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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ul 11. 2020

다행인 하루

죽음에는 거리가 없는데 나도 모르게 그 거리를 재고 있었다



조직개편이 되어 층수를 옮기고 난 뒤로,

주변의 소음과 감정은 격렬하게 변했다.
이전에는 옆자리에 경영지원 팀이 있었다. 그들은 업무적으로는 다소 조용하지만 팀원들의 활력이 넘쳐,
일정 수준의 적당한 백색소음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는 극과 극이였다.
옆으로 영업팀이 오는 바람에, 그들이 자리에 있을때는 왁 하고 너무나 시끄러웠고.
외근직인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회사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그 때문인지 감정도 극단을 오갔다. 화가 마구 치밀거나 지나치게 고요하거나.

그때는 고요한 2시 30분경이였다. 전날의 숙취로 약간 잠이 오고 있을 즈음이었다.
모니터 화면이 잠깐 반짝 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어- 뭐지 조용하던 팀내에 소리가 돌았다.
무슨일이지 일제히 나가버렸다가 재빨리 돌아온 화면 때문에 다들 놀랐지만
약간 아쉽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웅성웅성 하는 기운과 함께 팀장의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옆에 공사하던 건물이 사고가 나서, 쓰러졌대.
다들 네?? 라며 유리창으로 향했다. 우리 회사 뒤쪽의 커다란 호텔, 그리고 그 옆에 철거중이던
공사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공사를 막기 위해 가려놓은 베이지색 가림막은
너무나 초라하게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었고, 앞의 도로쪽으로 쓰러져 있는 전신주와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옆쪽으로 무슨일인지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팀장과 다른 차장은 구경을 해보겠다며 내려갔다. 그녀와 옆의 과장은 이게 무슨일인지 현실감이 없고,
아니 그래도 자리를 지켜야 될 것 같은 생각에 조금 망설이다가 내려가 보기로 했다.
아래서 본 현장은 더욱 느낌이 이상했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문밖으로 나오자 마자 뿌연 공기와
매캐한 냄새가 감돌았다. 아 사고가나긴 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과장은 뉴스에 제보해야겠다라는 농담을 떠들면서 아 그래도 이렇게 농담을 하면 안되는데 라고
시시덕거렸며 입꼬리를 애써 내렸다. 나무와 전선주가 쓰러져있고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앞쪽으로 빠져있는 차량은 뒤쪽 범퍼가 나가있었다.
차에 있었는 여성은 나와서 경찰에게 경위를 설명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핸드폰으로 현장을 찍고 있었다. 일전에 봤던 영화 나이트크롤러가 생각났다.
기자들보다 더 빠르게 도착하여 여과 없는 현장의 모습을 찍고 방송국에 비싸게 파는 사람들.
어떤 윤리의식이나 검열 없이 잔인한 장면도 비싸게 팔리기에 더욱 이에 매진하여 미쳐가던 주인공.
그게 본인이지는 않나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자리에서 보았을 때는  누가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게 판단되지는 않았다.
도로위를 덮친만큼 차들이 많이 깔렸다고 하는데 어느정도의 규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도로는 통제되었다. 본사가 아닌 공사현장 바로 반대편에 있던 연구센터는 전기가 전부 나갔다고 했다.
냉장고와 전열기구가 전부 전기가 나가서 촛불하나만 켜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가서 도와줘야 되나. 그녀와 과장은 나온김에 파리바게트를 갔다.
그곳의 사람들은 너무나 평온하게 빵을 먹고 있었다. 불과 3분 정도되는 간격의 거리였는데
이세상과 저세상 같았다. JTBC인터뷰를 한다면 손석희씨에게 또박또박 말하겠다라는
농담을 하며 그들은 음료를 하나 들고 회사로 복귀했다.

그녀는 다시 돌아와서 업무에 집중이 잘 안되었다. 실시간 뉴스속보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신사역, 잠원동 사고. 그러다가 업무 중 실수를 했고 팀장에게 혼났다.
혼나고 업체와 통화를 하고 업무를 하다보니 시간이 갔다. 어찌어찌 퇴근시간이 되어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부상자들이 있다는 뉴스가 보였다. 신사역은 검색어 3위였다.
그녀는 가려다가 팀장에게 물어봤다. 와이프분이 걱정하지 않으세요?
아니 말이 없는데? 불과 회사에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남일 같은 반응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근처를 슬쩍 보니 거리와 도로가 모두 통제되고 있었다.
사람보다 구급차와 드론 경찰차가 더 많았다.
핸드폰에는 연구센터에 있던 직원이 보낸 오늘 오전에도 그곳 근처 마트로 장을 보러 지나갔었는데
너무 무섭네요. 라는 카톡이 남겨져 있었다. 순간 오싹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불안은 끊이질 않았다. 부상자가 2명 발견되었다. 차량은 4대가 사고를 입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었다.
삶과 죽음이 도로 건널목 하나 차이일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란 건 이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닌데. 지방과 해외의 사고는 남일같이 느끼면서,
주변에서 일어난 사고는 바싹 가깝게 느껴졌다. 죽음에는 거리가 없는데
그녀도 모르게 죽음의 물리적 거리를 재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놀랍고 신기한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사고를 당한것처럼
무섭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있고 나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니
기뻐해야 해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붕 떠 있는 감정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사망자가 한 명 발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29살의 예비신부.
그 앞을 지나가던 차량이었다. 끔찍했다. 매일 가던 필라테스도 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일이 아닌데도 너무나 우울했다. 그렇지만 남일 또한 아니었다. 주변에 심한 사고를 겪고난 후나,
소중한 사람을 잃고 우울에 빠진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보기는 했지만 깊은 이해를 하지는 못했었는데,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남자친구를 만나 밥을 먹으며 서로 살아있어 다행이다. 라고 말을 했다.
도로 하나, 몇 분 차이, 길 하나만큼 생사라는게 종잇장처럼
가벼운 간극이구나 생각한 하루였다. 내일 다가올 극단의 소음과, 고요함 마저 감사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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