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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ug 01. 2021

매정함과 다정함

동백꽃은 매서운 바람을 맞아야만 자라난다. 자꾸만 매정할 일이 생긴다.


매정함과 다정함  


동백꽃은 매서운 바람을 맞아야만 자라난다. 겨울이 되어야 빨간 봉오리가 벌어진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꽃이 활짝 핀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자꾸만 매정할 일이 생긴다. 추워지며 피는 꽃을 생각하며 꼭 필요한 선택과 냉정함에 대해 고민한다. 



최근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평가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담당자는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을 내게 물었다. 먼저 그 사람이 정말 능력 있고 필요한 사람임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계속해서 이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능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때문에 나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회사에서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회사 평판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은 직원도 고객이며 회사가 내부 인원을 관리하고 잘 이끌어 주는 것도 능력이다. 라며 설득했다. 담당자는 첫 번째 주장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주장에는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며 생각해주어 고맙다며 고려해보겠다고 이야기했다. 



힘들게 주장을 했지만, 그 이후 결국 그 사람은 권고사직을 당하게 되었다. 이 일로 한동안 괴로웠다. 친구와 이 이야기를 나누자, 친구는 내가 변했으며 너무 매정하다는 말을 했다. 친한 친구였기에 그 말이 크게 다가왔다. 나도 배 아프고(스트레스를 받으면 늘 배가 먼저 아프다.) 마음 아프고, 머리 아프며 괴로워하며 겪은 과정인데 매정하다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본인 같으면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 ‘회사의 평판이 나빠질 수 있어요.’ 대신에 ‘회사가 너무 매정합니다. 너무한 처사입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말하면 설득이 될 것 같냐고 친구에게 역으로 물었다. 친구는 내가 처세적으로 논리적으로 잘 얘기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냉랭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렇게 위선적으로 말하면 너는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변했다는 말에 대해 인정하며, 친구가 한 ‘매정하다’는 말에 나는 정말 매정한 사람인가 생각해보았다.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불필요한 보풀을 다듬듯 이전보다 가다듬어지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해고 대상자를 평가하는 자리에서도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동시에 하나의 협상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말했다. 어떤 전략을 써야 이 사람을 권고사직시키지 않을 수 있는지, 그 사람의 능력을 먼저 최선을 다해 어필했고 이후에는 회사의 평판을 들어 회사의 편인 ‘척’ 했다. 친구는 회사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내가 위선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런지도 모른다. 가식적이고 위선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은 너무나 좋은 사람이고 너희들은 ‘매정하다.’라고 감정적으로 말한다면, 상대는 감정적으로 움직여질 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나도 마음속으로는 매정하고 회사가 모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담당자에게 그 말을 하지는 않는다. 많은 협상책에는 ‘감정을 배제하라’라고 나온다. 예전에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했다. 내가 얼마나 슬픈지 얼마나 괴로운지를 먼저 얘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을 배제하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도 손을 덜덜 목소리가 덜덜 떨리며 말이 나간다.



이전에는 나의 모든 ‘말’을 나의 ‘정체성’과 동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개별적인 언어들이 나의 정체성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른 전술도 때로 필요하다. 그때 '말' 안에 나 자신을 포기하고 욱여 넣지는 않으려고 한다. 반면 솔직한 감정을 말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가족들과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럼에도 힘들어서 회사의 몇몇 이들에게는 의지하기도 한다. 다만 협상의 테이블에서는 이길 수 있는 말을 사용해 대화할 것이다. 내 의사에 반하는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이유들 중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여 대화하는 것일 뿐이다. 내 주장과 다른 것에 동조하는 것은 거짓이고 위선이다. 그러나 여러 선택지와 나의 생각중에서,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방향을 짚어주어 되받는 말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고사직은 발생했다. 그리고 한동안 멍이 든것처럼 기분이 저릿저릿했다. 빈자리에 마음이 아팠다. 더 잘 말할 수는 없었나, 설득하지 못함에 미안함도 매우 컸다. 



‘일도 잘하고, 다정한 사람’ 이 회사에서의 나의 목표다. 누군가가 권고사직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이 이야기한 것은 그와 함께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평판을 생각해 주는 척 이야기하는 것이 냉정하고 매정해 보이겠지만, 타인과 함께 오래 일하고 싶어서였다. 자기 위안을 위한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감정적인 처사가 능사는 아니다. 어느덧 그걸 아는 경력과 나이가 되어버렸다. 


봄바람만 불어도 모든 꽃이 핀다면 참 좋겠다. 그러나 동백꽃은 추워져야만 피어난다. 적절한 온도에 대해 고민하며, 다정하기 위한 매정함도 있음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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