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가 주렁주렁한 조끼를 입은 아저씨에게서 우리 아버지를 본다.
과일 좌판 위 바께스에는 온갖 색색의 과일이 가득 하나, 마스크를 쓴 아저씨의 눈밑은 어둡다. 나는 손님이 없는 과일 좌판 앞에 선다. 주머니가 주렁주렁한 조끼를 입은 아저씨에게서 우리 아버지를 본다.
과일가게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과일을 트럭에 좌판을 깔아 두고 파셨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장사를 나가지 못하였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늦게 오셨다. 그래서 학생 때 아버지를 많이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아버지는 늦게 일어나 지각을 할 것 같은 나를 태워준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학교에 가까이 가서는 걱정이 앞섰다. 트럭을 누가 보면 어떻게 하지. 아버지의 트럭이 부끄러워 몇 블록 전에 내렸다. 그 일은 아직도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별말을 하지 않고 내려주었으나 아직 그날의 기억이 남아 있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그가 고생하는 게 마냥 부끄럽고 싫었다. 다른 무언가를 하기를 바랐다. 그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조금 더 커서 알고 나서는. 그가 요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돈을 많이 버는 거면 보상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사를 잘한다는 사람들의 책을 샀다. 청년 사업가로서 과일가게에 성공했다던 ‘총각네 야채가게’ 일본에서 술집으로 성공한 ‘장사의 신’. 그런 책을 읽으며 ‘왜 장사를 이렇게 하지 못할까’라고 생각했다. 확성기를 돌며 파는 과일, 좌판에 깔린 과일을 도대체 누가 살까. 책을 갖다 드리자 아버지는 멋쩍게 고맙다고 하셨다. 며칠 뒤 그 책을 다 읽어보셨냐고 아버지를 다그쳤다. “일을 하고 피곤하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단다.” 하고 아버지는 웃으셨다.
졸업을 했고, 아버지는 나중에 과일 장사를 그만두었다. 그 후 직업을 몇 번 바꾸었다. 센베 과자를 파는 일, 전기 공사, 그리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사이에 틈틈이 아팠다. 치질 수술을 했고, 환절기마다 감기를 앓고, 가족력인 허리가 더 많이 아파져서 수술을 했고 약도 먹었다. 어느 날 같이 걸어가다가 쉬었다 가자며 벤치에 앉는 아버지를 보며 언제 늙으셨지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차분히 나이가 들고 계셨는데 그것을 왜 보지 못했을까. 어느 날 아버지는 홈쇼핑에서 광고하는 탈모 샴푸를 사다 달라고 말했다. 돈은 줄 테니, 본인은 사는 방법이 어렵다면서, 탈모 샴푸를 결제하면서, 머리가 많이 빠지시는구나. 그런데 외모에 신경을 쓰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무신경한 본인의 마음에 스스로 놀랐다.
얼마 전 연말정산을 해야 하는 때였다. 부모님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했다. 아버지는 그전 회사에서는 거의 회사 직원이 연말정산을 처리해줬다고 한다. 이번에는 회사를 옮기셨기에 어떻게 하실지 몰라 전화를 했다.
“아빠, 연말정산 어떻게 하세요?”
“응 나 서류 내라고 왔는데 안 한다. 언제? 내일까지 내라고 했어. 귀찮고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나는 ‘장사의 신’을 아버지에게 쥐어드렸던 때처럼 답답해졌다. 아버지는 컴퓨터를 잘 못하셨다. 공인인증서 인증에 어려움을 느끼시고, 심지어 ‘카카오톡 업데이트’라는 문구만 봐도 당황하시는 분이었다. 아버지가 포기한 연말정산 돈이 아까웠기에 도와드리려 컴퓨터를 켰다.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통해 부양가족 등록, PDF 다운로드, 아버지의 직장의 이메일을 받아 연말정산 서류를 메일로 보냈다. 내가 자판 몇 개만 탁탁 두드리면 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그동안 <업데이트> 글자에 놀라는 아빠에게 이런 건 그냥 누르면 된다면서, 신문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었다. 요즘 세대에게는 참 편한 일이, 아버지 세대에게는 ‘낯섬’과 ‘포기해야 하는 일’로 변했다. 하지만 내 구박 때문인지, 아버지는 쉽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셨다. 아직도 트럭을 부끄러워하는 청소년처럼, 아버지의 좌판을 무시하고, 내가 두드리는 자판만 잘난 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연말정산을 많이 받아 기분이 좋으시다며, 맛있는 밥을 사주셨다. 밥을 먹고 과일을 깎아 먹었다. 아버지는 씨가 작은 과일은 씨를 뱉지 않고 다 씹어 드셨다. 씨에도 과육이 있다면서. 꼭꼭 씹어보라고 달다면서. 씨를 달게 드실 정도로, 치열한 삶이었는데. 태평한 삶은 아니었는데 왜 나는 아버지가 태평한 분이라 생각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마 마음이 편했나 보다.
아버지의 좌판을 생각하며, 나는 자판을 두드린다. 두 가지 모두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언제든 아버지가 편하게 두드릴 수 있는 딸이 되자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