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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an 01. 2021

울고 웃었던 나의 2020년, 작년의 희로애락

다사다난한 한 해였지만 여러 감정을 느낄 일들이 있었다.


2020년의 희로애락


2020년 다사다난하고 코로나 19로 전체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한 해였다.

그럼에도 희로애락을 느낄 일은 전부 있었기에, 작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이 글을 적어본다.


20년의 기쁨 : 난관이었지만 기쁨이 가득했던 결혼


올해의 가장 큰 기쁨은 아무래도 결혼이다. 19년 1월 1일 나와 남편은 도서관 예식장을 예약했었다. 예약이 치열하다고 했기 때문에 정말 기뻤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우리는 도서관에서 결혼하는 것이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결혼하지 못하고 한식당을 빌려하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옷장 안에서 반지와 풍선이 나오는 마법 같은 프러포즈를 받는 경험도 하고, 나도 남편을 위해 그동안 모은 일기장을 책으로 만들어 프러포즈를 하기도 했다.


결혼식은 연기되고, 양가 50명이라는 적은 인원 때문에 친구들을 초대할 수 없었지만 친구들이 사진 촬영을 하는 날 찾아와서 의상을 맞추어 입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브라이덜 샤워로 깜짝 파티도 준비해주었다. 결혼식에 사회를 봐준 친구도 있고 친구들에게 받은 것은 올해 너무 많아서, 갚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만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살아가면서 차차 갚아나가야지.


신혼생활에 많이 싸운다고 하는데 10월 결혼 후, 아직 심각하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다. 서로 양해하고 이해하며 살아내고 있다. 서로를 비난하는 일은 최대한 가락에 담아 노래로 부르면서 놀리듯 한다. 개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고치려고 하니 크게 싸우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며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도, 정말 기쁜 일이다. 부모님께서 우리를 보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 벅찬 기쁨이 밀려온다. 올해 결혼이 나에게 가장 기쁜 일이었다.


20년의 노여움 : 월세를 빼며 느낀 각박함


신혼집에 입주하기로 결정이 되었지만 월세집은 계속 나가지 않았다. 40만 원씩 돈이 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열심히 발품을 팔으며 공인중개사를 돌아다니고, 이번 달에 빼주시면 10만 원 더 드리겠다는 말도 해보았다. 그 시간과 과정에서 정말 많은 공인중개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막상 동생 친구가 에브리 타임에 글을 올려서 임시로 집에 살 분을 구할 수 있었다. 동생 친구에게는 돈으로 사례했다. 공인중개사보다 인터넷이 더 빨랐다. 장기로 살 분은 아니지만, 전대차로 몇 개월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집은 나가지 않았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만기가 거의 가까워서야 도배를 하셨고 그러자 집이 바로 나갔다. 그전에 도배를 해달라고 했고, 내 사정도 말해보았지만 사정을 받아들여준 건 없었다.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랑이를 하다 보니 힘들었다. 결국 아주머니는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았는데, 나는 내가 판단을 좀 더 빨리해서 그냥 도배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여움도 있었고 배움도 있었다.


20년의 노여움 : 회사의 퇴사 번복 사건


회사에서 내게 권고사직을 요청한 후, 일주일 만에 복직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내가 퇴사 후 사고가 많이 났고, 내 일까지 맡기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직원이 퇴사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와 달라고 했다. 이 일을 들은 몇몇 사람들은 ‘화가 나지 않냐? 절대 복직하지 말라’고 했고, 몇몇 사람들은 ‘네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 그렇다. 시기도 쉬기에 좋지 않다’라고 말해주었다.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실업급여를 받고 좀 쉬어볼까 하던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쉬어본 결과.. 코로나라서 어디 갈 수도 없었고 내 게으름도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런 여러 가지 생각으로 코로나 19 시대에 취업이 어렵기에 다시 회사에 복직하기로 했다. 노여움이 아니라 어찌 보면 더 마음이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였다. 하지만 회사에 대한 불신은 강해졌다. 직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직원에 대한 배려 없는 권고사직 등. 체계가 없는 회사라는 마음이 더욱 강해지는 사건이었다. 이전에는 이 회사에서 아기도 낳고,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희미해지는 사건이었다.


20년의 슬픔 : ‘재미없다’를 넘어서 ‘살아남자’가 목표가 된 2020년


슬픔이자 노여움인 일이다. 올해 초만 해도 K-방역 이야기를 하며 코로나 19가 어느 정도 잡혔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올해 내내 이럴 줄은 몰랐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퇴사가 될 뻔한 위기만 겪었지만, 내 주변의 친구 부모님은 장사를 그만두셨고, 삼촌은 개업하신 학원을 휴업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슬픔은 아쉽지만 그래도 감내할 수는 있다. 자영업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일터가 사라진다는 게 너무 슬프다. 그만큼 업무환경이나, 수익을 내야 하는 방법도 많이 바뀌었고, 변화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예 멸종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올 한 해는 무색무취의 한 해가 되었다. ‘재미없다’를 넘어 ‘살아남자’가 되어버린 한 해. 코로나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고, 지금의 시기를 버틸 힘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면 바란다.


20년의 즐거움 : 가족과의 추억과 신혼여행


결혼 이전에 (이때는 코로나가 난리까지는 아니었다.) 가족과 펜션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가족과 고기도 먹고 낚시도 하고, 수목원도 다녀오며 내 결혼 전에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남편과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이탈리아를 가지 못하고 결국 국내로 갔지만. 요즘의 트렌드인 뉴트로 감성과 잘 맞는 듯하다. (??)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신혼여행으로 다녀오신 제주도를 나도 신혼여행으로 갔으니 신기하다. 중문 시장에 가고, 수영장에 가고, 감귤도 따 보는 전형적인 수학여행 같은 루트였지만, 일주일 내내 휴가를 내고 이렇게 맘 편하게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고등어 회와 흑돼지고기를 한라산과 즐기고 전복도 실컷 먹었다. 우리 둘 다 책을 좋아해서 독립 책방을 돌아보며 책도 구매했다. 신혼여행 기간인 일주일간 책을 3권이나 읽었다. 올해 중 가장 여유로운 때였다.

올해는 가족과 짧은 여행만 2번 다녀왔다. 아예 가지 못하신 분들도 있으실 거라 쓰기에는 민망하다. 이제는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여행은 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머물러야겠다. 그래도 2020년을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즐거움이다.


21년을 시작하며 이 글을 올린다. 올해에는, 우선 책을 꼭 써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복직을 하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브런치에도 다시 한번 다짐한다. 회사라는 기틀 밖에서도 뭔가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 19가 나아져서, 올 한 해 많은 분들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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