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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un 28. 2020

강릉에서 만난 신사임당 굿즈

여행은 해시태그로 축약된 이미지가 아니다.


강릉 여행기 feat.신사임당


침 일찍 일어나 강릉으로 향했다. 2시간이면 가는 거리, 부족한 잠은 버스에서 보충했다.도착하여 눈을 뜨니, 새로운 도시에서 하루의 시작을 맞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대기해 있는 택시 승강장에서 미리 찾아본 '최씨 국수네’로 향했다. 오픈 시간도 전에 도착해서 달달한 장칼국수와, 국물이 얼큰한 알 장칼국수를 먹었다. 나는 장칼국수, 그는 알칼국수를 먹었는데 달달한 걸 좋아하는 그는 나의 것을,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그의 것을 탐냈다. 우리는 서로의 입맛을 구리다며 폄하하며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방문할 계획은 없었는데 네이버 지도에 ‘오죽헌’이 보였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워 보였는데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우리는 걷기로 하고 땡볕에 용감하게 나섰다. 


나는 '왠지 몇 번이고 이런 식으로 걸어왔던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혼자 네팔을 갔을 때도, 안동에 갔을 때도 나는 이런 식으로 땡볕에서 걸었다.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괜찮았다. 


그러나 함께 한 울산에서도 홍콩에서도, 지금도 그가 더울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는 늘 괜찮다고 했지만, 더운 게 괜찮을까. 등에 진 짐이 무겁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더운 날 자주 걸었다. 차를 탈 수도 있지만 함께 걸어온 날들이 많았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했고 그는 기꺼이 나와 함께 걸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헌에 도착하자, 우리는 등에 진 짐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었다. 오죽헌 대문 앞에는 율곡 이이가 그려진 5,000원권, 신사임당이 그려진 50,000원 권이 있었고  양 옆으로 이이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있었다. 

이이의 말풍선 모형에는 “어머니 모델료가 훨씬 높아요.”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오죽헌은 까만 대나무가 뜰 안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검은 대나무를 오죽이라고 했다. 

우리는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이이가 태어난 방, 공부한 방 등을 보고,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 등의 문구를 보며 이이와 신사임당의 정신을 만났다.


오죽헌에는 작은 기념품 샵이 있었다. 초충도도 있었고 부채도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신사임당 화폐인 오만 원이 덕지덕지 붙여진 노트, 또는 오만 원권이 크게 만들어진 열쇠고리 등이었다. 오죽헌에는 이이의 ‘청렴’과 ‘검소’를 몸소 실천하고 ‘사치’를 멀리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정작 모델들은 율곡 이이나 신사임당의 정신이 아니라 ‘돈’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기념품에 표현되어있었다. 


내가 신사임당 노트를 산다고 해도, 그건 신사임당의  삶의 자세나 정신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오만 원권이 잔뜩 그려진 ‘돈을 많이 벌 것 같은’ ‘대박 날 것 같은’ 상징의 노트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러니한 현상을 보며,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이 자신이 이 시대의 ‘FLEX’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어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한 기분이 들었다.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찾으려고 인터넷에 검색을 하니 유튜버 ‘신사임당’이 더 많이 나왔다. 이분은 스마트 스토어로 투잡, 경제적 자유 등을 이야기하는 분인데, 이제 이 분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도 이런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모습인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안목해변을 찾았다. 카페 거리가 즐비하게 있었지만 그냥 바다 모래를 밟으며 바다를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그네 모양으로 만들어 둔 벤치에 앉아 편의점에서 샀던 음료를 마셨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바닷가의 벤치는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끝쪽은 새 파란색, 중간지점은 옅은 하늘색, 앞쪽은 하얀 파도가 너울지는 바닷물. 

그리고 앞쪽의 황갈색의 모래들 까지, 그는 3단 케이크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케이크 앞에서 나는 장식물인 체리처럼 사진을 찍었다. 함께 바닷가를 보며 모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잠깐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충만했다.



다음날 수제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먹고, 카페 기와로 향했다.  초당순두부 맛이 난다는 아이스크림을 속아주듯이 2,500원에 사서 먹고 걷고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에는 꽃이 참 많았다. 이름은 ‘기와’지만 안에는 이국적인 물품이 가득했다. 카페와 관련된 외국 서적, 커피 기구, 원두 자루, 큐피드의 동상 등 이름은 기와지만 퓨전적인 느낌이었다. 통유리 바깥으로 보이는 화단과 수국들이 예뻤다. 우리는 수국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국 사이로 벌들은 열심히 꿀을 날랐고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우울에 반응하는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다 들린 강릉시장에서는 삼겹살 치즈말이, 닭강정, 아이스크림 호떡 등을 먹었다. 



바다를 잔뜩 충전한 여행이었다. 들어가지 못한 바다였지만 많이 보고 올해분을 충분히 마음속에 축적할 수 있었다. 


여행을 생각하며 떠올리는 이미지는, 걸어가는 길들을 다 생략한 해시태그로만 축약되는 이미지다. 나는 그와 땡볕을 걸을 때 해시태그의 이미지를 바로 선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때로 미안함을 느낀다. 


우리가 서칭을 하며 보는 이미지들은 우리가 느끼는 땡볕과, 백팩과 등 사이로 닿는 땀줄기와, 걸어가며 내 눈앞에 윙윙거리는 날파리들을 생략한 이미지들이다. 그 사이의 그 모든 과정들을 감내하여도 결과론적으로 우리는 해시태그의 이미지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그 과정들을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은 다를 수도 있다. 이런 몇 번의 여행을 함께하며, 그런 과정을 기꺼이 행복으로 여겨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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