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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un 06. 2022

어머님의 프로필 메시지는 '행복하다' 이다.

사진은 우리가 웃는 사진이거나 꽃 사진이다.


나의 시어머니의 프로필 메시지는 행복하다이다.


어머님의 프로필 메시지에는 행복하다라는 문장이 쓰여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때로는 우리가 환하게 웃고있는 사진, 아니면 형형색색의 꽃을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어머님 프로필 문구인 행복하다라는 말을 보면 마음이 풍족해졌다. 그래서 가끔 어머님의 이름을 찾아 일부러 눌러보고 그 문구를 읽어보


어버이날을 앞둔 주말이었다 우리 부부는 시어머님과,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사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당은 안산과 송파의 중간으로 양가 모두 오기 편한 역이었다. 우리 다섯, 남편과 나, 시어머님, 우리 엄마 아빠 이렇게 보는 일은 결혼 후 1년 만이었다. 생각해보니 상견례 이후 다같이 만난 일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다소긴장했지만 양가를 오가지 않아도 된다는 어느정도의 편안함도 느꼈다.


음식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맨 처음에는 입맛을 돋구어 주는 전복죽이 나왔다. 전복죽을 먹고 나니 간단한 회, 잡채, 샐러드, 튀김 등이 나왔다. 코스를조금씩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코스요리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리 엄마가 말했다. “잡채를 간장에 잘 불려두지 않으면, 색이 하얗게 된다. 이 집 잡채는 맛있네어머님이 말을 받으셨다. “예전에 형님께 식사를 대접할 때 잡채를 했어요. 그때는 인터넷도 없으니까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간도 못맞추고 하얗게 했어요. 그런데도 맛있게 드셔주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몰라.”


이어서 밥을 드시면서는 이런 얘기를 하셨다. “제가 진밥을 안좋아해요 질은 밥을 싫어해요. 그런데 시어머님이 질은밥을 좋아하셔서 그걸 계속 먹었어요. 그게 얼마나 힘들던지…”


어머님은 가볍게 본인의 시어머님을 안보고 지낸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시집살이가 싫어시어머님께 솔직히 말하고 안보기로 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결혼 전 잔소리는 걱정도 말라고 하셨었다. 나는 어머님을 매우 쿨한 여성으로 느꼈. 하지만 잡채와 질은밥에나온 어머님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쿨하지 않음을 느꼈다. 아마 내가 모르는 여러 시간과 감정이 있었을것이다. 그것을 그저 쉽게 표현하셨을 뿐이다. 지금의 나는어머님께 저는 꼬들밥이 좋아요 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있을 것 같은데... 조금이나마 어머님의 과거의 힘듬을 느낄수 있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부부내외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는이야기” “ 참 보기 좋게 잘 지낸다는 이야기” “양가 부모님들의인상과 인성에 대한 칭찬.” 그러잠시 대화의 주제가 떨어졌다. 나는 어머님께서 프로필에 올려둔 행복하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머님도 요즘 가장 행복하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며느리로서 입밖에 내면서 조금 뿌듯해지는 그 문구를 나는 자랑스레 언급했다. “어머님이 요즘 가장 행복하시데요.”


그러자 어머님이 찬찬히 말하셨다.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남편이 그렇게 돌아가시기는 했지만,오래 아팠더라면 우리를 고생시켰을 거에요. 그런것 없이 편히 가셔서 날 편하게 해주셔서감사하고. 사람들 좋고 일 잘할 수 있어 감사하고. 애들도 건강하고 결혼생활을 잘해요. 이제 나만 건강하면 돼요


아버님은 이전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어서 나도 남편도놀랐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얼마간은 아버님 얘기를 잘 못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평소 운동을 가셔도 동네 운동기구가 있는곳에서 2~3시간씩운동을 하셨다. 평소 요가도 열심히 하셨다. 그렇기에 몸이 건강하셨다. 그런데 우리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운동한다고 얘기 하셨다.


내게는 그저 의례 하는 말인 행복하다라는 말. 이는 좋은곳에 가면 저절로 나오는 말이었다. 맛있는걸 먹으면 하는 말이었다. 내게는 가볍고도 밝은 마음이 행복함이었다. 하지만어머님의 행복하다는 메시지가 그렇게 깊은 소화와 책임감을품고 있는 줄 몰랐다. 나는 가끔 불안하고 괴로웠다. 아직 갖지 못한 것 때문에, 그리고 가진 것을 잃어버릴지 몰라서였다. 그런데어머님은 잃어버린 것은 소화했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미래를 덤덤히 생각하고 계셨다.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복하다는뜻을 듣자. 깊은 울림이 있었다.


행복한 식사자리를 마치고, 간만에 뵈어서 좋았던 우리 가족은 포옹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벌써 6월이 시작되었다. 나의 하반기의 시작은 어머님의 행복하다는 말을 더듬으며 시작하려 한다. 부족해도 자족하고, 잃어버린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것이다. 반걸음씩 조급해하지말고 행복하게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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