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Jan 15. 2021

과일가게에 가면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씨를 달게 드실 정도로, 치열한 삶이었는데, 왜 태평하다고 생각했을까

 자취를 한지 일주일이 약간 지났다. 벌써 집 근처 시장에 3번 정도 갔다. 파전, 작은 동그랑땡을 싸게 파는 곳, 생선이 늘어져 누워있는 생선가게를 지나, 3,000원짜리 컵 닭강정을 사서 오물대며 시장을 한 바퀴 돈다. 시장을 돌면 마트보다는 과일이나 야채가 저렴하다. 바나나가 싸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 덕에 붉은 바께스에 과일들이 놓여있는 과일 좌판 앞에 선다.  


 그녀는 과일가게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과일을 트럭에 두고 파셨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과일을 팔지 못하여 나가지 못하였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늦게 오셨다. 그래서 학생 때 그녀는 아버지를 많이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아버지는 늦게 일어나 지각을 할 것 같은 그녀를 태워준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학교에 가까이 가서는 걱정이 앞섰다. 트럭을 누가 보면 어떻게 하지. 아버지의 트럭이 창피하여 몇 블록 전에 내렸다. 그 일은 아직도 자신의 마음에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별말을 하지 않고 내려주었으나 그에게도 아직 그날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그가 고생하는 게 마냥 부끄럽고 싫었다. 다른 무언가를 하기를 바랐다. 그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조금 더 커서 알고 나서는. 그가 요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돈을 많이 버는 거면 보상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사를 잘한다는 사람들의 책을 샀다. 청년 사업가로서 과일가게에 성공했다던 ‘총각네 야채가게’ 일본에서 술집으로 성공한 ‘장사의 신’. 그런 책을 읽으며 그녀는 왜 장사를 이렇게 하지 못할까 라고 생각했다. 확성기를 돌며 파는 과일을 도대체 누가 살까. 책을 갖다 드리자 아버지는 멋쩍게 고맙다 라고 하셨다. 며칠 뒤 그녀는 그 책을 다 읽어보았냐고 아버지를 다그쳤다. 아버지는 일을 하고 피곤하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단다 하고 웃으셨다. 그가 그렇게 비 오는 날은 일을 하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들어오는 게 싫었다. 늦은 밤 귀가한 그는 동네 골목에 차를 대고, 그날 팔지 못한 과일들이 비나 바람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천막으로 덮고 검고 투박한 끈으로 묶는 일을 했다. 나중에 그녀는 아버지의 트럭 소리가 들리면, 나와서 천막 작업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건 등굣길에 아버지를 외면한대에 대한 미안함이기도 했다. 


그녀도 졸업을 했고, 아버지는 나중에 과일 장사를 그만두었다. 그 후 직업을 몇 번 바꾸었다. 센베 과자를 파는 일, 전기 공사, 그리고 지금은 가구 목재를 납품하는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틈틈이 아팠다. 치질 수술을 했고, 환절기마다 감기를 앓고, 가족력인 허리가 더 많이 아파져서 수술을 했고 약도 먹었다. 어느 날 같이 걸어가다가 쉬었다 가자며 벤치에 앉는 아버지를 보며 언제 늙으셨지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차분히 나이가 들고 계셨는데 그것을 왜 보지 못했을까. 그가 어느 날 그녀에게 홈쇼핑에서 광고하는 탈모 샴푸를 사다 달라고 말했다. 돈은 줄 테니, 본인은 사는 방법이 어렵다면서, 그녀는 탈모 샴푸를 결제하면서, 머리가 많이 빠지시는구나. 그런데 외모에 신경을 쓰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무신경한 본인의 마음에 스스로 놀랐다.  


 얼마 전 어버이날이었다. 어머니의 선물인, 수분크림을 사고. 아버지의 선물을 사려는 데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욕심 울 부리지 않는 그가, 태평하게 살아 부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분명 필요한 것이 있었을 텐데 생각나지 않았다. 탈모 영양제를 사볼까 해서 약국에 물어보니 육만 칠천 원이라고 했다. 가격에 동공이 커지는 와중 약사가 이것만 먹어서는 안 되고 다른 것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에이 그럼 별로 효과가 없네요 라며 약국 문을 나섰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게 뭘까. 요즘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많이 보시는 게 떠올라 다이소에서 핸드폰을 받치는 받침대를 찾았다. 이천 원짜리 핸드폰 받침대를 구매했다. 다이소에는 싸구려 방향제와 몇 가지 물건들이 있었다. 그다지 살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더 많을 수 있을 텐데 다이소에서 선물을 사는 게 너무나 궁상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그 돈이라는 것이 이천원과 육만 칠천원 사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적당한 물건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원짜리 카네이션을 사는데, 옆에 트럭에서 파는 참외가 저렴했다. 아버지가 센베과자를 파는 일로 직업을 바꿀 때 쯤, 아버지는 사람들이 이제는 마트에서 과일을 사먹는다고 했다. 과일을 깎아먹으라고 조금 접시에 담아두어도 비위생적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하긴 그녀조차도 과일을 트럭에서 사본 적이 없었다.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옛날의 아버지 같은 조끼를 입고 있는 아저씨에게 참외를 만원어치 샀다. 아버지는 작은씨가 있는 과일은 뱉지 않고 다 씹어 드셨다. 씨에도 과육이 있다면서. 꼭꼭 씹어보라고 달다면서. 참외는 씨도 달은 과일이다. 씨를 달게 드실 정도로, 치열한 삶이었는데. 태평한 삶은 아니었는데 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마 더 편했나 보다. 봉지에 담긴 참외를 깎아드려야지 생각했다.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그녀는 집으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시험장마다 기계가 달라요, 바리스타 시험 2급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