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석 출퇴근 90%의 배려와, 10%의 외면

누군가가 당연히 나를 배려해 줄 거라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by 오지은


임신한 지 32주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출퇴근길 중 임산부 배려석에서 앉지 못하고 임산부가 아닌 분께 외면받은 적은 10% 정도이다. 그래도 90%는 배려받는 셈이다. 매일 아침, 그리고 퇴근길 핑크색 임산부석을 마주하며 겪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SNS에서 본 것처럼 나는 그렇게 매서운 실패의 경험은 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뭐라고 하시거나 하는 빌런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다 마주한 실패(외면)의 기억은 나에게도 너무 강렬하긴 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직접 겪은 외면의 사례를 적어본다.


Gemini_Generated_Image_ct2p8ict2p8ict2p.png 출처: 제미나이 제작 이미지


1. 주무시는 경우

대표적으로 이런 경우가 많다. 임산부석에 앉은 남자 어르신, 여자 어르신들은 눈을 감고 계신다. 보통 나는 임산부가 아닌 누군가가 앉아 있을 경우, “안녕하세요. 임산부인데 양보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주무시는 경우에 깨워서까지 양보를 요청하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는 그냥 서서 간다. 주무시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하지만 그분들은 내릴 역이 되시면 아주 귀신같이 일어나서 내리신다.


2. 모르는 척

한 할머니께서 핸드폰을 하고 계셨는데 “안녕하세요.” 이렇게 말을 해도 못 들으신 척 고개를 푹 숙이고 계셨다. 더 말하기가 민망해서 그냥 뻘쭘하게 서있었다. 이런 경우는 보통 그 옆좌석에 앉으신 분들이 그분을 바라보다가 앉으라며 양보를 해주신다. 그리고 한 번은 버스에 탔는데 두 개의 핑크좌석에 어르신 분들이 각각 앉아 계셨다. 딱 봐도 배가 나온 내가 타자 기사님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세요.”라고 방송을 하셨다. 하지만 그분들은 평온하게 바깥을 보고 계셨다. 정말 내 존재를 무시하고 계셨다. 평소 같으면 인사드리며 비켜달라고 할 텐데, 거리도 짧아 따로 말하기가 뭐해서 그냥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서있던 남자 중학생들 무리들이 자기들끼리, 하지만 약간 큰 목소리로 “진짜 개무시다.”라며 웃었다. 뭔가 좀 사이다였다.


10%라고 말할 정도로, 사실 무시를 받는 일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부산에서는 임산부석의 양보를 좀 더 권유하고 있는 시스템도 있다. 태교 여행으로 부산에 갔었을 때, 부산은 임산부석에 ‘핑크 라이트’를 설치해 둔 것을 볼 수 있었다. 임산부가 탔을 때 좌석 앞에 불이 들어오고 앱에서 소리로 “좌석을 양보해 달라”라는 소리를 설정하여 자리에 울리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배려해주지 않으셨던, 나를 못 본척했던 분들도 핑크라이트가 켜졌다면 자리를 양보해 주셨을까?



핑크라이트.jpg 출처: 직접 찍은 부산 지하철 이미지


앞에서 배려받지 못한 사례를 말했지만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좋은 분들이 정말 훨씬 많다. 배가 나온 채로 힘들어하는 자리를 비켜준 후 작은 과자를 주신 여성분도 있고. 내 배지를 보자마자 선뜻 일어나서 가는 쿨한 아저씨들도 많다. 아저씨들은 정말 뭔가 바라는 것이 없으신 듯 쿨하게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신다. 그게 더 멋지게 느껴진다. 그리고 친근한 어르신들은 내 배를 빤히 보며 “애가 몇째야? 성별이 뭐야?”라며 약간의 오지랖을 넣어 축하해주기도 한다. 임신을 하고 나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 낯선 종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낯선 종은 보통 스몰토크가 희귀한 한국에서도 축하를 받을 수 있다. 그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언젠가 인스타에서 이런 그림을 본 적이 있다. 할머니, 임산부, 다리를 다친 청년,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그러면 누구에게 양보를 해야 할까?


딜레마.png


나도 그런 딜레마에 휩싸인 적이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버스에 탔는데, 정말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그분은 임산부석에 앉아계셨다가, 나를 보고 “미안해요”라며 일어나려고 하셨다. 나는 짧은 거리를 갈 거였고, 할머님이 정말 불편해 보이셔서 “괜찮아요. 앉아계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계속 민망해하셨다. 우리의 실랑이를 보고 있는 앞 뒤 좌석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나도 몸이 불편한 할머님께 배려받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더 몸이 괜찮으신 분들이 일어나 양보해 주셨다면 편하게 앉았을 거다.



Gemini_Generated_Image_6a8xjp6a8xjp6a8x.png 출처: 제미나이 제작 이미지



다행히도 나는 임신을 했어도 아직까지는 몸이 심각할 정도로 힘들지 않다! 하지만 힘든 임산부가 많겠지. 가끔 오는 배뭉침이 있으면 서있을 때 매우 힘들다. 입덧으로 울렁거린다는 분도 많다. 출산율도 낮은데.. 홀몸이라 힘든 약자를 좀 더 배려해 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임신 기간이 끝났을 때, 나도 주변의 약자들을 향해 눈을 잘 돌려봐야겠다는 다짐이 굳게 새겼다. 비단 임산부뿐 아니라, 몸이 힘들어 보이는 분들이 있으면 꼭 양보할 것이다. 물론 배려석은 배려석일 뿐이다. 약자가 되어버린 지금, 누군가가 당연히 나를 배려해 줄 거라는 좀스러운 마음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나 또한 당연하게도 배려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외면을 당하면 더욱 마음이 쓰라리고 아픈가 보다. 남은 출퇴근 시간, 더 많은 배려를 받고 싶다. 배려석에 앉을 수 있었던 비중 90%에서 더 높은%로 확률이 올라가면 좋겠다. 나도 앞으로 91%가 되는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을 먹는다. SNS에서 보이는 혐오의 게시물들.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미워하는 혐오에 질려버리지 말고, 좋은 기억이었던 90%에 눈을 돌리자. 그리고 앞으로도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엉덩이를 떼고, 굽힌 무릎을 쭉 펴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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