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Jul 25. 2021

유난히 까탈스러운 여름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유난히 까탈스러운 여름


바깥은 온통 뜨겁다. 후다닥 회사 안으로 들어오면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잠시 동안은 그 공기에 취하여 기분이 산뜻해진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시원한 공기에 익숙해질 만하면, 살에 닿는 바람은 갑자기 차갑게 느껴진다. 에어컨 바람이 머리 위로 쏟아지면 어느새 춥고 머리가 띵하다. 내 자리는 하필이면 에어컨 아래다. 하지만 온도를 조절하면 주변 사람들은 더울 것이기에 몸에 담요를 두른다.


결국 에어컨은 업무 내내 켰다 틀어졌다를 반복한다. 사무실의 열기는 어느 곳이나 동등하지 않기에 에어컨 온도조절은 어려운 문제이다. 여름 더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피자 조각처럼 균등하게 나눠져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디는 덥고 어디는 춥다. 까탈스럽다.  


집 앞에서 만 이천 원에 싸게 수박을 샀다. 먹기 좋으라고 네모나게 잘라서 통 안에 담아 놓으려 했다. 실력자들이 균등하게 정사각형으로 잘라놓은걸 보고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수박의 네 귀퉁이를 잘라 원형을 우선 사각형으로 만든 후 자른 거였다. 그렇게 자르고 보니 결국 초록색 껍데기 부분에는 과육이 잔뜩 남아있다. 남아있는 과육을 숟가락으로 퍼내어 또다시 담는다. 초록색 수박껍데기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함께 자라온 친구인데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 수박 껍데기는 아무 역할이 없이 떠날 수밖에 없다. 수박 껍데기는 두꺼워서 다른 과일보다 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 또한 참 먹기 힘들고, 까탈스럽다.


각광받는 수박 속과, 버려지는 수박 껍데기처럼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그나마 에어컨 바람 밑에서 일하고, 퇴근해서도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퇴근 후 남편과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스팔트를 깔고 있는 포클레인을 봤다. 그 옆으로는 야광색 카디건을 입은 헬멧 쓴 아저씨가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가 산책을 다녀온 강 근처의 바람은 흔적도 없다. 막 깔리고 있는 아스팔트 위로는 열기가 올라온다. 남편과 나는 인근에서 산 콜라 한 캔을 아저씨께 드린다. 아저씨는 감사하다면서 인사를 건넨다. 회사 사무실에서 택배로 보내야 하는 물건들이 꽤 많이 있어 택배를 접수한 날이었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던 여직원이 내 옆으로 와서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내민다. 이동식 선풍기 일명 '손풍기'다. 택배 아저씨 오시면 더우시니까 그때 동안 아저씨게 빌려주시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도 웃어 보였다.


비가 쏟아졌다가 뜨겁게 태양이 내리쬐는 변덕이 유난히 심한 여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그는 것도 조심스러워진 여름. 유난히 까탈스러운 온 여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작은 시원함이라도 상대방에게 나눠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잠깐이나마 바람이 불어온 듯 한층 선선해진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침묵 : 말이 몸을 다듬고 있는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