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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r 23. 2021

봄과의 이인삼각

워낙 제멋대로 추웠다 더웠다 속도를 달리하는 애라는 걸 알면서도 실패한다


봄과의 이인삼각


 지난 주말, 크게 체했다. 계절을 모르고 얇게 입고 까불다가 화를 입었다. 저번 주 금요일 회사 동료들과 한강으로 간 산책이 계기였다. 점심시간, 짧은 1시간을 아껴 회사에서 900m 거리의 한강을 걸어간다. 기어이 봄을 맞이하겠다고 발걸음을 허둥댄다. 걸음걸음 사이마다 나무들이 자라나 있다. 어떤 꽃은 벌써 꽃봉오리를 활짝 내놓고, 어떤 꽃은 이제 곧 개화하려고 푸른 잎을 돋우고 있다. 발걸음 사이사이의 나무마다 계절을 달리하고 있어 걷는 길이 신이 났었다. 얇고 밝은 블라우스를 입고 사람과 꽃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엔, 봄인가 싶을 정도로 다시 추워져 깜짝 놀랐다. 개구리도 나왔다가 죄송하다며 다시 들어갈 것 같은 추위였다. 스카프 하나만 챙길 걸.. 아침의 나를 탓하며 집으로 향했다. 전조증상이 있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아프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속이 불편했다. 남편과 나가서 오후 일정을 하기로 했었는데 몸이 불편했다. 누워있다가, 몸을 구부렸다가, 비스듬히 기대어 앉다가를 반복해도 속은 불편했다. 결국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했다. 찬바람에 단단히 체했다. 불편하다는 감각은 있었지만, 토를 하고 나니 아프다는 게 증명된 것 같았다. 갑자기 몸 이곳저곳이 으슬으슬 아팠다. 전반적으로 몸이 춥고,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오한과 몸살이었다.


스스로 기분이 영 불쾌하고 모지라 보였다. 매일 익숙하게 하던 일을 부주의하게 실수해버린 경력자처럼 멋쩍었다. 몇 개의 계절을 지나왔는데도 계절의 변화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몇 번이나 발을 맞춰봤는데 봄과의 이인삼각에 실패한다. 워낙 제멋대로 추웠다 더웠다 속도를 달리하는 애라는 걸 알면서도, 안일하게 평소대로 뛰던 내 잘못이다. 계절이 옷을 갈아입을 때, 내 체온과 속도도 따라갈 줄 알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는 게 한심스러웠다. 


자책하던 마음과는 달리 실컷 잠들 수 있고, 뒹굴거릴 수 있는 나태함 프리패스 자격증을 획득하여, 침대에서 누워서 하루 종일 있었다. 아프니 한 가지 목적이 뚜렷했다. 이전 상태로 몸을 회복시키는 것. 


남편은 얇게 입고 가더니 잘됐다 라는 못된 농담을 하면서 보살펴주었다. 뜨거운 전기방석의 코드를 연결해 배에 얹어주었다. 마시고 한숨 자라면서 레몬차를 타 주었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침대에 누워 책을 보다가 바닥과 배가 따뜻해서 잠이 들었다. 


자다가 눈을 뜨니, 남편이 머리맡에 앉아있었다. 머리를 쓸어주며 그가 말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또 자고. 대단하다.” 눈빛과 행동은 부드러웠지만 말만 보면 그렇지 않았다. 퉁명스러운 말을 저렇게 웃으면서 하다니. 


남편은 죽을 사 왔다. 저녁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먹는 끼니였다.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고마웠다. 혼자 있었다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들었을 거다. 서러움을 덜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죽을 먹으려 앉았다. 식탁 위에 꽃 한 송이가 보였다. 꽃은 생기 없는 나와 달리 꽃병에 꽂혀 저 혼자 생동감을 발산했다. 밖에서 꽃 본다며 돌아다니면서 아프지 말고 집에서 보라며 사 왔다고 했다. 회복에만 초점을 두고 있던 마음 사이로 운치가 더해졌다. 꽃은 환절기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계절을 당겨 빠르게 피어 있었다. 남편은 연신 웃으며, 구박했다. 계속 웃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 한심스러움이 조금 상관없어진 것 같았다. 다정한 꾸짖음을 느끼며 그래 자책보다는 어서 나아야지 하며 죽을 삼켰다. 더 이상 그만 자빠지자 생각하며, 일기예보를 본다. 내일의 온도를 보며 계절의 속도를 속으로 맞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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