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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Oct 02. 2017

구-스웩 vs 빈-스웩

빈지노 - Being Myself

[녹색이념] 해석 이후로 힙합 글을 안썼는데 너무 오래 안썼다. 연휴를 맞아 간만에 몸이나 좀 풀어보자.
오늘의 요리는 빈 이병의 정규 1집 [12] 수록곡 'Being Myself' 되시겠다. 워밍업만 할거니까 컴팩트하게 가봅시다.


Beenzino (빈지노) - Being Myself

이 노래의 후크를 기억하시는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걸 나열해보자.

I’m unique So unique
I’m so busy I’m being myself 
난 흑인 백인도 아니지 
I’m busy I’m being myself 
I’m unique So unique
I’m so busy, I’m being myself
난 외계인, 이계인도 아니지
I’m busy I’m being my…


후크의 가사에 의하면,
1. 빈지노는 흑인, 백인도 아니고 외계인, 이계인도 아니다. 
2. 바쁘다. 내 자신이 되느라.
3. 유니크 하다.

1번 항목을 째려보고 있다보면 당장은 오왼 오바도즈나 비와이나 키스 에이프, 슈퍼비 같은 친구들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오왼 오바도즈는 자신의 정체성을 'Yellow Iverson'이라는 곡에서 스스로를 'Yellow, 검머외(검은 머리 외국인), 동양의 아이버슨'으로 호칭했고, 비슷하게 비와이도 'Bichael Yackson'에서 자신을 마이클 잭슨에 겹쳐놓는다. 한편 키스 에이프와 코홀트 등의 랩퍼들은 'Ninja(굳이 일본에 방점을 찍은건 아니라지만)'를 사용한 반면 슈퍼비, 면도 등은 그걸 뒤집어서 'Kimchi'로 한국적 맥락을 살려 자신의 패밀리를 칭했다.

이 대목은 대강 본래 미국 힙합에 진하게 녹아있는 지역성, 소속감 등의 요소가 한국으로 넘어와 현지화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간극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Represent', 'Family' 같은거 말이다. 그러나 이런 키워드 들은 본래 'Gang', 'Hustle' 같은 맥락과 복잡하게 엉켜있던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며, 흑인의 음악 양식을 동양인이 표현한다는 곤란함에 대하여 생각하기는 너무 골치아픈 일이다. 그래서 빈지노는 흑인, 백인, 동양인의 문제 그딴거 없이 굳이 걸고 넘어지지 않는다.

뻥이다. 빈지노도 조금은 신경 쓰고 있다. 진짜 신경 안썼으면, 굳이 자기가 "흑인, 백인도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었으며, "어느새 뚜벅인 커서 2pac이 돼있지 / 근데 대한민국에서 2pac이 되기 힘든 이윤 / 총 맞을 일 없는 홍대의 safety"라고 안전장치를 걸어둘 이유도 없었다.

그럼 굳이 말할 필요 없는걸 말하면서 이 곡에서 빈지노가 '타격'하고자 했던 지점은 어딜까? '인문학적 개소리'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인문학을 배우는 사람답게(정치를 페북으로 배웠습니다), 발터 벤야민의 '타격'에 관한 이 페이지의 설명을 인용해본다. 월월!

미디어워치는 전 정권의 도움을 받았다는 보도를 통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별 타격이 없다고 말한다. 이 모순적 진술은 사실 미학과 출신인 변희재의 탁월한 미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타격 schlag이란 무엇인가를 때린다는 것이다. 단순히 표면적인 부분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상처를 내고, 그 상처로 틈입해오는 강렬한 흐름은 충격 schock이 된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면역 체계를 작동하도록 하며 거부감을 들게 만드는 ‘이물’ 異物 의 감각이 바로 충격이다.

(...) 첫번째로 타격이라는 것은 삶의 태도를 질적으로 급정지, 변화시키는 인식론적 사건이다. 이런 사건이 아니라면 그것은 충격이 아니다. 그리도 두번째로 대도시의 상품소비사회를 구축하는 환상을 파괴할 만큼의 강도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충격이 아니다. 미학과 출신의 변희재 대표는 이처럼 자신의 정치적, 혹은 삶적 인식의 전환점을 가져다줄 충격이 아니라는 점을 미학적으로 비판하며, 현대사회와 정치권의 각성을 더욱 채찍질하는 것이 아닐까.


오... 개소리... 무의미한 인용이었던걸로... 여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빈지노는 한국 랩퍼들이 재현하고 있는 'Swag'의 문법을 타격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안으로 'Being-Myself' 된 빈지노 버전의 'Swag'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격'을 완성하고자 한 것이다.

벌스 1의 첫 문장부터 욕실 3개 운운하는 대목까지는 정확히 일반적인 스웩 가사와 다를바 없다. 하지만 바로 다음 문장부터 빈지노는 포지션을 바꿔버리는데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Shoot(화보 촬영)'을 'Shoot(총)'으로 연결시키면서 투팍의 이미지로 이어간다. 이어서 한국에서는 'safety' 때문에 총 맞을 일이 없고, 그래서 아무도 투팍 같은 전설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다시 그리고는 별다른 설명 없이 빈지노의 유니크함을 설파하며 벌스1이 끝난다.

편의를 위해 벌스1의 전반부를 '구-스웩', 후반부를 '빈-스웩'이라고 이름 붙여보자. 각 문법은 자신의 멋짐을 주장한다. 구-스웩은 자신의 멋짐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구찌, 화보 촬영, 욕실 3개 딸린 집 같은걸 말이다. 반면 빈-스웩은 자신이 왜 멋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나는 다르다' 만을 반복한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투팍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구-스웩의 방식을 비웃으며 추월해버린다. "니네 김치맨들 그래봤자 투팍 못 되는데 뭐함ㅋ" 이 정도 느낌인가? 그리고선 이런 식의 근거 없는 주장을 후크까지 이어간다. 암 유닠 쏘 유닠.

그런데 뭐라고? 암 쏘 비지 암 빙마 셆. 아하, 빈지노가 바쁜 이유는 그 비어있는 증명의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구-스웩은 자신의 지위와 소유물을 나열하는 것으로 이미 더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면, 빈지노가 '특별함', '다름'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느라 바쁜 빈지노.

만약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니고 외계인도 아니고 이계인도 아니고 너도 아닌 진짜 유일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왜냐하면 구-스웩의 목표는 '우와' 소리 가 나올만큼의 어떤 허들을 넘기면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반면, 빈-스웩의 목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나 자신 오직 하나가 되는 일이다. 세상에 부자는 많을 수 있어도, 빈지노는 단 한 명이니까. 그리고 어차피 그 '빈지노'는 세상에서 유일하고, 독특하고, 특별한 단 한 명이기 때문에 흑인, 백인, 동양인 문제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유니크한 진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땀을 쏟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빈지노는 이 순간 어느 대리석 앞에 서서 다비드 상을 구상중인 미켈란젤로다.


카라라의 채석장에 있는 미켈란젤로를 생각해보라. 그는 채석장에 널려 있는 대리석 덩어리들 속에 이미 형상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상상해보라. 지금 그는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 앞에 서있다. 이 대리석은 장차 다윗 상이 될 예정이다. 당신은 그 대리석이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믿겠지만, 적어도 그에게 그 돌은 다윗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는 다윗의 형상을 발견하고, 꺼내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는다. 정으로 그걸 돌 속에서 꺼낸다. 잠재적인 형상을 현실태로 옮기는 셈이다. 완성! 이제 그 대리석은 충만한 구체성을 가진 진정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무정형적 사물을 형상적 완전성을 가진 진정한 존재로 끌어올렸다. 이게 바로 존재의 '창설'이다.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 93p


이제 처음에 후크를 검토하며 언급했던 3가지 문제가 모두 이해되었다. 벌스2 역시 벌스1과 같은 구조로 진행된다. 구-스웩과 빈-스웩의 대립. 그리고 구-스웩을 추월하는 빈-스웩. 내가 유니크하다는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아니라, 유니크하다는 말을 유니크하게 뱉음으로써 주장과 동시에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숨겨져 있는 것은 '빈지노의 랩 자체가 살아있는 증명'이라는 주장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 캬... 이거 완전 스웩 아니냐? 그렇게 빈지노는 구-스웩을 '타격'하여 빈-스웩이라는 새로운 '충격'을 주는데 성공한다.

P.S) 빈-스웩은 '구분짓기'이며, '1등 트로피'다. 'Flexin'(어깨에 힘주어 뽐내다, 스트레칭하다)'에서 빈지노는 적당히 놀고 먹다가 센스형 나오면 그 때서야 몸풀기 시작하면(Flexin'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빈지노는 나무 그늘 밑에 누워서 한참 퍼자고 있던(Flexin' 하던) 토끼 쯤 되겠다. 빈-스웩은 빈지노가 1등일 때만 유효하다.

P.S 2)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나 자퇴한다고 했을 때 넌 뭐가 그렇게 특별하냐고. 김정은한테도 묻고 싶어요. 뭐가 그렇게 특별해요."
= 북녘의 김정은씨에 대결을 신청하고 있다. 증명한 것도 없이 국제적 개썅마이웨이를 보여주고 계시는 김정은보다 증명한 댓가로 마이웨이를 걷는 자기가 더 낫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빈지노는 그런 핵수저 김정은 덕분에 투팍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홍대의 safety" 때문에 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총을 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뚜뚜뚜뚜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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