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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un 06. 2021

싸이월드 아이디 찾기 신청을 했다.

우리는 질리기도 하고, 잊기도 하고, 그냥 시간과 함께 멀어지기도 한다


싸이월드 아이디 찾기 신청을 했다.


싸이월드 부활 소식에 아이디 찾기 신청을 했다. 대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일촌평을 쓰고, 서로 메시지를 남기고 사진을 올렸던 그때의 추억들이 궁금해서 다시 미니홈피를 살려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지금 보면 너무나 유치하고, 그때의 감성에 몸서리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싸이월드처럼, 점차 소원해진 관계들이 떠올랐다. 그중 한창 미니홈피에 열심히 서로 댓글과 일촌평을 남겨주던 B가 그리워졌다.  


‘오늘은 웨촬 하는 날! 너무 설레고 신난다~’


지금은 싸이월드가 아닌 인스타로 B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는데, B가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았다. ‘B도 결혼을 하는구나.’ 나는 때때로 B를 생각했다. 그녀는 유사한 업계에 종사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 아이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하는 소식들은 흥미를 자극했다. 입는 옷들은 컬러풀하고 트렌디했다. 방문하는 음식점은 가보고 싶었던 인스타 맛집들이었다. B와 달리 평소 무채색의 옷들만 즐겨 입고, 맛집들은 가고 싶었지만 귀찮아하는 나와는 달랐다. 그래서 B의 소식들을 구경하며, 대리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우리는 대학교 동기다. 대학교 시절 B는 화려한 타입이었다. 화장을 진하게 했고, 옷도 화려하게 입었다. 쎄 보인다는 느낌이라 처음에는 먼저 친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 후에도 각자 다른 그룹에 속해 있어 친해지지 못했다. 그래도 동기나 선배들이 함께하는 술자리에 어울려 자주 같이 놀고 즐겼다. 마주치면 서로 안부를 묻고 소소한 칭찬과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장난이 오가지는 않고, 배려와 존중을 해주는 관계였다.


 하지만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수업을 들으며, 나는 B에게 관심이 많이 생겼다. B는 방학 전에 살이 많이 쪘었는데 방학 후 살을 엄청나게 빼고 돌아왔다. 비법을 묻자 복싱을 일주일에 세 번씩 나갔다고 했다. 운동량이 많아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늘 목표와 다짐 앞에서 쉽게 무너지던 나는 B의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다. 평소의 어눌한 말투와 달리 수업시간에 똑 부러지게 발표자료를 만들어온 B를 보고 놀란 적도 있었다. 공부도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B가 자신은 길을 가면서도 마스카라를 잘 바른다며, 강의실 앞 복도에서 거울도 보지 않고 슥슥 마스카라를 바르던 일, B가 붉은색으로 염색을 하고 와서 잘 어울린다고 모두가 칭찬해준 일 등 B의 몇 가지 모습이 떠오른다. B는 유독 내 미니홈피에 사진에 전부 댓글을 달아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우리는 오프라인보다 미니홈피에서 더 친했다. B와의 관계는 다정한 관계였다. 깊이 마음을 쏟지 않아도 되는 사이, 그렇기에 서로를 존중해주는 사이에서 남을 수 있는 다정함.


B와는 대학교 졸업 이후, 한번 정도 따로 만났다. B와 친했던 그룹이 만날 때 껴서 함께 술을 마시고 근황을 이야기했다. 그 후로도 한번 보자 라고 얘기는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다. 그 이유가 뭘까, 내가 CC로 동기와 오래 사귀고 헤어진 후 단체 모임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몇 번의 약속을 잡고 취소하는 과정에서 B보다 중요하게 만나야 될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서로의 우선순위에서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쏟지 못했기에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나쁜 추억이나 서운한 일을 만들 정도로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그만큼 깊숙한 속내를 얘기할 정도로 아련한 관계도 아니었다. 한 번도 깊어진 적 없는 관계임에도 B와의 관계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관계들은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누군가 어디 회사를 언급하면 ‘아 거기에 B가 다니는데.’라고 생각하지만, ‘제 친구예요’라고 말하면서도, ‘동기는 맞지만 친구가 정말 맞나?’라고 스스로 의심해보게 되는 사이가 점점 되고 있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인터뷰이로 나온 회차가 기억이 난다. 이동진 평론가는 토이스토리 3에 대해 이렇게 평론을 했다.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서 꼭 누군가의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라고 한줄평을 했다. 장난감과 주인공의 관계가 멀어지며 그들은 “고마웠어 파트너”라고 인사를 한다. 그것처럼 우리의 관계가 누군가의 잘못이나, 정성의 부족 때문이 아닌 그저 시간이 흘러 이렇게 되었다는 말에 나는 잔잔한 위로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 지나가버리는 관계들이 있다. 그것은 B와 나만의 사이가 아니라, 잠깐 배웠던 취미였던 필라테스, 한동안 한참 빠져있다가 지금은 찾지 않는 퍼즐, 자주 갔지만 이제는 가지 않는 단골집, 사라져 버린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우리는 질리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냥 시간과 함께 멀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일이다. B의 피드를 보고, 웨딩촬영의 환한 웃음을 보고 B가 잠깐 그리워지는 찰나의 순간에 연락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B와 나, 각자의 생활과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정성과 시간을 쏟아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을까? 20대에 쌓아온 파편 같은 추억의 조각들만 가지고, 30대의 우리가 각자에게 상대방의 존재를 더 크게 만드는 과정을 할 수 있을까? 내게 여력이 있을까? B의 카카오톡 사진을 보며 나는 스스로 자문해보았다. 


지금은 그저, B가 내게 보여주었던 대학교 때의 활력 있는 모습들. 그녀가 주었던 신선한 영감들, B의 밝은 웃음과 우리가 다정히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 자체로의 기억들을 간직하며 고마워하기로 했다. 내 삶에서 B는 아주 소중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내 생이 돈가스 도시락 같은 거라면, 돈가스라는 메인 반찬은 아니라도, 돈가스 옆의 천사채나 무말랭이처럼, 오독오독 씹히는 작은 기쁨을 선물해준 사람이다. 여러 가지 일과 만남들 중 그런 관계들 또한 파편처럼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갑작스레 감사해진다.  


점점 소원해져 가고 있는 관계들도,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받아들이려고 한다.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우리는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멀어짐이 사라짐은 아니다. 우리의 어떤 순간들은 의미가 있었다. 나는 B에게 보내려던 카카오톡 메시지를 하나하나 눌러 지우고, 대신 B의 사진에 ‘좋아요’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B야 너무 예쁘다. 축하해’라는 댓글을 남겼다. 


내 싸이월드 홈페이지가 부활되면 어떤 글들이 있을까, 그때 B와 서로 남긴 글을 읽어보면 다시 정성을 쏟을 여력과 마음의 힘이 생길까? 궁금해하며 내 미니홈피에 다시 접속할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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