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Feb 03. 2023

결혼 안 하면 안 되겠냐?

조급함과 이별하기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신데렐라, 엄지공주. 즐겨보던 디즈니 영화 공주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공주 공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들은 하얀 피부, 풍성한 머리카락, 큰 눈, 오뚝한 코, 날씬한 몸을 기본으로 갖췄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했던가? 그들 곁에는 '멋진 왕자'가 세트로 등장했다. 그는 공주가 잘 살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어려움에 처하면 어떻게 알고 나타나 구해줬다. 출중한 외모에 재력과 기사도 정신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집 텔레비전에 늘 나왔다.  


어린 나는 자연스럽게 공주라는 인물에 '나'를 대입했다. 독사과를 먹었지만 키스 한 방으로 살아나는 나, 저주에 걸렸지만 왕자에 의해 구출되는 나. 결말 즈음 등장해 공주를 구원하고 사랑을 고백하더니 갑분 결혼까지 하는 이상한 이야기 구조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시간 디즈니에 노출된 아이에게는 그게 사랑의 서사였다. 영상과 현실이 모호해진 아이는 진정한 사랑이란 마법처럼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영어와 친숙해 지길 바라며 자막 없는 디즈니 공주 영화로 조기교육을 시작했지만, 정작 그 결과로 얻은 것은 온갖 환상이 그득한 '결혼과 연애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랬다. 결혼만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영화는 ‘죽을 만큼 고생했지만 왕자를 만나서 축복받는 결혼함'으로 끝났으니까. 결혼은 고생 후 얻는 보상 같은 것이기도 했다. 거기에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한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도 한 몫했다. '여자는 26살이 지나면 지는 해니까 그전에 결혼해서 애 낳아야 승산이 있다'는 말은 마음에 '졸속 결혼'의 불을 붙이기 충분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내 인생 제1 목적은 결혼이었다.


집안 환경이 안 좋아지면서 그 신념은 더 강화 됐다. 원가정은 선택하지 못했으니, 내가 선택한 배우자와 결혼하면 괜찮아질 거라는, 가정에서 충족하지 못했던 결핍이 채워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결혼은 답답한 집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이자 구원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합쳐져 14살 때부터 '배우자 기도'라는 걸 시작했다. 아니, '백마 탄 왕자를 만나기 위한 기도'라는 말이 더 적확하겠다. (누가 대체 배우자 기도 목록을 만들어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이야기했던가.)


첫 기도 대상은 '아이돌'이었다. 만들어진 이미지는 순수했던 중학생을 홀리기에 충분했고, 그는 백설공주의 그, 신데렐라의 그와 같이 완벽의 대상으로 자리했다. 비록 난 수많은 카시오페아들 중 빛도 없이 희미한 별 중 하나였고 빈털터리 지갑이라도 갖다 바친 상업의 노예였지만, 우리 오빠를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냐는 마음으로 열심히 덕질과 기도를 했더랬다.  


첫 백마 탄 왕자였던 사람을 두고 정말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경상남도 마산시에 있는 박**을 만나게 하면 어떡해'라는 마음으로 생년월일에, 혈액형에, 그의 가족관계까지 읊어대며 치성을 올리는 마음으로 매일 자기 전에 기도했다. 들어주지 않으셔서 너무나 다행이지만, 그 이후에도 배우자 기도를 빙자한 '인조인간 탄생'을 갈망하는 기도는 계속 됐다. 하지만 현실에 디즈니 같은 일은, 기도가 이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소설과 영화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결혼을 갈망했다. 이상적인 인간은 없을지라도 함께 부대끼며 온기가 돼 줄 누군가를 바랐다. 기도의 내용은 현실적으로 바뀌었고, 함께 만들어갈 가정을 그리며 행복해 했다. 단란한 가족을 볼 때면 가까운 미래를, 노부부를 볼 때면 먼 미래를 꿈꾸며 남 몰래 설렜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반려’의 손을 꼭 잡은 나를 떠올릴 때마다 문득 행복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이 간절한 내게 할미가 말했다.  


결혼 안 하면 안 되겠냐?


머리가 '댕' 했다. 날 너무도 잘 아는 할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할미는 내 주변에는 다 결혼하는데, 내만 혼자 살았으면 좋겠나?"

"아니, 네가 결혼에만 목매달고 있으니까 그런 게지. 세상에 다른 좋은 거 많은데, 그런 거 훌훌 털면 안 되겠나. 대학원 졸업하고 나면 승진 준비하고. 그런 거 하고 살면 안 되겠나? 그리 살다 보면, 바람처럼 언젠가 옳은 인연이 쓱 오는 기라."

"원감, 원장은 나이 오십이 다 돼서 하는 거다! 될라믄 시험도 치고 얼마나 어려운데."


할미의 속뜻을 알았지만, 괜히 엉뚱한 말을 뱉고 끊어버렸다. 할미는 내가 편해지길 바라는 거다. 손녀가 속상해하는 걸 보는 게 힘드시니까, 힘을 들이는 부분에서는 힘을 쭉 빼고 다른 곳에 쏟길 바라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31살을 넘은 이후부터 할미는 결혼할 사람이 있냐, 결혼 안 하냐 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끔이지만 자주  '좋은 소식이 있냐'라고 돌려 묻긴 했다.) 명절마다 듣는 단골 멘트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는 건, 할미는 내가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거다.  


할미의 마음을 안다. 누구보다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할미가 살아있을 때 예쁜 가정을 이루고 잘 사는 걸 보고 싶은 마음을. 그렇지만 그보다 지금의 내가 행복하고 떳떳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그래서 할미의 마음을 들어주기로 했다. 매일 새벽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간절하게 비는 그 기도를 듣기로 했다. 오늘을, 내일을, 그렇게 한 달, 일 년을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이다. 맡겨진 하루를 즐겁게 살다 보면 바람처럼 나타난 옳은 인연을 만나, 할미의 말하지 못한 바람이 이뤄지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할미의 기도를 믿고 하루씩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사진: UnsplashSandy Millar






매거진의 이전글 한의원에서 성격도 바꿔 주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