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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r 24. 2021

몸을 굽혀 알아보는 것들

3월의 출근길,시골집에서나맡을법한매캐한냄새가 났다.


몸을 굽혀 알아보는 것들


 3월의 출근길, 새벽 날씨가 쌀쌀하기는 하지만 패딩을 입을 정도는 아니다. 슬슬 오고 있는 봄이 도넛 같은 굴곡의 패딩 덩어리들을 쓱쓱 벗겨냈다. 따사롭게 비치는 햇살은 얄상한 코트나 바바리를 입게 해 주었다. 바바리를 입고 지하철 역으로 가는 중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골집에 가면 종종 맡을 수 있는 향이었다. 시야를 돌리니 검은색, 네이비 색의 패딩을 입은 아저씨들이 불을 지피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재개발을 하는 건물의 공사장 안쪽에서 불을 쬐며 쉬고 계신 거였다. 맵고 싸한 연기가 코에 닿아 그런 내음이 나는 거였다. 새벽부터 나와서 일을 하는 그들에게 3월은 아직 겨울이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불멍’이라는 단어에 배어 있던 여유로움이 오해라고 느껴졌다. 연기가 빚어내는 쿰쿰한 향에 발길을 서두르며 어서 봄이 오기를 바랐다. 


여전히 추운 퇴근길에는, 우리 집 앞에 계신 할머니를 마주쳤다. 그녀는 나의 짧은 바짓단을 나무라며 아직 춥다고 혼냈다. 사람들은 관심 없는 내 발목 끝을 할머니는 단박에 훑었다. 허리가 굽어 물리적 시야가 아래 있어 알아보신 건지, 아니면 삶에서 시선을 둔 시간이 길어서 알아채신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저녁으로 배달을 시키려 앱을 열었다가 그냥 포장을 해오기로 했다.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보면, 가슴이 턱 막힌다. 한 집 배달, 치타 배달 등 빠른 속도는 배달원들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치타가 될 수 없어서 오토바이 위로 몸을 얹는다. 치타의 최고 속력인 110km를 능가하는 것 같은 배달원도 보인다. 동물 그 이상이다. 그래서 배달을 시킬 때는 ‘늦어도 괜찮습니다. 조심히 안전 운전해서 와주세요’라는 문구를 고른다. 여기는 사파리가 아니고, 사람이 치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속도는 나에게 편의성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경쟁력이자 생명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다중시설이 금지되었지만, 목욕탕은 운영을 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집에서 씻으면 되지 굳이 이런 때까지 때를 밀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취약계층, 현장 노동자의 경우 온수가 나오지 않아 목욕탕을 이용해야 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때를 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생을 위해서 가는 곳이었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부가적인 휴식의 공간이나,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 공간이었다. 


시야가 다른 것은 창의적인 관점에서 큰 재능이라는 것을 여러 글에서 읽었다. 하지만 창의성 발휘를 위해 다른 시야로 보려고 하는 것과 다르게, 처해진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는 것이 있다. 같은 곳을 살아가더라도 각자가 다른 계절, 다른 시야, 다른 속도, 다른 공간으로 살아간다. 우리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거리가 먼 시선들이 사회에 공존한다. 오롯이 나만의 계절, 시야, 속도, 공간이 있겠지만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 생각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고개를 굽혀서 보이는 시야와, 내음을 맡으면 느껴지는 곳이 있다. 그곳과 거리는 있겠지만 거리두기를 하며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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