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못미 May 06. 2018

그들은 희망을 찾아 '자퇴래퍼'가 되었다

학교 바깥에 희망이 있다면, 아니 있어야 한다.

1. 
나를 길러낸 건 팔 할이 에픽하이와 소울컴퍼니였다. 음질을 깎아 256MB 짜리 MP3에 구겨 넣은 그 음악들 중 가장 빵빵했던 건 키비의 폴더였다. '소년을 위로해줘', '스물하나', '향기', '고3후기', 'Feeling You', '덩어리들' 같은 곡들. 나중에는 MP3에 달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액정에 두 줄짜리 가사 자막을 출력해주는 기능이 업데이트 되었는데, 새 앨범이 나오는 날이면 신곡들에 가사의 싱크를 수작업으로 맞춰 넣는 게 하루의 일이었다. 물론 보통의 곡들이라면 누군가 이미 만들어 서버에 등록해놓은 싱크들을 다운 받아서 쓸 수 있었겠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반에서 힙합을 듣는 건 반에서 넉넉 잡아봐야 두세 명 정도 였기에 나는 대부분의 곡들을 자급자족해야 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음악들과 함께 뒹굴며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었다. 

2. 
그 시기에 들었던 음악들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결을 상당부분 규정하고 있는 편이다. 소울컴퍼니의 곡들에 그려진 학교란 '교과서로 꽉 찬 무거운 가방'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그 가방의 무게를 위로해주는 친구는 소울컴퍼니 뿐이었다. 교과서는 우리가 꿈을 꿀 수 없도록 가로막고, 어른들은 학교 밖으로 벗어나려는 우리를 감시하는 간수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학교는 분명 답답한 곳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학교 바깥을 원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 마다 짬을 내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놀 수 있었고, 썩 공부머리가 딸리는 것도 아니었어서 공부도 그렇게까지 괴로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놀이의 차원에 있었다. 선생님의 체벌도, '담탱이'에 대한 반항도, 일진도, 왕따도 그저 각자의 대본에 따른 것이었다. 그 역할놀이는 먼 훗날 공부의 결과에 의해 결정될 권선징악의 미래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만큼 학교 바깥으로 튕겨져 나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힙합의 반항적 가사들은 그저 이어폰 속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소울컴퍼니가 마음을 어루만져줬을지언정 관성까지 벗겨내지는 못한 셈이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시대는 변했다. 나는 어느덧 힙합 리스너로서 10년을 넘기고 있다. MP3에 조악한 음질의 음악을 우겨 넣고 가사 싱크를 맞추던 나는 모든 음악을 고음질 스트리밍 서비스로 간편하게 듣는다. 반에서 두세 명 듣던 음악은 <쇼미더머니>를 거쳐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장르가 되었다. 독서실에서 숨죽여 가사 쓰고 집에서 부모님 몰래 헤드셋으로 녹음하던 취미는 이제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은 아니게 되었다. 내가 사랑했던 소울컴퍼니는 이미 2011년에 마지막 콘서트를 가진 뒤 해체했고, 나를 본격적으로 힙합으로 이끈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애 아빠가 되어 곧 10집을 내다보는 베테랑 아티스트가 되었다. 내가 지금 10대를 다시 보낸다면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되돌아보면 그 시간의 낙차가 아찔하다. 오늘날 소년들은 소울컴퍼니나 에픽하이 보다는 일리네어나 저스트 뮤직의 음악을 선호할 것이다. 그 음악들에 비친 학교의 모습은 어떤 모양일까. 그리고 그 소년들은 책상에 앉아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3. 
얼마 전 Bully Da Ba$tard라는 래퍼가 첫 EP앨범 <Bipolar In Ma Neck>을 발표했다. 그는 대중에게 윤병호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데, <고등래퍼> 시즌 1과 2에 모두 참여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의 거친 랩스타일과 발성만큼이나 앨범 전반을 꿰뚫는 정서는 ‘날것의 분노’다. 그는 죽으려다 말고 “그냥 생각이 바뀌어서” 살아있는 존재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그를 <고등래퍼> 시즌 1의 제작진은 눈물을 짜낼만한 자극적 소재로서 이용했다. 그의 인스타 라이브 내용에 따르면 ‘방송에서 최면치료를 받는 대목은 내가 거부했으나 제작진측에서 예약을 이미 다 해놨고 꼭 필요한 거라서 어쩔 수 없이’ 했다. 최면치료 이후 그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걸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의 가사를 통해 알 수 있다(“최면이후 목 매달고 다음날 카메라 앞 / 내 손목을 본 넉살형은 방송에 화가 나” - Cliche Outro). 

윤병호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아마 학교 폭력과 왕따 경험으로 인해 더 이상 학교에서 대인관계를 지속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학교 바깥은 그의 능력을 증명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가 교과서 삼은 앨범은 스윙스의 <Upgrade II>다. 스윙스는 ‘자, 이제 니가 해 봐’에서 이렇게 외친다. “난 했으니까 자 이제 니가 해 봐.” 더 이상 랩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 없는 놈들의 치기’가 아니다.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를 거치면서 소년들은 깨달았다. 소울컴퍼니의 가사 속 학교처럼 “학교라는 새장에 갇히고 나서 느끼는 패배감”을 애써 낭만화 시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지루함에 멍든 어제를 치료할 멋진 만남(에픽하이 - Still Life 中 키비 파트)”이 학교 바깥에 있다면 무엇 하러 납득할 수 없는 시스템 속 ‘역할놀이’에 취해있어야 하겠느냐는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예상 가능한 미래가 ‘역대 최대 청년 실업률’, ‘역대 최대 규모 공무원 시험 준비생’ 같은 지표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면 더더욱. 

<고등래퍼2>에서는 김하온이 부모님께 썼던 편지가 방송에 나왔다. 내용인즉슨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할 것이며, 자퇴로 인해 남는 시간들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커다란 대자보를 빼곡하게 메운 ‘자퇴계획서’에서 학교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 낭비이고 대학을 안가는 나에겐 정말 의미없는 곳이며 다닐 이유가 없는 곳”이며, 증명의 기회는 학교 바깥에 있다고 김하온은 말한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배연서(이로한)’, 이병재 등도 자퇴 학생이며 학교를 떠난 그들은 ‘키프클랜’이라는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를 지탱하고 꿈을 향해가고 있다. 이제 ‘자퇴’란 단순히 과거처럼 불량한 학생들이 추방당한 결과가 아니고, ‘학교 바깥’은 그저 희망이 사라진 절망의 공간이 아니다. 이러한 흐름을 윤광은 평론가는 “게토화한 고용 불안정 사회에서, ‘랩스타’는 비용은 크고 보상은 불투명한 입시 경쟁을 건너뛰는 계층 이동 수단이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 <고등래퍼>의 역대 파이널 무대 진출자 중 시즌 2의 윤진영을 제외하고 모두 자퇴생이다. 이제 오히려 학교를 떠나는 용기를 가진 자가 희망에 한발 더 가까워지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가. 

4. 
김홍중 교수는 자신의 저서 <사회학적 파상력>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공한 작가들은 문학이라는 꿈을 생산하여 분배하는 자들이다. (...) 문학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문학성의 가치와 이상을 믿고, 그 믿음을 체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문학장이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문학적’ 인간에 대한 선망과 존경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전염되고, 물질화되어야 한다.” 오늘날 학생들에게 성공에 대한 희망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장소는 학교 안일까 바깥일까. 이러한 흐름이 10년이고, 20년이고 쌓이고 새로운 분야로 젊음이 유입된다면 ‘학교라는 새장’ 속에 갇힌 채 자신의 꿈을 잃어가는 소년들이 조금 줄어들어 있을까. 혹여 김하온이나 윤병호 이후 학교 바깥에서 성공한 ‘힙합인’들이 더 이상 ‘힙합장’을 재생산하지 못하더라도, 탈출은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는 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공부’가 사회적 성공에의 루트를 독점하고 고등학교를 대학교 입시학원으로 전락시킨 부조리한 상황에 때문에라도 그렇다. 어떻게든 시대는 바뀔 것이다. 소울컴퍼니를, 이어서 스윙스를, 그리고 다시 키프클랜의 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로 인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스웩 vs 빈-스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