연극’을 수행 중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제시한 ‘쇼미더머니’라는 ‘작은 연극’의 배우 역할을 거부합니다. ‘돈의 논리’에 의한 제작진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권력을 쥔 자들과의 주도권 다툼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연극이라는 포맷은 적어도 극의 러닝타임 안에서만큼은 자의식을 가진 배우를 원하지 않습니다. 김태균은 편집 당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담길 원하고, 제작진은 그 배우가 가진 캐릭터가 극의 각본대로 작동하도록 모난 부분을 잘라내려 합니다.


‘쇼미더머니4’에서 서출구의 인터뷰가 적절한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서출구는 ‘스눕독 사이퍼 사건’ 당시 룰에 저항하는 뜻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양홍원에게 넘기며 자진 탈락하고, 서출구의 “(쇼미더머니란) 내게 꿈 같았다”라는 인터뷰가 그 장면 직후에 삽입됩니다. 그러나 서출구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꿈 같았다’라고 표현한 원 맥락은 ‘꿈처럼 황홀했다’는 긍정적인 뜻이 아니라 ‘꿈처럼 비현실적이고 나에게 맞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뜻이었음이 방송 후에야 밝혀집니다. 출연자는 결국 제작진을 뛰어넘을 수 없었고, 준우승은 했지만 자의식을 박탈당한 배우로 전락했습니다. 김태균의 “그런 걸 겁내기 전에 직접 나가 바꾸면 돼”라는 라인은 순수하지만 나이브한 것이 된 셈이죠. 그는 자기 증명에 내적으로 실패했습니다.


P.S) 벌스 중간마다 삽입된 음성은 인트로부터 순서대로 Taylor, 더블케이, MC스나이퍼, MC메타, 로꼬의 목소리입니다. 더블케이, MC스나이퍼, MC메타는 ‘쇼미더머니1’ 본선에서 테이크원과 함께 무대를 꾸몄고, 로꼬는 시즌1의 우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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