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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Oct 30. 2017

최저임금 노동, 그 촘촘한 중력에 관해

한겨레, <4천원 인생>  + 독서모임 8회차 메모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어떤 단어들이 내 몸을 통과하며 흔적을 남기고 있는 중이라는 상상을 한다. ‘엄마동생핫산, SCM’라는 단어들네 명의 기자들과 함께 <4천원 인생>의 이야기를 통과하고 나서 생긴 줄 알았더니사실은 내 몸에 벌써부터 새겨져 있었다그러니까 이 책은 그냥 독서라기보다는 내 몸에 새겨져있는 흔적들을 톺아보는 행위에 가까웠다.
  
IMF 이후 십몇년을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급식 아주머니로 일해 온손바닥만한 휴게실에 아줌마 다섯이서 쪼그리고 앉아 다음 끼니까지 쉬고 있던 엄마전문대에 진학했다가 한 학기 만에 휴학하고 이후 군대와 알바로 몇 년을 채우고 있는자동차 딜러나 휴대폰 영업직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동생흔히 우스갯소리 짤방으로 소모했던 최지룡의 핫산(“똑바로 서라 핫산!”). 이번 학기 생산운영관리 과목에서 배우고 있는 공장 프로세스를 최적화시키는 라인밸런싱까지마치 내 인생과는 무관한 흐름인 듯 살고 있었던 각각의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삶의 중대한 구성요소다그리고 본질적으로삶은 부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똥과 오줌 없이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는 마치 세상에 똥과 오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행동하고말한다최저임금의 노동 역시 그렇다보이지 않는 그들은 친절하지도깔끔하지도향기롭지도 않다오히려 무례하고지저분하고냄새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누군가는 그들을 물을 내려 자신의 시야로부터 처리하는 것이 정당한 듯 말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대형가구 단지가 들어서고각양각색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가구가 고급스럽게 진열된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MDF 합판의 무게에 짓눌리는 이주노동자의 등허리가 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가볍게 톡톡 찍어 상품을 고를 때 상하차 노동자들의 허리에는 화물이 쿵쿵 떨어진다우리가 나빠서 그렇다기보다 도시는 그것들을 우리의 생활권과 분리시킨다우리는 이들에게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읽어내기도 하지만그것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에 한해서만 그렇다.
  
물론 이러한 분리라든가 양가적인 감정을 정당화시키는 우리가 부도덕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그건 그들과 우리가 근본적으로 구별되어 있지 않음을 알며통과해왔거나처해있는 삶의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세상에는 더럽고 번거로운 일 없이는 굴러갈 수 없지만우리는 마치 그런 것들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행동하고말한다.
  
그래서 자꾸자꾸 읊어본다. “출처아름다움이추악함에서 왔다면아름다움인지.” 타블로가 부른 출처의 한 대목이다. 2010년 4,110, 2018년 7,530최저임금은 가파르게 변해왔지만 우리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상품그 출처인 노동에 대한 인식은 과연 얼마나 변했을까 되짚어본다서로가 각자의 자리에 맞게 분리된 삶도시를 살아가는 내게 칸막이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눈은 과연 얼마나 살아있는가.




1. 우리가 읽은 책이 벌써 여덟 권이나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새 게스트 병천이가 처음으로 멤버들과 합을 맞춰본 날이다. 병천이는 경영학과에서 알게된 친구로 문학과 사회과학에 조예가 깊어 '보인다'. 아직 그쪽의 책을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눠본게 아니라서... 여튼 날카로운 구석이 눈에 띄는 친구고, 그래서 불렀다. 처음 보는 자리인데도 어색해하지 않고 잘 섞여들어서 다행이다. 재미있다고 해줘서 더 다행이었다. 다음 회차는 도양님과 함께하는 대망의 <총, 균, 쇠>다. 너무 기다리게 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2. 오늘은 특히 할 말이 많았다. 참석했던 다섯 명 모두 입을 모아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현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보니, 우리가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많이 얘기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 모임의 성격을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책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 자체에 대한 얘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과, 그 생각들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에 대한 얘기로 시간이 거의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 따위로 우리의 난장판 토크를 다 정리할 수는 없다.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짤막한 메모로 대신해보고 괜찮으면 계속해서 이어나가고자 한다. 이런 지적 공동체가 더욱 더 크게, 멀리 퍼지기를.

3. 좋은 책이고, 흥미롭게 읽었지만 불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쉽사리 읽을 수가 없었다는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체험 삶의 현장 식의 위선"을 범하지 말자는 경계의 목소리에도 모두 공감했다. 언론의 미래를 얘기하다보니 그나마 이런 탐사보도의 시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종현이 형이 인용한 안수찬 기자의 언론무능론이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안팔리는거라고. 쓸모 없는 기사는 쓰지 말라. 맞는 말이다. 내 지론과도 맞닿는 부분이라서 반가웠다.

4. 우리 사회에 메뉴얼이 없는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콜센터에 발생하는 감정노동은 전화를 거는 사람이 세게 나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고 있고, 그게 또 어느정도 먹힌다는 걸 경험적으로 학습해온 탓이 큰다. 관리자의 재량에 따라서 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은 메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메뉴얼이 없다는 것은 공동체가 문제를 마주했을 때 어떤 기준을 따를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는 민주화 이후 군부독재 시절의 논리가 기각당한 뒤 그 자리를 아직 새로운 규칙이 대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5. 도시의 구성원들이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서로 격리되고 있는 현상을 지적했다. 필터버블은 그저 그 거대한 현상의 한 일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6. 가난이 생각을 관통하는 문제가 이번 주에도 제기되었다. 인격적으로 너무너무 훌륭하고 매력이 넘치는 재벌 3세와 성격파탄자에 꼬질꼬질한 가난한 집 아이를 상상해본다. 이 둘의 차이는 본질적인 걸까? 우리가 양면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가? 수평폭력.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싫어한다. 자기도 배척받는 사람이면서, 배척받는 사람들에 속하지 않을거라고 여겼던 누군가의 에피소드.

시위를 하는 노동자들을 봤던 일화를 얘기하면서 "그래도 그 사람들은 시위 나올 여유라도 있는 사람들이라 좀 사정이 낫네"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은 어떤가? 도저히 최저시급 비정규직 노동을 빠져나갈 구멍이 안보이는데. 그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산다. 그러나 이뤄지지 않을 꿈을 꾸게하고, 그것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용인한다는 것. 누군가의 그런 희생으로 제공되는 저렴한 노동의 결과를 우리가 누리고 산다는 것.

7. 페북에서 지나치며 피식했던 군대 유머에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작업지시에 대해) 저에게는 팔도 있고, 다리도 있고, 후임도 있습니다." 이 유머는 다음과 같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상의 위기에 대해) 저에게는 기술혁신 의지도 있고, 경제적 안목도 있고, 하청업체도 있습니다." 또 다음과 같이 바뀔 수도 있다. "(하청업체 후려치기에 대해) 저에게는 원청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도 있고, 작은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는 자신감도 있고, 노동자 쥐어짜기라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8. 인간을 이해한다는 관점에서 세대격차 문제가 불려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들 각각의 무리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젠다가 우리 사회의 진짜 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이 각각의 집단들과 완전히 다른 생각의 전제 부터 인식해야 한다. 미국과 아랍, 중국이 다르듯이.

9. 한국 사회. 자기중심적인 '정' 문화. 책임감의 문제. "시대마다 그 시대만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증상인 '화'. 한병철의 <피로사회>와 엮어 자기경영, 노오력하면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를 상대에게 떠넘긴다. 자기계발 담론과 청년층의 보수화, '탓' 하는 사회. 책임의 전가. 문제를 제기조차 못하게 하는 촘촘한 미시적 권력의 그물들.

10. 50대 관리자들은 왜 이렇게 서류를 통한 절차를 중요시 여기고 좋아하는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 그들의 어린 혹은 젊은 시절 '서류'와 '절차'와 '법'과 '글'이 가진 힘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한 것이었을테다. 그 대단한 권력을 부하직원들에게 요구하면서 어떤 효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봤다.

11. 1인1표제(모두가 동등한 1표 행사) vs 주주민주주의(보유한 지분만큼의 의결권 행사), 전문가주의 vs 숙의민주주의.

12. 흩어진 이야기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기자의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기자 역시 루틴한 일과에 매몰되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고 명료한 언어로 정리하는 것.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저널리즘에게 기대하고 있는, 아직 충족되지 못한 니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표현에 서툴다. 그러나 표현에 서툴다는 것이 그것들이 설명될 가치가 없다는 뜻은 못된다. 그 어수룩한 표현들을 알아봐줘야 한다. 모두의 자기표현이 현실에 가서 닿을 수 있는 시대를 만들고 싶다.

13. 노동 역시 질병처럼 아직 정복되지 못한 고통일 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성한 노동'이라는 담론은 불가피한 노동에 대해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들의 발버둥의 산물이었을지도. 세계가 아직 노동의 불가피성에 대한 해결책을 못찾은 것 뿐이라면, 세계는 과연 완성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야겠지. 가까운 미래에 노동이 종말하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처럼, 노동은 로봇노예들에게 맡겨놓고 즐겁게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

14. 어쩌다가 <문학의 기쁨>에서의 한 대목이 나왔다. "왜 잘 쓴 글은 비싸지 않을까?" 하는 문제.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책이 삼백만원이야. 이 책의 가치가 보호되려면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비밀로 부쳐져야 한다. 근데 샀더니 책이 백지인거야. 구매자는 부들부들대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이 구매한 정보는 "이 삼백만원짜리 책에는 내용이 없다"는 사실인 것이다. 이 사실을 폭로하게 되면 자신의 삼백만원은 공중으로 증발한다. 그래서 이 책에 내용이 없다는 사실은 비밀로 남을 수 밖에 없고, 텅 빈 책은 계속해서 삼백만원의 가치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15. 경영학과에게 경영학의 관점에서 최저시급 노동자의 문제 물어보기. 노사관계론 수업을 들어보라는 얘기를 했다. 노동자가, 인간 존재가 거기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16. 훨씬 많았는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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