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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ul 05. 2020

코로나19로 미뤄진 결혼생활

사소한 것들이 변하겠지만 많은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으며


4월 말, 6월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국립중앙 도서관 웨딩홀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 직원은 이런 말을 했다. “올해 6월에는 코로나 19 때문에 식을 올리기 힘들겠어요. 연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식까지는 두 달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촉박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기쁨이 사라졌다. 머릿속에 차곡차곡 세워두었던 ‘결혼 준비 리스트’가 ‘결혼 연기 리스트’로 변경이 되며 나는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남자 친구와 나는 결혼을 10월로 연기하여 다시 날짜를 잡았다. 나는 청첩장 날짜를 바꾸어 재주문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결혼 연기 소식을 알렸다. 사람들이 물어보았다. 

“집은 어떻게 해? 먼저 같이 사니?” “글쎄?”라고 대답하며, 나는 홀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집, 

소파 위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인형이 슬퍼 보였다. 퇴근 후 혼자 돌아오는 집은 사실 우리의 신혼집이다. 역에서 5분 정도 골목 사이를 걸어오면 자리 잡고 있는 다세대 빌라이다. 결혼식을 올리면 남자 친구와 함께 살기로 했고, 그전에는 나 혼자 먼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남자 친구도 부모님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긴 것이기에, 서둘러 함께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결혼이 연기된 날 혼자 있던 집은 왠지 평소보다 쓸쓸했다.

 


신혼집을 알아보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던 우리는 교통편도 좋고 집값도 적합한 이곳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우리 둘 다 위치한 역의 호선에서 회사가 위치해서 교통편이 좋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신혼집은 다세대 빌라로 윗집에는 노인 부부가 살고, 아랫집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 것 같았다. 이사를 온 첫날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윗집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파란색의 큰 빨래 분말 세제와 퐁퐁을 들고 계셨다. “아가씨 이 집 이사 왔지? 축하해요.” 할머니는 수줍은 듯 말씀하시며 선물을 내 품에 안겨주셨다. 다른 지역에서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선물이었다. 아직 인심이 후하구나 생각하며 동시에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퇴근한 후 시장을 찾았고 저렴한 가격에 떡을 샀다. 자취생활을 꽤 오래 했지만 떡을 돌려보는 건 처음이었다. 선물을 주신 할머님과 이웃 분들께도 떡을 드렸다. 다들 벨을 누를 때는 낯설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었고, 이사가 와서 떡을 돌린다는 인사를 들은 후에는 어색하지만 고맙다며 미소를 보였다. 교통편이 편한 것이 좋아 온 곳이었지만 인심도 따뜻한 것 같았다.


그렇게 적응을 해가고 있는 이곳에서 계속 혼자 지내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다들 코로나와 경기 이야기를 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여자 과장님이 말했다. “아들이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춘추복을 입히려고 샀어, 근데 한 번도 못 입고 학교에도 못 가본 채로 하복을 준비하게 생겼어.” 그 말을 들은 이들은 모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불행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결혼 연기로 들었던 섭섭한 기분보다 아이의 개학 연기가 더 안타까운 일로 느껴졌다. 나만의 불행이 아닌 우리가 모두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었다. 



주말에 남자 친구와 집 근처 공원을 찾았다. 공원 안에는 정체된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는 ‘책깨비 도서관’이라는 폐버스의 내부를 활용해 안을 도서관으로 활용해 둔 공간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책을 빌리고는 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버스지만 에어컨 바람과 함께 잠시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상상 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도 책 속 이야기와 이 버스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 같았다. 우리는 독서모임에서 만났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결혼하고 싶었고, 신혼집에도 작은 서재를 만들자고 약속했다. 공원을 산책 후 버스 안에서 읽는 책은 기분 좋은 소풍 같았다. 교통이 좋고, 사람들이 친절했고, 산책과 책을 즐길 수 있는 이곳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맞이하고 싶었다. 현재는 도서관 역시 코로나 19 때문에 운영을 중지했지만, 버스를 지나치며 지나간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남자 친구와 공원 위쪽의 정자를 지날 때였다. 남자 친구가 공 튀기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제자리에 서서 공을 위로 튀기는 운동이었다. 둘 다 100개를 성공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나는 연신 실패했다. 10개도 넘기가 힘들었다. 보라색 공이 위아래로 오르내릴 때마다 그 옆에 나무와 풀들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풍경보다 공 자체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숫자가 점차 늘지 않아. 투정을 부렸는데 남자 친구는 몸에 힘이 들어간 게 문제라고 했다. 어깨에 힘을 빼고 팔을 아래로 내려 공을 치려고 노력했다. 하나둘 공이 튕기는 횟수가 쌓이다 보니 어느새 98. 99. 100개가 되었다. 


남자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네가 속상한 걸 알지만, 그래도 공 튀기에 성공한 것처럼 현재에 집중하다 보면 금방 10월이 될 거야” 공원은 코로나로 축구장과 테니스장도 모두 폐장을 하고, 에어로빅도 중단되어 조용한 공원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꽃들은 여전히 피어있었고 공원의 폭포도 제시간이 되면 흘러내릴 것이다. 우리는 공원을 돌아 집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의 나의 신혼생활은 몇 개월 미루어졌다. 그 과정은 속상했다. 그러나 나는 회사에 나가고, 미뤄 온 운동을 집에서 하고, 시장에서 장을 보며 하루하루를 다시 쌓아가고 있다. 다행인 것은 여름에 결혼하던, 가을에 결혼하던 이곳에서의 우리의 생활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가을이 되어도 우리는 함께 시장에 가고, 공원에 산책하러 갈 것이다. 나 또한 아직 겪어보지 않았던 이곳의 가을과 겨울을 이제는 함께 맞이하는 것도 새로운 느낌일 것이다. 공원의 화단에는 분홍빛 꽃이 피어 있었다. 가을에는 꽃과 웅장한 폭포 대신에 단풍을 볼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 그저 온전히 지금 이 시간에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가을이 올 것이다. 사소한 것들이 변하겠지만 많은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으며, 이곳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 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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