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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ug 08. 2021

후배를 생각하며 7년 전 일기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회사에 입사한 막내는 공용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후배를 생각하며 7년 전 일기를 읽어보았다


회사의 막내는 사내 공용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회사에는 사내 공용인 CS전화가 있다. 해당 전화는 온라인 몰의 CS를 처리하는 전화이다. 하지만 CS 담당자가 퇴사후 담당자가 딱히 지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각자 눈치껏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회사에 입사한 막내는 이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3번 이상 울리면 답답해서 내가 받다 보니 내가 제일 많이 받게 되었다. 그날 하루 온종일 다섯 번째 전화를 받고 있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 보다 사람이 5명 이상 늘었다. 하지만 왜 전화받는 업무는 줄지를 않지?



어느 날, 클라우드를 정리하다가 2014년의 일기를 발견했다. 문득 입사한 신입사원과 그때 나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게 떠올랐다. 일기에는 세 가지 내용이 있었다.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것, 자신감이 없고 모든 행동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서 불안하다는 것. 그리고 짝사랑하는 선배의 이야기. 회사의 좋았던 상사들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의 기반은 ‘불안’이었다. 지금의 나도 ‘불안’을 안고 사는데 그때의 나도 ‘불안’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좀 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불안의 원인이었다. 지금은 여려 경험, 직책, 업무에 대한 능력 등으로 인해 자신감이 조금씩 채워졌다. 하지만 외부의 여러 환경으로 인해 ‘불안’을 느낄 때가 잦다. 



여하튼 그런 일기를 읽으며 든 생각은, 그 친구도 계속 불안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에게 “타 부서의 사람과 소통하는 게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CS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남에게 일을 전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렵고 불안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에어팟을 낀 채 모른 척 있었다고 생각한 표정이, 사실은 불안에 찬 표정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의 어린 내가 그 불안함을 가만히 있는 것으로 표출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 불안함을 행동하는 것으로 표출한다. 



이와 더불어 MZ세대의 특징은 ‘불공정한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라는 게 떠올랐다. ‘막내’니까 눈치껏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불공정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나 또한 어느 회사에서 막내라 매일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게 너무 싫었다. 그렇다고 계속 내가 받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전사회의 시간에 ‘일주일씩 CS 담당자를 돌아가며 하고, 담당자가 전화를 받자.’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주요 클레임에는 이렇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는 경험 등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다. 그 뒤로 각자가 더 전화를 잘 받게 되었다. 



그 친구가 저번 주 연차를 처음 내고 휴가를 간다고 했다. 지방에 있는 자신의 집에 좀 다녀온다고 했다.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빵집에 들러, 막내에게 이것저것 빵을 고르라고 했다. 빵을 사준다고 하니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너 먹으라는 게 아니라 부모님 집에 갔다 드려’ 라며 이것저것 빵을 사서 줬다. 그것도 나 좋자고 한 일이었다. 일기에 적혀있었던 기억들 때문이었다.



7년 전 첫 회사에서, 회식 때 대표님은 식당의 음식이 맛있으면 포장을 하나씩 더 해서 집에 들러 보냈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다. 어떤 날은 오늘 저녁 아버님 생신이라고 말씀드리니, 맛있는 거 먹고 영수증 그대로 가져와서 청구를 하라고 하신 적도 있다. 안 하면 혼난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나는 그런 기억들로 가족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빨리 갚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선물이라도 사서 해드린다든지, 밥을 사준 선배에게는 다음번 식사 때 내가 빨리 계산한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의 미소에는 왠지 어색함이 서려있었다. 그때는 내게 왜 다 갚지도 못할 베풂을 나누어주는지 고민하고는 했다. 아무리 해도 다 못 갚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분수에 넘치고 과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받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어주는 것이다. 



일기장 속 대표님을 떠올리며, 나도 막내의 손에 빵을 들려 보냈다. ‘라떼’를 말하기보다는, 라떼를 기억하고 상대방의 ‘지금’도 고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 쓰면 쓸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렵다. 그저 7년 전 일기 속 나보다는 오늘의 일기 속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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