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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y 30. 2021

친구와 멜론

얘는 단단해 보여도, 물렁해 보이는 내 틈새들을 잘 안다.


친구와 멜론


초록색 멜론에 칼을 쩍 댄다. 가로 세로로 자른 뒤에 몇 등분을 낸다. 안에 씨와, 물렁한 과육이 드러난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물컹하고 달콤하다. 멜론을 한 입 베어 물며 친구가 말한다.


“너는 여하튼 잘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이 듣고 싶은 거잖아. 내가 그만두라거나, 도망치라고 말하길 원하지 않잖아.”


하여튼 쳐다보지도 않고 시니컬하게 말한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목소리 그렇지만 단단한 핵심이 있는 얘기다.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생각을 해보니, 애써 반박할 필요 없이 저 말이 듣고 싶었다.

  

“응.. 맞아..” 


뒤에 말하고 싶었던 고맙다는 말을 생략하고, 멜론을 마저 먹었다. 고기와 회로 든든하게 부른 배였지만, 디저트는 또 다르지 하면서 멜론을 먹던 차였다. 연두색의 과육이 입안으로 달콤하게 흘러 들어오자 고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멜론의 달콤함 때문이 아니라 친구의 심드렁한 답변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껏 친하게 지내는 초등학교 때의 친구들이 있다. 성장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서로를 많이 안다. 


가끔은 잘 모르는 부분이 튀어나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그건 그 사람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맞닿았기 때문이다. 함께 학교를 다니던 때와는 달리, 대학생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 직장 생활을 하며, 결혼을 이제 앞두고 등등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며 새로운 퀘스트들이 생겼다. 그러면서 서로 생각지도 못한 모습들을 불쑥불쑥 보고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쑥 불쑥을 인정하며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쌓아온 시간만큼 연륜을 쌓아, 서로의 무르고 단단한 부분을 잘 찾아낸다. 그런 걸 찾아낼 수 있는 게 지인과 친구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는 속을 잘 보이지 않으려 한다. 물렁해 보여도, 내 속내는 잘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친구들은 멜론 껍질처럼 단단해 보여도, 물렁해 보이는 내 틈새들을 잘 안다. 그래서 몇 개의 한숨과 고민을 듣고는 귀신같이 잘 대답해준다.


“넌 어차피 ---- 할거잖아.”

“넌 그거 그만둘 거잖아.”

“너 지금 찝찝하지..? 아니면 괴롭냐?”


그저 들어주는 것 같다가도, 이런 찰떡같은 답변들을 듣고 있으면 얘들이 나를 이렇게 잘 아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반면 나는 친구에게 그런 조언이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되긴 하나? 하며 고맙고 반면교사 하게 된다.


요즈음, 나이를 먹으며 친구들의 다정함에 기대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도 한다. 다정함에도 베풀 수 있는 그릇이 있다. 내가 힘들다고 계속 그들의 다정함을 퍼먹다 보면, 그들은 가족과 연인에게 나눠줄 다정함이 동날지도 모른다. 그런 감정 도둑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반면, 내 다정함의 그릇은 퍼줄게 많도록 키우고 싶다. 그러려면 따스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자존감을 키워야겠다.


계절에 맞게 먹으면 딱 알맞은 계절과일처럼, 나의 그때, 나의 그 철에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친구를 보며 세심함을 느낀다. 철에 맞는 바람으로 과일들이 자라듯이, 지금까지의 자람에 친구들이 적당한 온도와 바람을 쐬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한참 더 자라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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