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저장하지 않은 번호가 낯익다. 이름이 뜨지 않아도 익숙한 11자리, 전 남친이다. 헤어질 때 단호했던 그의 태도를 생각했다면 3주 만에 온 연락에 '무슨 일이지?' 한 번은 의심할 법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늘 이성보다 앞서기에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잠깐 만나." "늘 보던 곳에서 보자." 용건만 간단한 전화를 끊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마치 이별을 복기라도 하는 듯, 헤어진 장소에서 그날과 비슷한 옷차림으로 만났다. 짧은 시간이 흐른 뒤였으니 외형적으로 변한 건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떨어진 시간만큼 '어색함'이란 이름의 거리가 생긴 것이다. 내가 아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했다는 표현이 더는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연애할 때는 피곤하다는 한마디에도 진심 어린 걱정이 오갔는데, 지금은 챙겨주는 말도 서먹하기만 하다.
"왜 눈도 못 마주치고 그래.
아프지 말고 잘 지내야지."
사귀기 전,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가 말하면 일부러 먼 곳을 응시했고, 내 앞에 그가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만 쳐다보며 말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생기면 더 먼 곳으로 돌아갔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려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이 비칠 것만 같아서, 부끄러워서 그랬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다른 이유로 그를 피한다.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마음, 나와는 달리 멀쩡해 보이는 그가 미운 마음. 무엇보다 미련을 들킬까 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단순하게 던진 '만나자'가 '다시 만나보자'로 들렸으니, 어쩌면 정리하지 못해 질척이는 마음을 이미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됐어. 이제는 아프지 말고, 힘들지도 마.”
그 말에 이어 안아주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안겨있는 게 좋으면서도 혼자만 힘들어하는 내가 안타까운 느낌, 두 마음이 요동쳤다. 그리고 비참해질 걸 알면서도 한 번 더 붙잡았다.
“지금 네 말과 행동, 혹시 다시 만나자는 뜻으로 한거야? 여지주는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면 미안해. 힘든 걸 모르는 척할 수 없었어.”
“네 말 참 따뜻한데 잔인하다. 더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날을 마지막으로 끝냈어야 했는데, 좋은 추억만 남기고 떠났어야 했는데. 결말이 빤한 영화를 미련이 남아 몇 번이고 다시 봤다. 이후에도 주고받았던 몇 번의 연락, “한 달 뒤 다시 만나는 거 생각해 보자.”라는 그의 말이 “그건 다시 만나서 어떻게 지냈는지 말하자는 뜻이었지.”라는 무심한 말로 변하는 동안 기대하며 기다렸다. 별 뜻 없이 했다는 말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분석하느라 남은 마음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대부분의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디어지던데, 미련은 '다시'를 놓지 못하고 커지더니 급기야 스스로를 갉아먹는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긴 이별을 거쳐온 지금에서야 선명히 보인다. 모든 건 '지난 일'일 뿐, 끝나버린 노래에 '이어서'는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