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장단점을 비교해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상사들에게서 많이 배웠겠네요”
면접관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단 둘만 있던, 첫 회사 상사였던 대표님, 그곳의 기억이 대화를 통해 간만에 떠올랐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입사 초반에는 대표님과 직접적으로 마찰이 없었다. 사수였던 대리님들이 보고를 했기에
직접 뵐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입사 1년 후 조무래기인 내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수였던 대리들이 모두 퇴사했다. 졸지에 나는 대표님이 사수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퇴사를 한 대리님들도 모두 어렸다. 그때부터 대표님께 직접 일을 배우다 보니,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은 꼼꼼하면서도 엄숙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써, 네 말투는 너무 의존적이야. ‘정해달라’라고 말하지 말고 ‘우리 의견은 이겁니다.’라고 주도적으로 써.”
이메일 하나까지, 전화 표현 하나까지 옆에서 고쳐주며 일을 가르쳤다.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이런 말도 들었다.
“너는 이해력이 떨어져, 정리력도 떨어져.”
그래서 사설을 아침에 읽고 쓰라는 숙제까지 받았다. 평소 책 읽고 독후감 쓰기를 좋아했지만, 괜히 그런 취미를 나불댔다가. 대표님께 책은 뭐하러 읽었었냐는 핀잔만 들었다. 하루하루 숨 막혔다. 대표님과 어린 햇병아리로 만나 30년 이상의 갭을 메우는 게 어려웠다. 그때 나는 퇴근 후 친구들과 한잔하며 매일 상사를 흉봤다. 하나하나 꼬투리 잡고 신경 쓰면서 가르치는 게 꼰대 같았다. 지금은 그때 배운 게 가끔 생각난다. 이후 다른 회사들을 다니며 그렇게 하나하나 태도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떠오르는 분이 있다. 나를 많이 가르쳐 주신 M팀장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앞서 언급한 대표님과는 다르게 정말 일을 안 했다. 그녀는 사내 메신저로 자기 취미활동인 화초 재배 사진을 보내거나, 친구가 은행에 다니는데 계좌를 개설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사내 메신저에는 팀장님의 아이 사진, 화초 사진, M팀장의 개인과제에 대한 투표 등이 주요 안건이었다. 나는 그런 메시지들이 업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팀장님께 보고를 할 때는 얘기가 달라졌다. M팀장은 대기업 출신이었다. 자료를 보고, 전체 매출이 아니라 일 매출을 봐야 하며, 동기간, 동요일, 등을 비교해야 된다고 말했다. 계산하는 법에 대해서 표를 그리며 설명해줬다. 본인이 직접 일을 하지는 않지만 지시사항은 명확하게 했다. 그러고 나서는 또다시 노래를 부르며 화초 사진을 보내는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는 빨리 일을 하고 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머리가 좋아진 것 같았다.
그는 내 생일에 유일하게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껏 생일을 챙겨주는 문화의 직장에 있지 않았었다. 그는 다른 직원들을 동원해 케이크와 과자로 파티를 열어주었다. 미리 준비했다며 화장품 세트도 선물로 주었다. 선물을 주었다는 자체보다 그런 팀장님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는 많이 일하지는 않았지만 효과적으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실제로 팀장님은 자신의 일을 빨리 끝내고 대학원을 다니며 자기 계발을 하고 있었다. 직장일과 육아, 대학원까지 다니는 그런 모습을 보며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디자인 회사는 거의 다녀봤지요. 그렇게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제 나름대로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싫었던 것 하나씩만 하지 말자는 원칙이었죠.”
-『일하는 사람의 생각』 中 오영식 디자이너
일을 할 때는, 싫고 흉볼 부분만 떠올랐던 사람들인데 지나와 떠올리다 보니 좋은 점들이 많이 떠올랐다. 내가 싫었던 부분은 반면교사해서 하지 말고, 좋은 점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첫 회사의 대표님은 본질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법, 태도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M팀장님은 보고서를 쓰고 보고하는 법을 다각도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일 외에도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졌다.
상사나 또는 동료를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생각하며, 내가 그들의 장단점을 비교해보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이런 점이 좋거나 싫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무조건 나쁘기보다는 나와 좀 더 맞거나, 맞지 않을 뿐이다. 또한 배울 점이 분명하게 있었다.
“네 많이 배웠습니다. 제 상사분들은 모두 엄격하지만 다정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엄격하지만, 내게 꼭 필요한 조언들을 주었던 다정한 상사들을 떠올리며, 면접관 앞에서 미소 지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